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근 “탈당”… 한나라 분열 신호탄?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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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총서 친박-쇄신파 충돌

재창당 주장 수세 몰리자 김성식-권영진도 탈당 시사

한나라당이 재창당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13일 의원총회에서 재창당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주류를 이루자 재창당을 주장해온 정태근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다. 한나라당 분열과 난파의 첫 신호탄이다.

김성식, 권영진 의원도 탈당을 시사해 최근 잇단 선거에서 민심의 쓰나미를 맞은 한나라당의 위기가 정점을 향해 치닫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들의 탈당이 즉각적인 당의 붕괴나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쇄신파의 재창당 요구에 대한 당내 울림이 아직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한나라당은 당의 간판을 내리는 문제를 놓고 전날에 이어 이틀째 충돌했다. 의총이 열리자 친박(친박근혜) 진영이 대거 나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될 박근혜 전 대표에게 “재창당을 추진하겠다”는 확답을 요구한 쇄신파를 집중 공격했다.

이날 의총에서 발언한 28명 중 22명이 재창당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박근혜 비대위’에 전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전날 의총에서 재창당 주장이 2배가량 많았던 것이 하루 만에 뒤집힌 셈이다.

수적으로 밀린 쇄신파는 집단 탈당을 예고하며 배수진을 쳤다. 27, 28번째 발언자로 나선 김성식, 정태근 의원이 탈당 의사를 밝히자 의총장은 순간 혼돈 상태에 빠졌다. 안형환 의원은 “두 의원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박 전 대표밖에 없다”며 박 전 대표가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친박 중진인 홍사덕 의원도 “두 의원이 탈당 기자회견을 하지 못하도록 말려야 한다”고 나섰다.

▼ 쇄신파 “박근혜 의총 나와라” 친박 “악역 맡으란 말이냐” ▼

하지만 정 의원은 의총장을 빠져나와 곧장 탈당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낡은 정치구조를 깨기 위해 재창당을 간절히 바랐는데 한나라당은 자신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버리기보다는 여전히 지금의 정치구도 속에 안주하고 있다”며 탈당 배경을 밝혔다.

탈당이란 돌발 변수로 비대위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하는 당헌 개정 작업은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박 전 대표의 ‘전면 등장’ 일정도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14일 열리기로 한 상임전국위는 15일로 연기됐다.

4시간 반가량 진행된 의총은 특별한 결론 없이 정식 폐회 선언도 하지 않은 채 끝났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탈당 의원들이 오래전에 마음을 정리한 데다 조건을 달고 나간 게 아니어서 붙잡기가 쉽지 않다”며 “이 문제와 관련해 박 전 대표를 만나는 것도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에서도 이들의 행동을 ‘계획된 탈당’으로 보는 분위기다.

쇄신파의 재창당 주장에 대해 어떤 세력들과 어떤 가치로 신당을 만들자는 것인지에 대한 본질적 내용이 빠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정당정치를 복원하자면서 기존 정당을 깨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앞두고 현 민주당 세력이 6개월 동안 4번이나 창당을 하거나 당명을 바꾸자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쇄신파는 1996년 민자당을 모태로 신한국당을 창당한 일을 성공사례로 꼽고 있다. 하지만 당시는 당의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창당을 주도한 데다 1년여 전부터 신진인사 영입 작업을 벌여 현재와 상황이 크게 다르다.

재창당 주장이 ‘MB(이명박 대통령)와의 단절’과 ‘당적 세탁’을 위한 것이란 부정적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수도권 일부 초선, 재선 의원들을 제외하면 ‘비박(비박근혜) 진영’에서도 재창당 주장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MB 직계로 통하는 조해진 의원은 “이명박 정부와 단절하겠다는 시도는 부질없는 짓이며 전통적 꼼수”라며 “이회창 후보(1997년 대선) 때 문민정부와의 차별화를 위해 ‘YS(김영삼 전 대통령) 화형식’까지 했지만 차별화는커녕 여권 분열을 가져와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놓쳤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도 “상대도 없이 우리 의지만 갖고 재창당을 하자는 것인데 판만 벌이면 누가 오겠느냐”며 “국민 눈에는 총선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만 비칠 뿐 공감을 얻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런 파국의 근저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쇄신파는 친박 진영이 내년 총선의 공천권만 쥐고 당 쇄신 과정에서 수도권의 극단적 위기감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을 것이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날 쇄신파가 박 전 대표의 ‘불통(不通)’ 문제를 집중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성식 의원 등은 1주일 전쯤 쇄신파의 주장을 담은 문건을 박 전 대표 측에 전달하고 면담 요청을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일관된’ 의총 불참도 성토 대상이었다. 정두언 의원은 “청와대의 ‘오더’대로 하다가 (당이) 망했는데 청와대가 무력화되자 지금은 다른 오더대로 하고 있다. (박 전 대표와) 얘기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반면에 친박 진영은 쇄신파가 박 전 대표를 ‘얼굴마담’으로 활용하기 위해 ‘재창당 결의’를 요구한다고 의심한다. 이 때문에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표가 자기 손으로 한나라당을 일궜는데 MB를 내몰고 당을 해체하는 악역을 맡으라는 말이냐”고 반발하고 있다. 윤상현 의원은 “비대위가 철거용역업체고, 박 전 대표가 철거용역업체 사장이냐”며 “박 전 대표를 신당 개혁 이벤트의 모델로 쓰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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