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40대 중퇴생 “줄서라, 다 죽이겠다” 강의실서 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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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오이코스대 한인 총기난사… 7명 사망 ‘참극의 재구성’


오이코스大의 비극 2일 오전 오이코스대에 출동한 경찰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이 학교를 중퇴한 한국계 고원일 씨의 총기 난사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클랜드=AP연합뉴스
오이코스大의 비극 2일 오전 오이코스대에 출동한 경찰이 희생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이 학교를 중퇴한 한국계 고원일 씨의 총기 난사로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오클랜드=A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의 오이코스대 준간호사 과정(LVN)에 입학해 같은 해 11월에 자퇴한 고원일 씨(43)가 1층짜리 학교 건물에 나타난 시간은 2일 오전 10시 반경이었다. 그는 접수계 여직원을 총으로 위협하며 인질로 잡은 뒤 자신이 특히 미워하는 대학 사무처의 한 여직원을 찾아다녔다.

이어 자신이 공부했던 간호학과 강의실로 들어섰다. 학생들은 같이 공부했던 고 씨를 알아봤다. 카키색 옷에 회색 모자를 쓴 고 씨는 강의실 안에 자신이 찾던 여직원이 없자 인질인 접수계 여직원의 가슴을 총으로 쐈다. 이어 학생들에게 “줄을 서라, 너희들 모두를 죽이겠다”라고 영어로 고함을 질렀다. 이어 혼비백산해 도망가려는 학생의 머리를 쏜 것을 시작으로 한 명씩 겨냥해 쐈다. 하워드 조던 오클랜드 경찰서장은 “미리 계산된, 냉혹한 처형이었다”라고 CNN에 전했다. 학생 8명이 쓰러졌다. 여직원을 포함해 4명은 즉사했고 2명은 나중에 병원에서 숨졌다. 팔에 총을 맞은 학생 1명은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당시 옆 강의실 8명을 포함해 학교에는 25명가량이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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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강의실에 있던 데첸 양돈 씨(27·여)는 “총소리가 난 뒤 바로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껐다”며 “건물 안내원이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지만 우리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1차 학살을 마친 뒤 강의실을 나가 반자동 권총을 재장전한 고 씨는 학생들이 숨어 있는 옆 강의실로 향했다. 주먹으로 문을 7, 8차례 두드리던 그는 문과 유리창을 향해 총을 4발 쐈다. 다행히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건물 바깥으로 나온 고 씨는 체링 린징 부티아 씨에게 총을 쏴 살해한 뒤 그의 혼다 어코드 차량을 타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오전 10시 33분경 학교 측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특공대(SWAT)는 3분 뒤 학교에 도착해 범인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이미 고 씨는 달아난 뒤였다. 학교에 숨어 있던 학생과 교직원들도 대피시켰다.

유에스에이투데이에 다르면 고 씨는 범행 직후 아버지 고영남 씨(72)에게 전화를 해 범행 사실을 털어놨다.

사건 발생 1시간 뒤 고 씨는 학교에서 8km가량 떨어진 앨러미다 시의 쇼핑몰인 ‘사우스쇼어센터’의 세이프웨이 슈퍼마켓에 들어갔다. 수상히 여긴 경비원이 다가가자 “방금 사람들에게 총을 쐈다. 경찰과 얘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출동한 경찰은 오전 11시 반경 그를 쇼핑몰 주차장에서 체포했다.

오클랜드=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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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쇼핑센터 주차장서 체포 2일 오이코스대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 고원일 씨가 범행 현장에서 8km가량 떨어진 쇼핑센터 주차장 잔디밭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이 현지 TV에 촬영됐다. 유튜브 화면 촬영
인근 쇼핑센터 주차장서 체포 2일 오이코스대 총기 난사 사건 용의자 고원일 씨가 범행 현장에서 8km가량 떨어진 쇼핑센터 주차장 잔디밭에서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이 현지 TV에 촬영됐다. 유튜브 화면 촬영
오이코스대 총기 난사 사건을 저지른 고원일 씨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교직원들과 학생들에게 분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현지 경찰 당국에 진술했다.

‘새너제이 머큐리뉴스’는 3일 하워드 조던 오클랜드 경찰서장을 인용해 “고 씨는 조사관들에게 오이코스대 여직원 한 명에게 복수하려 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고 씨는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경찰 관계자가 전했다.

현지 한인 언론들은 고 씨가 수업료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교직원과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고 전했다. 고 씨는 조사에서 일부 학생들이 자신을 자기들과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자신이 나타나면 말을 멈추거나 모르는 척한 것에도 분노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의 범행에는 최근 수년간의 개인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 씨는 지난해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 김옥철 씨는 오클랜드에 살았으나 지난해 한국으로 돌아간 뒤 세상을 떴다. 동생 수완 씨는 미 육군 부사관(하사)으로 복무하다 지난해 3월 버지니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버지니아에 형제 한 명이 더 살고 있다. 아버지 고영남 씨는 주소지가 오클랜드로 되어 있다. 고 씨는 독신이다. 결혼했으나 이혼해 부인이 딸과 함께 떠났다는 소문도 있다. 동창들은 그가 조용한 성품이었으나 어려운 수업 과정과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고 증언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2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 온 고 씨는 식품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 씨는 이민 초기에 버지니아 주 스프링필드와 헤이스에서도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스프링필드는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범 조승희의 집이 있던 페어팩스카운티 센터빌과 가까운 곳이다. 당시 사냥 및 낚시 면허를 지닌 그는 교통위반 외에 이렇다 할 범법 사실이 없었다. 다만 1300달러의 임대료를 내지 않아 헤이스의 아파트에서 퇴거당했고, 세금도 2만3000달러가량 체납했다. 고 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알려졌으나 경찰은 고 씨와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한국인 통역사를 불렀다고 한다.

고 씨는 정원이 30명인 2년제 준학사학위 직업 간호사 과정에 지난해 2월 등록해 다니다 11월에 중퇴했다. 이 과정은 영주권자 이상을 대상으로 영어로 진행돼 한인 학생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

오이코스대는 2004년 한국계 미국인 김종인 목사가 설립한 신학 중심 학교다. 교직원 40여 명이 재직하고 있으며, 학생은 약 200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학생과 현지 교민 등 한인 학생이 많으며 ‘기러기 엄마’를 입학시켜 비자 등 체류 신분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 교육부 인가 대학 명단에는 이름이 올라있지 않다. 하지만 영리 목적의 직업학교로 인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이코스(oikos)는 고대 그리스어로 집, 가정, 가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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