[동아광장/정끝별]녹색, 녹색! 녹색의 이름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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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한 시간 동안의 ‘지구촌 불 끄기(Earth Hour)’로 서울에서만 23억 원이 절감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렇지, 3월 31일이었지! 매년 3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8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지구촌 불 끄기’가 전 지구적으로 실시되었다. 그날 서울에서만 23억 원이 절감되었다면 올해 ‘지구촌 불 끄기’에 참가했던 도시가 6500여 곳이었다니 23억 원에 6500을 곱하면 14조 원이 넘지 않는가, 단 한 시간에!

우리나라가 최초로 제정한 ‘에너지의 날’이 8월 22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9번째를 맞은 지난해, 5분간 불 끄기 운동의 슬로건은 ‘불을 끄고 별을 켜다’였다. 4월 22일은 ‘지구의 날’이었고 매년 6월 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환경의 날’이다.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나도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는 날들이 늘어간다. 한 시간의 소등으로 그 정도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면, 과소비와 낭비가 일상이 된 우리의 생활패턴을 조금만 바꾼다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총선 때도 그랬다. 내 귀는 새로 창당된 녹색당을 향해 쫑긋하곤 했다. 핵과 무한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난 사회, 생명을 가진 것들과 약자(여성, 소수자, 청년)들과 더불어 사는 사회, 땅과 먹을거리를 되살리는 사회! 이들이 꿈꾸는 비전이 곧 시(詩)가 꿈꾸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물론 그 비전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입안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현실 정치고 정당 활동이겠지만 말이다.

1시간 불끄기로 서울서 23억 절감


에코, 웰빙, 친환경, 유기농, 바이오, 생태는 모두 녹색의 다른 이름들이다. 녹색 패션, 녹색 식품, 녹색 건축, 녹색 문화, 녹색 종교, 녹색 자본주의, 녹색 비전…. 생생한 녹색 그 자체로의 실천운동과 삶을 생각하노라면 ‘녹색 녹색’이 랩처럼 반복되는 “녹색 녹색을 나는 손에 넣었다네 녹색을 보고 싶어 먹고 싶어 녹색 녹색 기분이 좋아 녹색 휘파람 불었네”(황병승, ‘녹색 바다 고무공 침팬지와 놀기’)라는 시가 절로 입 끝에 매달리곤 한다. 녹색, 녹색! 녹색, 녹색! 녹색에 대한 이런 나의 부름은, 실은 후쿠시마 이후 간절한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작년 봄이었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검은 지진해일(쓰나미)이 TV 화면을 가득 채웠던 그날 이후 내 몸은 비상경고음을 냈다. 우리가 매일매일 들이마시고 내쉬는 이 바람에서, 우리를 먹여 살리는 모태와 같은 이 바다에서 방사능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요오드 함유량이 많은 영양제를 사고, 생수를 사고, 마스크를 사고, 일회용 비옷을 샀다. 참치 캔, 소금, 미역, 다시마, 김을 샀다. 사재기 아줌마를 쳐다보듯 남편은 나의 비상대비책(!)을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봤고 내 스스로도 마뜩잖았으나 나는 청소년인 두 딸을 지켜야 하는 엄마였다. 그 딸들이 바로 새 생명을 낳아야 할 미래의 엄마이고 우리의 미래가 아니던가. 유아나 어린이를 키우고 있는 집집의 걱정까지도 내 몫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의 불안과 의심은 우리의 울진, 월성, 고리, 영광으로 향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전전날에 신규 핵발전소 용지로 발표되었던 영덕과 삼척까지 더해졌다. 아니, 어쩌려고! 독일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폐쇄를 결정하거나 가동 중지를 검토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계속 건설할 예정이라니! 핵발전소 보유 수 세계 5위, 그 밀집도 세계 1위는 이제 떼어 놓은 당상이다. 왁자했던 3월의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이달에 발사되었던 ‘광명성 3호’도 내 불안의 곁가지들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내 미래가 자라고 있는 이 한반도가 이렇게 ‘핫한’ 핵위험지대가 되어버리다니!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 1986년의 소련 체르노빌,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보유국 순위를 증명하듯 차례로 사고가 났다. 그 다음은? 불행하게도 한국을 꼽는 사람이 많다. 운전상의 인재(人災), 천재지변, 노후화, 예기치 못한 정전, 게다가 우리는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가가 아니던가. 얼마 전에는 설계수명 30년이 끝났음에도 10년을 더 연장하고 있는 고리 1호기에서 정전사고도 있었다. 핵발전소로 인해 우리가 누릴 수 있었던 부와 번영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가는 이제 우리의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할 큰 빚이 되었다.

과소비만 없어도 많은 에너지 절약


“인간은 이 세상에서 행복할 수 있다고 나는 느낍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이 상상력과 비전의 세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꿈꾸었던 두 세기 전의 비전이었다. 30여 년 전의 우리는 고리 1호기를 스타트로 핵발전소가 가져다줄 황홀한 엘도라도를 꿈꾸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설계수명이 다한 고리 1호기를 터닝포인트로 삼아 대안의 녹색 엘도라도를 꿈꾸어야 한다. 21세기의 우리가 꿈꾸어야 할 녹색의 상상력이자 녹색의 비전일 것이다. 나는 정말 우리의 아들딸들이 핵으로 상징되는 검은 재앙이 없는 미래, 그런 녹색의 세상에 살기를 바란다.

정끝별 시인·명지대 교수
#동아광장#정끝별#지구촌 불 끄기#에너지 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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