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이탈리아 명품 정장을 빛낸 차이나 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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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네질도 제냐 베이징 패션쇼

15일 중국 베이징의 투데이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중국 진출 20주년 기념 패션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지만
 ‘중국 속에서’라는 올가을 겨울 컬렉션 타이틀처럼 철저히 중국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15일 중국 베이징의 투데이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중국 진출 20주년 기념 패션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했지만 ‘중국 속에서’라는 올가을 겨울 컬렉션 타이틀처럼 철저히 중국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이탈리아 남성 명품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만큼 중국 시장에 공들이는 명품 브랜드도 없다. 남들은 이르다고 한 1991년 중국 베이징(北京) 페닌슐라호텔에 첫 매장을 열며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중국에 발을 디뎠다. 현재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중국 내 37개 도시에서 82개 매장을 운영하며 중국에 진출한 남성 명품 브랜드 가운데 매출 1위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남녀 브랜드를 모두 합할 경우 루이뷔통, 구치에 이어 3위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 고객들이 에르메네질도 제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 세계 고객 수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로선 중국을 위한 컬렉션을 따로 만드는 게 당연할 법하다. 동아일보 위크엔드3.0이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에르메네질도 제냐 중국 진출 20주년 기념 패션쇼’ 현장에 다녀왔다.

중화권 스타들 총출동…차승원도 스타일 뽐내

15일 늦은 오후 베이징에 있는 투데이 아트 뮤지엄 인근 거리 곳곳은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상징하는 사자상 원형 로고가 그려진 대형 선전물로 가득했다. 보통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 선전물을 쓰는 에르메네질도 제냐지만 중국에서만큼은 짙은 자주색을 택해 붉은색을 길조로 여기는 현지 분위기를 반영한 듯 보였다. 오전 기자회견을 위해 패션쇼장을 찾았을 때만 해도 마무리 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모습이었으나 오후 패션쇼장을 찾았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히 정리된 모습이었다.

패션쇼장 입구에 마련된 사진 행사장은 아시아 전역에서 몰려든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패션쇼장에 속속 도착한 중화권 연예인들은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적힌 검은색 벽보를 뒤로한 채 연신 플래시 세례에 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국 사극 ‘황제의 딸’의 헤로인 자오웨이와 미남 스타 황샤오밍은 손을 잡고 나란히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베이징=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중국풍 롱재킷, 격조높은 사교모임에 어울려▼

패션쇼가 끝난 후 열린 애프터 파티에서 이탈리아의 한 밴드가 연주하고 있다(왼쪽). 질도 제냐 에르메네질도 제냐 
최고경영자(CEO)가 중국 여배우 장쯔이(가운데 사진 왼쪽)를 자신의 아내에게 소개하고 있다. 안나 제냐 제냐재단 이사장이 
패션쇼에 앞서 열린 사진 촬영 행사에서 차승원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오른쪽).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패션쇼가 끝난 후 열린 애프터 파티에서 이탈리아의 한 밴드가 연주하고 있다(왼쪽). 질도 제냐 에르메네질도 제냐 최고경영자(CEO)가 중국 여배우 장쯔이(가운데 사진 왼쪽)를 자신의 아내에게 소개하고 있다. 안나 제냐 제냐재단 이사장이 패션쇼에 앞서 열린 사진 촬영 행사에서 차승원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오른쪽).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이날 패션쇼장에서 유독 눈에 띈 사람은 유일한 한국 스타 차승원이었다. 전직 모델 출신인 만큼 블랙 정장을 입은 차승원의 스타일은 다른 중국 톱스타들을 압도했다. 인터넷 등을 통해 차승원의 히트작 ‘최고의 사랑’이 중국 현지에도 소개된 터라 현지 취재진도 그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패션쇼장 인근에는 차승원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든 중국인 아줌마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사진 행사의 마지막 주인공은 중화권 최고의 스타 장쯔이와 리밍이었다. 이날 두 사람은 드레스코드를 맞춘 듯 블랙 의상을 함께 선보였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여성복 브랜드 ‘아뇨냐’의 블랙 원피스를 입은 장쯔이는 붉은 립 컬러와 매니큐어로 포인트를 줘 매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리밍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패션쇼에 단골로 참석할 만큼 제냐 브랜드에 무한 애정을 보내는 중국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리밍은 이날 사진 행사에서 에르메네질도 제냐 창업주의 손녀이자 제냐 브랜드의 이미지 디렉터를 맡고 있는 안나 제냐와 뜨거운 포옹을 나눌 만큼 각별한 우정을 과시했다.

패션쇼장에 들어서자 한가운데 황금색 원단으로 길게 장식된 런웨이가 눈에 띄었다. 중국 송나라 때 대표적인 회화작가인 장택단이 그린 ‘쿤밍 축제 중 강을 따라서’를 모티브로 삼은 황금색 원단은 이번 2011∼2012 가을겨울 에르메네질도 제냐 컬렉션의 목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듯했다. 컬렉션 타이틀도 ‘중국 속에서(In the Mood for China)’이다.

중국을 향한 오마주

이번 가을 겨울 컬렉션에서는 한층 강인해진 남성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의상이 많았다. 긴 가죽 코트에 허리에는 스마트폰을 휴대하기 편한 벨트를 맨 모습이 마치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를 연상시켰다(왼쪽). 동그란 선글라스에 칼라가 없는 중국식 코트가 20세기 초 중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오른쪽).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이번 가을 겨울 컬렉션에서는 한층 강인해진 남성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의상이 많았다. 긴 가죽 코트에 허리에는 스마트폰을 휴대하기 편한 벨트를 맨 모습이 마치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를 연상시켰다(왼쪽). 동그란 선글라스에 칼라가 없는 중국식 코트가 20세기 초 중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오른쪽). 에르메네질도 제냐 제공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고풍스러운 도시 전경을 연상케 하는 무대가 조명으로 그려졌다. 아치형 건물 입구 사이로 모자를 눌러쓴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다녔다. 기차가 오고 있음을 알리는 역무원의 벨소리에 이윽고 현악기의 나지막한 멜로디가 패션쇼장을 덮었다. 여행은 시작됐다.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이번 컬렉션 테마를 ‘중국’으로 잡은 만큼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색이다. 제냐를 상징하는 검정이나 회색 계통의 단색 의상보다는 금색 계열의 실크 안감을 넣은 외투나 빨간색 타이처럼 색상에서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다. 하지만 같은 빨간색이라도 검정이나 회색과 농담을 잘 섞어 튀진 않았다. 중장년 남성들도 저녁 사교 모임에서 충분히 소화해볼 만한 아이템이다.

물론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상징하는 회색과 검은색의 그라데이션 역시 컬렉션 전반을 아울렀다. 막 우린 차에서 느껴지는 농담, 붉은색과 갈색을 넘나드는 마호가니 색상, 한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대나무의 녹색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남성복에서 색상의 변화를 꾀한 시도로 보였다.

디자인에서도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오리엔탈리즘을 입었다. 중국 전통 복식 스타일을 반영한 롱재킷과 대나무 마디 모양을 본떠 직조한 울 소재의 핀스트라이프(얇은 줄무늬) 정장이 그것. 에르메네질도 제냐를 상징하는 얇은 줄무늬를 대나무 마디와 연결한 발상의 전환은 특히 돋보였다. 중국식 롱재킷도 서양의 정장바지와 잘 어울렸다. 옻칠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을 접목한 실크 타이는 검은색 정장과 찰떡궁합이었다. 차승원이 이날 패션쇼장에 매고 나온 아이템이기도 하다.

갈수록 겨울 한파가 거세지면서 코트나 재킷의 디자인에서 방한 기능이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졌다. 이번 컬렉션에서 선보인 왁스 처리한 무스탕 코트와, 겉과 안이 다른 색상으로 처리된 가죽 코트가 대표적 아이템이다. 신발이나 스카프, 모자에서도 라쿤 털을 사용하는 식으로 방한 기능은 물론이고 남성의 멋스러움까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액세서리 컬렉션도 동양적인 감성과 만나 한층 풍부해진 느낌이 들었다. 앞코가 살짝 위쪽으로 구부러진 가죽 부츠와 다양한 소재를 차용한 끈 없는 신발은 매번 구두 아니면 운동화만 신는 한국 남성들도 한번 시도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태블릿PC가 확산되면서 숄더백 스타일의 아이패드 케이스라든지 활동성을 가미한 허리 파우치, 스마트폰을 휴대하기 좋은 벨트 등은 정보기술(IT) 기기를 손에서 뗄 줄 모르는 남성들에게 유용한 패션 아이템으로 주목받았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남성 명품 브랜드. 1910년 생태학자를 꿈꾸던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비에라 알프스의 트리베로 지방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품질의 직물을 만들고자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를 세운 것이 그 시작. 4대째 가족 경영을 이어가고 있으며 1980년대 후반부터는 원단뿐 아니라 의류, 액세서리에 이르는 패션 브랜드로 거듭났다.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1991년 중국 베이징 페닌슐라호텔에 매장을 열며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현재 세계 80여 개국에서 매장 560곳을 운영하며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매출 9억6300만 유로(약 1조5000억 원)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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