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정도준-박원규-이돈흥 ‘서예삼협 파주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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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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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서 내년 2월 29일까지

서예삼협 파주대전(왼쪽), 정도준 씨는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문자의 조형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통해 한국의 서예를 서구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오른쪽 위), 진지한 실험과 다채로운 조형어법으로 우리 서예의 지평을 확장시킨 박원규 씨는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을 선보였다.(오른쪽 가운데),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이돈흥 씨는 힘찬 획으로 산 이미지를 그려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오른쪽 아래)
서예삼협 파주대전(왼쪽), 정도준 씨는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문자의 조형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통해 한국의 서예를 서구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오른쪽 위), 진지한 실험과 다채로운 조형어법으로 우리 서예의 지평을 확장시킨 박원규 씨는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을 선보였다.(오른쪽 가운데), 전통을 충실히 지키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구축한 이돈흥 씨는 힘찬 획으로 산 이미지를 그려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오른쪽 아래)
눈이 행복한 전시다. 현대 서예의 고수들이 붓으로 일합을 겨루는 ‘서예삼협 파주대전(書藝三俠 坡州大戰)’에 대한 얘기다. 경기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의 갤러리 한길, 북하우스 아트스페이스를 통째로 사용한 대규모 기획전으로, 전통과 이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실험이 맞춤하게 균형을 이루며 보는 이를 빠져들게 한다.

참여 작가는 전통을 충실히 지키며 자기 세계를 구축한 학정 이돈흥(64), 이미지와 글이 공존하는 과감한 작업으로 서예의 영토를 확장한 하석 박원규(64), 전통과 현대적 재해석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소헌 정도준 씨(63). 이들은 평화롭지만 치열한 내공 대결을 펼쳐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한길사가 창사 35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이 전시는 정통 필법과 이를 응용한 작품에 두루 능한 작가들을 통해 서예의 미학과 가치를 새롭게 일깨운다. 김언호 대표는 “서예가 사람들과 동떨어진 섬처럼 존재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다리를 놓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 중 특강이 열리고, 한정판 도록도 발간된다. 내년 2월 29일까지. 031-955-2041

○ 3인 3색의 축제

단순한 획으로 무등산을 생생히 되살려내고(학정), 문자를 해체하면서도 그 본질은 지켜 우리 서예의 미학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하며(소헌), 벽을 가득 채운 서체의 웅장한 향연과 추상적 이미지가 시선을 압도한다(하석). 정통 서예부터 시각적 이미지가 도드라진 작품까지 어울린 전시는 흰 화선지를 벗어나 빨강, 노랑 종이를 쓰고, 일반 액자 대신 발광다이오드 패널을 활용하는 등 서예와 현대미술의 만남을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 작가의 길은 각기 달랐다. 학정의 스승은 광주에서 활동한 성곡 안규동. 하석은 강암 송성용의 문하에서 서예를 배웠고, 소헌은 일중 김충현을 사사했다. 학정은 우직하게 작품 활동을 하며 후학을 양성해 서예의 저변을 넓혀 왔다. 원교 이광사와 추사 김정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학정체’를 일궈낸 그의 작품에선 “쓰면 느는데 어떻게 안 쓰겠는가”라고 말하는 뚝심과 끈기가 그대로 묻어난다.

영상세대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조형어법을 선보인 하석은 문자학 소양과 필법 이론에 해박한, 학구적인 서예가다. 1979년 동아미술제 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이미 시도한 형식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정신 아래 모색과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림문자가 만들어진 원시로 회귀한 듯, 문자와 이미지를 낙서처럼 쓱쓱 그린 듯한 작업에선 ‘팽팽하게 당긴 활처럼 극적 긴장과 내적 활력’이 충만하다.

소헌의 경우 내용과 조형, 언어와 이미지에 동등한 무게를 두고, 가장 정통적이면서도 가장 현대적인 서예의 미학을 구사한다. 지난 10년간 구미에서 잇단 초대전을 열면서 한국 서예를 해외에 알리는 데 가장 앞장선 서예가다. 전시에선 문자들이 수직과 수평, 원과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시도와 서예의 격조가 조화를 이루며 눈길을 붙잡는다.

○ 기운생동의 세계

서예를 고리타분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전시는 영상 시대의 중심에서 ‘붓글씨’의 존재 이유와 생존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한자 문화권의 정수가 서예에 있다고 침묵으로 웅변하기 때문이다.

한자를 읽을 줄 모른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한글이든 한문이든 글자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우선인데다 글씨의 시원으로 돌아가 그림문자처럼 재해석한 작업도 많다. 이돈흥 씨는 “내용과 상관없이 먼저 그 안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생동의 감정을 느껴보라”고 권한다. 분석과 해독이 아닌, 만남과 느낌을 중시하는 현대미술의 감상법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세 작가의 개성을 나름대로 익힌 뒤 다시 한 번 작품을 감상하면 더욱 흥미롭다. 전시장 곳곳에서 한 해를 마감하기 딱 좋은 글귀를 만나는 것도 덤이다. ‘성공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행복은 얻은 것에 만족하는 것이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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