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피아니스트 임동혁 데뷔 10주년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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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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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수채화 보는 듯… 자연의 목소리 담아 ★★★★

크레디아 제공
크레디아 제공
어느덧 데뷔 10주년을 맞는 임동혁의 리사이틀 무대가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졌다. 11회에 걸친 전국 투어 가운데 네 번째 연주회였다. 이번 투어는 임동혁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무대다. 피아니스트들이 선망하는 모든 중요한 콩쿠르를 석권하며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할 수 없는 천재성을 과시해 왔던 그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했음을 알리는 중요한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신동의 이미지를 벗어나 성숙한 단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출사표를 내듯, 그는 이번 연주회를 통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수상자이자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출신으로서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승자임을 강하게 부각하며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첫 곡으로 연주한 차이콥스키의 ‘사계’부터 임동혁은 개성적인 관점을 드러내며 청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음색의 미묘한 뉘앙스와 양손의 타이밍 컨트롤을 통해 각 주제가 가진 이미지를 선명하게 조탁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이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스타일 위에 인상주의적인 다채로운 음향효과를 얹어낸 그는 특히 왼손의 리듬과 내성(內聲)의 선율을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내는 한편, 리듬과 리듬 사이에 음색의 변화와 분절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소프트 페달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차이콥스키적 서정을 극대화했다. ‘뱃노래’에서는 파스텔의 색채감이 번졌고 ‘삼두마차’는 파리지앵을 연상시키듯 고급스러웠다. 특히 ‘가을의 노래’에서는 연주자의 심상을 반영한 듯한 자조적인 감상과 일말의 회한이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사계’ 연작의 파노라마 같은 이야기 전개와 더불어 개개의 작품에 내재된 자연의 목소리를 감각적으로 찾아낸 임동혁의 진일보한 표현력에 갈채를 보낸다.

2부의 중심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작품23과 작품3 두 곡을 연주한 임동혁은 고전적인 균형미와 우수 깊은 음향의 신선한 배합을 보여주면서 작곡가의 서정성을 새롭게 읽어냈다. 직선적인 추진력보다 행간의 의미에 중점을 둔 작품3에서 원근법을 연상시키는 종소리의 다채로운 효과는 다른 연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신선한 모습이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피아노 소나타 2번에서는 중·저역 음색의 이색적인 매력, 치밀하게 계산된 폴리리듬(여러 개로 겹치는 리듬)과 폴리다이내믹(왼손과 오른손의 음량이 다르게 전개되는 것)의 중첩효과, 극단적이되 조화로운 극적효과 등에서 부단한 자기계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중량감과 러시아적인 스케일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한층 낭만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수성을 투영하며 러시아 피아니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임동혁이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하겠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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