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아마존-애플은 ‘가격파괴’… 한국 기업들은 ‘가격집착’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래 한 곡 가격이 너무 쌉니다.” 이 얘기를 들은 지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에서 MP3 음악파일 한 곡 값은 600원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훨씬 쌉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5000원에 40곡(곡당 125원) 식으로 묶어 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 자구책이 나왔습니다. KT와 연예기획사들이 음악 가격을 올려 받겠다고 ‘지니’라는 음악서비스를 만들었죠. 신곡은 한 곡에 1000원을 받고, 이 가격에 판매하지 않는 음원사이트에는 신곡을 주지 않겠다는 모델입니다. 전자책 업계도 국내 전자책 값이 너무 싸다며 비슷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 콘텐츠의 값이 비싸다는 불평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디지털 음악이나 전자책의 값은 지나치게 쌉니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큰 디지털 음악상점인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서는 노래 한 곡이 평균 1달러(약 1130원)에 팔립니다. 또 한국의 전자책 단행본 가격은 평균 6000원 선인데, 미국 아마존의 전자책은 평균 10달러(약 1만1300원) 수준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변합니다. 한국에서 아이튠스와 아마존을 예로 들며 값을 올릴 생각에만 골몰한 동안 미국에서는 전혀 다른 모델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가격 파괴’라며 한국 콘텐츠 업체들이 질색을 했던 기간별 정액요금 방식이라거나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 콘텐츠 판매 얘기입니다. 월 일정액을 내면 노래를 맘껏 듣고 영화를 맘껏 본다면 소비자는 돈을 아껴서 좋고 애플과 아마존 같은 디지털 유통업체는 손님을 더 많이 모아 좋습니다.

그러면 이런 모델이 확산되면 콘텐츠를 생산하는 예술가들이 손해를 볼까요? 아마존은 최근 그렇지 않다는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아마존은 작가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아마존의 도구를 활용해 책을 직접 출판하는 ‘킨들 직접출판’이라는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출판사와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어 저자는 훨씬 많은 인세를 받을 수 있죠. 아마존은 최근 이 킨들 직접출판 서비스에서 도서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작가들이 책을 판매할 때보다 유료로 빌려 줬을 때 26% 더 높은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애플도 지난해 ‘아이튠스 매치’라는 서비스를 공개했습니다. 돈을 주고 산 음악이 아닌 불법으로 내려받은 음악도 애플의 서버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내려받아 듣는 서비스입니다. 연 25달러만 내면 쓸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 곡이 재생될 때마다 음악가에게 수익이 돌아갑니다. 이들은 불법 다운로드 음악에서 돈을 벌어 음악가에게 나눠 줄 방법까지 만든 겁니다.

모두 ‘가격 파괴’의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서비스입니다. 소비자도 편하고 예술가도 좋죠. 물론 전통적인 출판사나 음반사의 매출은 다소 줄어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도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윈윈’입니다. 한국 기업들도 가격 논쟁에 사로잡혀 변화에 저항하는 대신 이런 변화의 물결에 적극적으로 올라탔으면 합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