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경계에 선 회색인들의 사투… ‘더 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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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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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엄 니슨 주연 ‘더 그레이’

죽지 못해 살아온 ‘더 그레이’의 유전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처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한다.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죽지 못해 살아온 ‘더 그레이’의 유전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처야 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한다. 조이앤컨텐츠그룹 제공
도통한 분들은 생(生)과 사(死)가 백지 한 장 차라고 하지만 범인들에게 그 경계를 넘는 일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경계를 뛰어넘는 짜릿한 경험을 꿈꾼다. 단, 간접 경험으로 말이다. 이런 경험을 원하는 관객에게 16일 개봉하는 ‘더 그레이(The Grey)’를 권한다. 영화는 제목처럼 생(흰색)과 사(검은색)의 경계에 선 회색인들의 분투를 담았다.

알래스카의 한 유전 노동자들은 2주 동안의 휴가를 얻는다. 유전의 야생동물로부터 동료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사냥꾼 오트웨이(리엄 니슨)도 고향으로 향하지만 비행기가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 한복판에 추락한다. 영하 30∼40도에 이르는 추위와 눈보라, 송아지만 한 늑대들이 이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 초반부 비행기 추락 장면이 압권

영화는 지옥으로의 생생한 안내 지도다. ‘K2’ ‘얼라이브’ ‘127시간’ 등 조난 영화는 많았지만 이처럼 실제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로 관객을 117분간 꼼짝 못하게 붙들어 두는 작품도 드물다. 초반부 생생한 비행기 추락 장면은 영화의 백미. 흔들리는 비행기 내부의 극사실적인 묘사에 긴장과 이완을 완벽하게 조절하는 음향효과가 더해져 관객은 마치 추락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영화를 연출한 조 카너핸 감독도 “(이 영화는) 하드코어 서바이벌 무비다. 비행기 여행과 야생동물을 두려워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본 후유증이 평생 갈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을 정도다.

거친 유전 노동자들의 ‘에프(F)’로 시작하는 욕이 난무하는 비행기 안. 갑자기 폭풍우에 휘말린 비행기는 비명으로 가득 차고 선반 위 물건들이 나뒹굴더니 이내 눈앞이 암흑으로 변한다.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 들린 뒤 주위는 고요함만이 남는다. 가까스로 눈밭에서 몸을 일으킨 오트웨이는 부서진 비행기 잔해와 시신들, 그리고 8명의 생존자와 마주한다.

생존자를 한 명씩 사냥하는 늑대의 공포도 관객을 옥죈다. 제작진은 체조 선수들에게 늑대 옷을 입혀 연기하도록 했고 여기에 컴퓨터그래픽(CG)을 더해 늑대의 공격을 소름 끼칠 만큼 자세히 묘사했다. 후반부 늑대에게 쫓긴 생존자가 계곡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장면의 카메라 워크도 돋보인다. 급류에 휩쓸려 허우적대는 출연자의 머리에 카메라를 달아 찍은 듯한 화면에 숨이 턱 막힌다.

○ ‘에이리언’+‘글래디에이터’+‘블랙 호크 다운’

뛰어난 영상과 더불어 이 영화의 장점은 생과 사를 응시하는 담대한 시선이다. 영화는 등장인물 중 누구도 슈퍼 히어로로 그리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드러낼 뿐이다.

생존자들의 리더인 오트웨이는 삶의 의미를 잃고 비행기를 타기 전날 밤 자살을 기도한 마음 약한 인물이다. 늑대와의 사투 과정에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지만 생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한다. 늑대와 싸우는 이유는 생명의 위협에 대한 무조건적 반사로 보인다.

이런 시선은 제작자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전작에서 익히 보아온 방식이다. 그는 우주 괴물과 ‘암컷 대 암컷’으로 싸우는 여전사 리플리(‘에이리언’), 장군에서 싸움 노예로 전락한 막시무스(‘글래디에이터’), 전투가 아닌 생존을 위해 싸우는 미군들(‘블랙 호크 다운’)을 통해 이런 관점을 드러낸 바 있다.

‘쉰들러 리스트’ ‘테이큰’ ‘스타워즈 에피소드1’ 등 굵직한 작품들에 출연했던 리엄 니슨의 안정된 연기가 극의 완성도를 더한다. 단편 소설 ‘고스트 워커스’가 원작. 15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동영상=生과 死 경계에 선 회색인들의 사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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