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도 순풍… 5월엔 첫아이 순풍… 전태풍의 순풍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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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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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귀화 KCC 혼혈선수 전태풍의 코리안드림

프로농구 KCC의 전태풍(왼쪽)이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옷에 농구공을 넣은 채 5월 출산을 앞둔 아내 전미나 씨와 활짝 웃고 있다. 전태풍은 아이의 이름을 ‘전강진’으로 벌써 지어 놓았다.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프로농구 KCC의 전태풍(왼쪽)이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옷에 농구공을 넣은 채 5월 출산을 앞둔 아내 전미나 씨와 활짝 웃고 있다. 전태풍은 아이의 이름을 ‘전강진’으로 벌써 지어 놓았다. 용인=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문득 그의 예전 미국 이름을 떠올렸더니 가물가물하다. 그 역시 “이젠 한국사람 다 됐다”며 웃는다. 프로농구 KCC 전태풍(32)이다. 미국 국적의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29년을 산 그는 2009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모국의 농구 코트에서 굵은 땀을 쏟고 있는 전태풍은 새해 들어 아빠가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뛴다. 2009년 결혼 후 임신 9주 만에 유산의 아픔을 겪었던 아내가 5월 기다리던 첫아이를 낳기 때문이다.

○ 오늘

전태풍은 쉬는 날이면 경기 용인시 마북동 KCC 숙소 근처에 있는 32평 아파트로 달려간다. 배가 제법 부른 아내 전미나 씨(31)를 돌보기 위해서다. 입덧이란 단어를 알 만큼 능숙한 한국어 실력을 지닌 전태풍은 “요즘 들어 먹고 싶다는 게 부쩍 늘었어요. 아이스크림, 파인애플 망고 주스, 치즈 팝콘…. 모처럼 집에 와 피곤해 졸기라도 하면 바가지를 긁어요”라며 웃었다.

쏘나타 승용차를 직접 모는 그는 “스테이크, 햄버거, 김치찌개, 된장찌개 잘해요. 등심이 최고예요. 미국은 고기 비싸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기의 성별은 아들이란 얘기를 들었다. 이름까지 미리 정했다. “전강진이에요. 강한 지진이란 뜻인데 승진(KCC 하승진)이가 지어줬어요.”

자신이 외아들이라 자녀는 3명 정도 두고 싶다는 얘기에 그의 아내가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 어제

전태풍의 어머니는 패션 공부를 위해 19세 때 미국 디트로이트로 유학을 갔다가 자동차 제조업체 GM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외할머니 밑에서 10년 동안 컸어요. 그래서 영어를 못하고 한국어만 했죠. 어느 날 아버지가 너무 놀라 6세부터 특수학교에 다녔어요.” 전태풍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기도 했다. “피부색깔 때문에 한국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어요. 한인 사우나에 가면 못 들어오게 막았고요. 미국 친구들은 한국 문화를 낯설어 했고요.”

캘리포니아 버클리대를 나온 전태풍의 아내 역시 혼혈이다. 10세 때 로스앤젤레스의 같은 교회에 다니며 친해졌다. 연락이 끊겼다 전태풍이 한국에 온 뒤 페이스북을 통해 예전 그 소꿉장난 친구가 서울 강남에서 영어 강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걸 뭐라고 하죠. 데스티니(운명). 서울 목동의 횟집에서 프러포즈했어요. 요리사에게 미리 말해 생선회 사이에 숨겨둔 반지를 끼워줬는데 그저 웃더군요.”

○ 내일

KCC에서 두 시즌을 뛰면서 준우승과 우승을 이끈 전태풍은 올 시즌이 끝나면 이적해야 한다. 귀화혼혈선수는 3년이 지나면 팀을 떠나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최근 전태풍은 “이건 디스크리미네이션(차별) 아닌가. 나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국적을 얻은 뒤 미국에 입국할 때는 심사 받는 데 1시간도 넘게 걸린다. 인천공항 돌아올 때면 너무 신난다. 한국인이라 5분이면 들어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종료 후 전태풍은 동부, 오리온스, SK, 모비스 중 한 팀으로 옮기게 된다. 4개 구단 중 최고 연봉을 적어내는 팀이 지명권을 얻는데 연봉이 최소 5억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부는 김주성이 있고 오리온스는 최진수 허일영 김동욱 같은 포워드가 너무 좋아요. 그래도 아직 몰라요. 일단 KCC에서 다시 우승하고 싶어요.”

올해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전태풍은 “승균이 형(추승균), 재현이 형(KCC 임재현)과 숙소에서 가끔 얘기를 한다. 정직하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을 뽑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6년 정도 더 선수로 뛸 생각인 그의 장래희망은 농구교실을 운영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공부를 안 하면 운동을 할 수 없었어요. 대학 학점은 4.0 만점에 2.5점이었죠. 한국에선 선수들이 공부를 거의 안 했더라고요. 나중에 어린 학생들에게 농구와 함께 영어도 가르치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전태풍의 코리안 드림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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