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생님 선물 걱정은 안해도… 어린이집 선물 ‘속앓이’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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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이모 씨(31)는 올해 유치원에 입학한 4세 된 딸이 어린이집을 다녔던 2년 동안 스승의 날(5월 15일), 명절(추석 설), 화이트데이(3월 14일), 빼빼로데이(11월 11일), 크리스마스 등 명절 또는 기념일마다 어린이집 원장을 포함한 교사 7명에게 모두 선물을 돌렸다. 명절에 한우 세트를 돌린 것은 물론이고 때마다 명품 향수·화장품, 꽃바구니까지 2년 동안 10여 번이나 선물을 보냈다.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에는 교사와 아동 전원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일일이 포장해 선물하기도 했다. 한 살인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올해 스승의 날에는 선물로 10만 원권 백화점 상품권을 생각하고 있다. 이 씨는 “무슨 날이 있을 때마다 선물 비용만 수십만 원 들어 부담이 되지만 선물을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관심을 받지 못할까 걱정돼 꼭 선물을 한다”고 말했다.

스승의 날이 한 달 넘게 남았지만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는 엄마 중 상당수는 벌써부터 선물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영유아를 둔 엄마들이 주로 찾는 인터넷 유명 카페에는 올해 초부터 이 같은 고민을 하며 조언을 얻으려는 게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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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A 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 6일 올린 ‘스승의 날 선물 때문에 미쳐 버리겠다’는 제목의 글에서 “교사에게 선물을 챙겨주지 않으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걱정이다. 겨우 29개월 된 아들을 놓고 이런 고민을 해야 하니 스트레스다”라면서도 “화장품, 상품권 중에 뭐가 좋을지 조언해 달라”고 했다.

관련 글 중에는 “목욕용품이나 수제비누세트는 너무 많이 들어와서 선생님들이 안 좋아한다. 백화점에서 명품 화장품을 사주거나 상품권을 주면 선생님들이 백화점에 가서 바꿀 수도 있고 좋아할 것” “확실히 선물을 챙겨주면 아이를 한 번 더 봐주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라는 조언성 댓글들이 달려 있다. 자신이 어린이집 교사라고 주장하는 몇몇 누리꾼은 “스카프나 손수건은 남에게 주게 된다. 브랜드 지갑이나 수입 화장품은 영수증 없이도 교환이 가능해 가장 선호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스승의 날, 화이트데이, 명절, 크리스마스는 의무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내용의 글도 있었다.

학부모들이 선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데는 어렵게 대기 수요를 뚫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상황에서 혹시 자신의 아이만 차별당할까 하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24개월 된 딸을 둔 이모 씨(30·여·공무원)는 “집에서 가까운 민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데만 해도 한 달 넘게 기다렸다”며 “수요가 넘치고 아이들이 밀려들어 오는 상황에서 어린이집 측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신경 써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선물 고민을 더 하게 된다”고 했다.

가끔씩 아동 학대 및 불량 급식·간식 사건이 터지면서 ‘혹시나 우리 아이도 잘못 보였다가 저렇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높아지는 것도 학부모들을 선물 경쟁으로 모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동주 덕성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최근의 고가 선물 경쟁은 몇몇 어린이집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나타난 ‘이상 현상’”이라며 “학부모들의 선물 공세가 어린이집 교사에게는 ‘교사를 믿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쾌감을 줄 수 있고 학부모 스스로가 어린이집의 교육 본질을 흐릴 수 있는 만큼 아이와 함께 편지를 쓰는 등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방법으로 교사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어린이집#스승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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