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민주당 주장하는 ‘과테말라 - 볼리비아 ISD 사태’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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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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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美회사, 철로위 불법거주자 쫓아내라고 과테말라 정부 제소”본질은 철도운영권 다툼… ISD 때문 아니었다

2000년 4월, 볼리비아 제3의 도시 코차밤바에서 수돗물값 인상에 항의하던 시위자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0년 4월, 볼리비아 제3의 도시 코차밤바에서 수돗물값 인상에 항의하던 시위자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와 관련해 ‘과테말라, 볼리비아 사태’라는 이름으로 ‘괴담’ 수준의 유언비어가 인터넷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실체적 진실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ISD 괴담 확산’은 정동영 민주당 의원의 발언이 계기가 됐다. 정 의원은 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과테말라 철도운영 사업권을 딴 미국 회사가 철로 위 불법 거주자들을 쫓아내지 않는다고 정부를 걸어서 제소한 사건 같은 것들이 수십, 수백 건”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겨 볼리비아 경찰이 서민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빗물통을 부수고 다녔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야당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과테말라, 볼리비아 사태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사건들은 정말 ISD 때문에 벌어진 것일까.

○ 과테말라 철도 논란

야당과 일부 좌파 성향의 언론, 누리꾼들은 과테말라 철도운영권 사건을 ‘과테말라 정부가 불법 거주자를 퇴거시키지 않자 과테말라 철도운영사가 국제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ISD의 대표적 폐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테말라 사건은 불법 거주자 문제라기보다 미국계 철도운영사와 과테말라 정부 간 운영권을 둘러싼 10년간의 법적 다툼으로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1997년 10월 과테말라 정부는 미국 자본이 주축인 과테말라 철도개발공사(RDC)에 철도 및 부속시설(항만, 수송관, 광케이블) 운영권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극심한 경제침체, 반정부 무장 게릴라군의 활동 등으로 철도가 제 기능을 못하자, RDC에 6단계에 걸쳐 철도시스템을 개보수하는 조건으로 철도운영권을 준 것이다.

RDC는 800km에 이르는 과테말라 철도 복구 작업에 착수했다. 1998년 허리케인 ‘미치’로 철도시설이 파괴되는 수난을 겪었지만 1999년 4월 칠레까지 가는 상업철도를 복구했고 그해 12월 멕시코, 엘살바도르, 푸에르토바리오스(과테말라 동부 항구도시)를 잇는 철도를 재개통했다. 하지만 RDC는 자금난에 시달리다 1단계를 끝으로 철도 개보수 사업을 중단했다.

답답해진 과테말라 정부는 2004년 운영권을 회수해 ‘라몬 캄포요’라는 자국 투자자에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RDC가 거부했다. 양측의 견해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2006년 과테말라 정부는 ‘RDC가 국가에 손해를 끼치고 있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RDC는 이 조치가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에서 금지하는 ‘간접수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뒤 ISD를 활용해 2007년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신청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1997년 계약을 2004년 발효된 CAFTA에 근거해 제소하는 것은 소급 적용으로 무효”라고 밝혔지만 RDC 측은 “사업권은 1997년 따냈으나 결의안은 2007년에 채택됐다”고 주장했다. 통상 ICSID에 올라간 사건은 2년 안에 결론이 나지만 이 사건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류 중이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해외 ISD 피해 사례 점검▼

주장 “볼리비아, 상수도업자 美벡텔에 패소뒤 서민 식수용 빗물통 부숴”
진실 ISD와 무관한 민영화 반발… 빗물통 파손도 없었다

원주민 퇴거 문제와 관련해 RDC는 “우리는 퇴거를 위해 애썼지만 과테말라 정부가 철로 위 불법 거주자들을 내버려 두는 등 사업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과테말라 정부는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 원주민을 퇴거 조치하는 것은 원래 RDC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어쨌거나 이는 철도 운영권 다툼에서 불거진 부차적인 논란일 뿐 ISD 분쟁의 핵심 내용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김진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4년째 결론이 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이 사건이 얼마나 복잡한지를 보여 준다”며 “겉으로 드러난 게 이 정도이지만 10년에 걸친 사업권 다툼인 만큼 숨어 있는 내용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볼리비아 물 논쟁


남미 최빈국(2010년 1인당 국민소득 1858달러) 볼리비아는 1985년 2만5000%에 이르는 극단적인 인플레이션을 겪은 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권고로 신경제정책(NEP)을 추진한다. 이들 국제기구와 볼리비아 정부는 공공기관 민영화 등을 담은 사회구조조정 계획을 1998년 발표했는데, 이를 통해 볼리비아 제3의 도시인 코차밤바의 수도사업체 ‘세마파’를 매각하기로 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1999년 매각공고를 냈고, 아과스 데 투나리라는 업체가 유일하게 참여했다. 이는 미국계 건설사인 벡텔이 주도한 컨소시엄이다. 이 컨소시엄은 인수 조건으로 볼리비아 정부에 법 개정을 요구했다. 볼리비아 정부가 ‘법률 2029’라는 이름으로 수용한 법에는 최근 국내에서도 논란이 된 ‘황당한 내용’들이 포함됐다. 기존 상수도는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고, 일반 시민이 지붕에 빗물통을 설치해 빗물을 받으려면 정부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이는 영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볼리비아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샀고, 2000년 1월 영업 개시 직후 수돗물 값이 최대 400%까지 폭등하자 볼리비아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부상자 175명이 발생하는 등 시위가 확산되자 그해 4월 코차밤바 시장과 중앙정부, 시민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상수도 민영화는 취소됐다.

이에 반발한 벡텔은 ICSID에 제소했다. 볼리비아는 미국과 FTA를 맺지 않았지만 벡텔은 네덜란드-볼리비아 간 투자협정(BIT)에 포함된 ISD를 근거로 국제소송을 낼 수 있었다. 네덜란드 국적의 페이퍼컴퍼니가 이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벡텔은 처음엔 볼리비아 정부에 5000만 달러를 물어내라고 요구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떠나야 했다. 국내외의 강력한 지탄에 밀려 2006년 1월 단돈 2볼리비아노(약 400원)를 받고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무능하거나 부패한 정부와 해외 사업자 간의 결탁에 가까운 계약으로 발생한 사건을 마치 ISD 제도 자체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한 것. 또 ‘벡텔이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겨 볼리비아 경찰이 서민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빗물통을 부수고 다니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앞뒤가 아무렇게나 잘린 채 인과관계마저 뒤틀린 전형적인 사실 왜곡인 것이다.

서울대 신희택 법학과 교수는 “이들 사건을 극단적 민영화의 폐해를 배우는 교훈으론 활용할 수 있겠지만 ISD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례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미 FTA는 보건, 의료, 환경, 안전, 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ISD의 예외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남미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상훈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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