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잇단 정치발언에 술렁이는 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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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판사 ‘페이스북 反FTA 표현’ 내부 논란

송승용 수원지법 판사(37·사법시험 39회)가 29일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에게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사유로 징계 등 불이익한 처분이 내려진다면 많은 판사들은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어 최 부장판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관련해 사실상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송 판사는 이어 “판사나 법원 직원들의 의견개진이 온라인상의 실력행사처럼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법관의 독립,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등의 화두에 대해서는 견결(堅決)한 믿음을 갖되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조금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해 법원 내부의 과열된 논란을 경계하기도 했다.

송 판사의 글은 최 부장판사의 글이 논란이 된 뒤 변민선 서울북부지법 판사(46·38회)에 이어 두 번째로 코트넷에 올려진 글이다.

변 판사는 28일 최 부장판사의 SNS 글 게재행위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것에 대해 “법관 개인이 페이스북에서 사적으로 얘기한 것을 공론의 장으로 끌고 와 재판 공정성을 단죄하고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려는 시도”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 글에는 29일 오후까지 30여 건의 지지 댓글이 달렸다.
▼ 일선 법원 판사들 집단행동 움직임은 없어 ▼

앞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42·33회)도 최 부장판사를 지지하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썼다. 페이스북에서 촉발된 논쟁이 법원 내부게시판으로 옮겨 붙고 있는 셈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29일 “법관이 SNS를 사용할 때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라”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법원 내부에선 이번 사태를 ‘법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근본적인 논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하다. 단순히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으로 구분되는 이념 싸움이 아니라 △공직자에게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 △판결과 관계없는 정치적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지 △SNS를 사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는지를 가리는 논쟁이라는 취지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각 재판부에서 점심식사 시간 등을 이용해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이 많은 의견 교환을 했다. 법원 내 메신저로도 상당히 많은 얘기가 오갔다”고 술렁이는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최 부장판사의 SNS 글 게재 행위에 대한 찬반 의견은 팽팽히 맞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에 대한 신뢰가 아직 부족한 상황에서 사법부 스스로가 정치적 목소리를 공공연하게 내고 이에 재반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의 한 배석판사는 “최 부장판사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단순히 친구 등을 상대로 사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시한 것이어서 문제 삼는 것이 오히려 부적절하다”고 맞섰다. 최 부장판사도 “판사가 정치적인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직무를 수행할 때 정치적 입장에 따라 편향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생각을 하는 것이나 가진 생각을 표현하는 것조차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법원 내부에서는 “최 부장판사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나온 직후 곧바로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이 사안을 회부한 것은 너무 성급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페이스북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윤리위 회부에 앞서 먼저 판사들의 의견을 수렴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최 부장판사의 글 게재 행위는 부적절했지만 이번 사안으로 징계를 받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했다”는 의견도 공감을 얻고 있다.

일선 법원에서 판사들의 회의 개최 등 집단행동 움직임은 현재까지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 판사와 변 판사가 코트넷에 쓴 글에도 법원 직원들이 댓글을 많이 달았을 뿐 판사들의 댓글은 한두 건에 그쳤다. 반면 법원 직원들로 구성된 법원노조는 최 부장판사 사건의 공직자윤리위 회부에 대해 “이번 조치는 개인의 사생활 및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법부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매우 잘못된 결정”이라며 비판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최 부장판사와 이 부장판사가 소속된 법원 내 진보성향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도 아직 조직적인 대응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 부장판사는 “강기갑 의원의 무죄 판결 등으로 공격받을 때는 ‘비판이 말도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선 우리법연구회 내부에서도 이견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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