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버지 만난 입양아 출신 준태 씨 “이 손 잡는 데 25년… 다시는 안놓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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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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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입양아들이 차린 카페 ‘네스트’ 가보니

준태 넬리슨(김준태) 씨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해외 입양아 지원 카페 ‘네스트’에서 친아버지를 만나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꼭 잡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준태 넬리슨(김준태) 씨가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해외 입양아 지원 카페 ‘네스트’에서 친아버지를 만나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꼭 잡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내가 너무 고맙다. 건강하게 자라줘서….”

아버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아들의 손을 움켜쥔 투박한 손은 바르르 떨렸다. 눈은 금세 붉어졌다. 고개를 푹 떨어뜨린 아버지는 마른 입술로 “잘 커줘서 고맙다”는 말만 되뇌었다. 장성한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힘껏 안았다. 그러곤 서툰 한국어로 천천히 말을 건넸다. “아빠. 저 괜찮아요. 저 기뻐요.” 아들의 품에 안긴 아버지의 어깨가 들썩였다.

○ 해외입양아의 ‘둥지’

27일 오후 3시 김모 씨(51)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카페 ‘네스트’에서 아들 준태 넬리슨(김준태·25) 씨를 25년 만에 만났다. 김 씨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박모 씨(52·여)를 만나 동거하다 준태 씨를 낳았다. 그러나 겁부터 났다. 마땅한 직업이 없어서 양육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김 씨와 박 씨는 생후 6개월 된 아들을 네덜란드로 입양시켰다. 입양 수속 서류를 작성하던 김 씨는 아들의 이름을 고심 끝에 ‘준태’로 적어 넣었다. 아들은 이 이름을 버리지 않고 25년 동안 지켜왔다.

김 씨 부자의 첫 만남이 이뤄진 ‘네스트’는 10월 해외입양아 후원단체인 사단법인 ‘둥지’가 해외입양아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기 위해 세운 카페다. 수익금 전액은 해외입양아 친부모 찾기에 쓰인다. 김 씨와 준태 씨도 둥지의 주선과 지원으로 이곳에서 상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날 어머니 박 씨는 나오지 않았다. 몇 해 전부터 자궁암을 앓던 박 씨는 최근 암세포가 뇌로 전이돼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준태 씨는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비행기에 올랐다”며 “아버지를 만나 기쁘지만 아픈 어머니를 만나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현재 네스트에는 통역 등을 담당하는 김정수 점장(28)과 뱅자맹 세브레이(한명호·30·프랑스) 씨, 존 브랜디(노창수·28·미국) 씨 등 2명의 입양아가 일하고 있다. 준태 씨와 마투 빌누브(백영호·26·프랑스) 씨도 곧 네스트의 식구가 된다. 뱅자맹 씨는 “한국에 들어와 3년 동안 친부모를 찾았지만 아직 생사조차 모른다”며 “내가 일해 번 돈으로 준태 씨처럼 부모를 찾는 모습을 볼 때면 너무 기쁘고 나도 희망이 생긴다”고 말했다. 둥지의 이안순 사무국장은 “네스트는 우리말이 서툴러 직장을 갖기 어려운 입양아가 일하며 돈도 벌고 같은 처지의 입양아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네스트는 결국 입양아가 입양아를 위한 일을 하는 카페인 셈이다.

○ 입양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

물론 준태 씨처럼 부모를 만나는 건 운이 좋은 경우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입양아들은 서빙 등의 일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며 부모와 만날 꿈을 키우고 있다. 내년부터 네스트에서 일할 예정인 매슈 로버트(서마태·33·미국) 씨는 최근 어머니를 찾았지만 얼굴을 보진 못했다. 노숙생활을 하고 있는 어머니는 매슈 씨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그러나 매슈 씨는 “엄마가 날 만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며 웃었다.

이 사무국장은 “내년에 서울시로부터 사회적 기업에 선정되면 1인당 100여만 원의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10여 명의 입양아를 더 채용할 수 있다”며 “입양아들이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네스트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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