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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슈퍼루키 獨함부르크 손흥민 키운 ‘사커 대디’ 손웅정의 눈물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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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슈퍼루키 獨함부르크 손흥민 키운 ‘사커 대디’ 손웅정의 눈물과 웃음

춘천=이인모기자 입력 2011-09-22 03:00수정 2015-05-2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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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때문에 살았다… 축구 때문에 주저앉았다… 축구 때문에 다시 뛴다
아들은 나의 못다한 꿈이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은 못다 한 아버지의 꿈이다.’

지난달 27일 독일 함부르크 임테크아레나 축구경기장.

심장이 터질 듯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경기 도중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렸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 진출한 손흥민 선수(19)가 쾰른과의 경기에서 2 대 2 균형을 깨고 골을 넣은 것.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손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춘천FC 유소년클럽 감독(49)의 눈에서도 뜨거운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손 선수는 공을 자연스럽게 패스 받은 뒤 수비수를 제치고 왼발 감아차기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 장면은 아버지와 아들이 그동안 수없이 반복해 연습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들은 상대 수비수와 헤딩 경합을 벌이다 떨어지면서 발목을 심하게 꺾였고 결국 다리를 절룩이며 그라운드를 나서야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아버지의 머리에는 오래전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떠올랐다. 손 감독은 20여 년 전 부상으로 프로축구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은퇴 후 겪었던 좌절감과 생활고…. 아들을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내기까지의 숱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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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상 은퇴 좌절…아들을 통해 희망을 찾다

손 감독은 한때 잘나가던 축구선수였다. 키는 168cm에 불과했지만 11초대 초반의 빠른 발을 이용한 돌파가 일품이었다. 춘천고 명지대 상무를 거쳐 프로축구에 입성했고 한때 태극마크도 달았다. 하지만 1989년 5월 9일, 프로축구 일화 소속이던 그는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대우와의 경기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오른쪽 측면을 돌파하다 수비수에게 걸려 넘어져 아킬레스힘줄이 파열된 것. 손 감독은 “그때 들린 ‘뚝’ 하는 소리가 관중의 함성 속에서도 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들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술을 받고 6개월 동안 재활 치료를 받은 뒤 복귀했지만 실력이 예전 같지 않았다. 부상 후유증으로 빠른 발은 무뎌졌고, 현란하던 드리블도 수비수에게 막히기 일쑤였다. 경기 출장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그는 결국 1990년 은퇴를 선택했다. 선수로는 막 물이 오를 28세의 한창 나이였다.

은퇴한 후 그는 중고교를 다닌 강원 춘천시에서 유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손 감독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다른 일은 할 수도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며 “맏이 흥윤이와 둘째 흥민이도 아이들 틈에서 축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저귀를 차고 다닐 때부터 장난감 공을 차고 놀았던 흥민이는 축구를 매우 좋아했다. 자신을 닮아 발이 빠르고 공에 대한 감각도 뛰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에게 직접 축구를 가르치면서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손 감독은 “초등학생이었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중량감이 있었다”며 “잘 가르치면 재목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손 감독은 스파르타식 지도에도 군소리 없이 따라준 흥민이가 대견스러울 뿐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해준 아이. 흥민이가 어릴 적에는 축구화 한 켤레 사주기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생활이 어려웠다. 더욱이 다른 아이들 틈에 끼여 연습을 하다 보니 흥민이는 남들보다 더 뛰고 더 달려야 했다. ‘감독 아들이라 잘봐 준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을 정식 경기에 내보내지 않고 개인 연습만 시킨다고 조롱하는 주위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춘천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흥민이는 3학년이 돼서야 실전 경험을 익히기 위해 8개월간 원주 육민관중(中)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무작정 개인 연습만 시킬 때 손 감독은 “미친 놈”이란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학교 축구부를 통해 선수로 성장하는 현실 속에서 손 감독의 시도는 분명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시도가 올바른 것이었음을 증명해냈다. 흥민이를 통해서다.

○ “나처럼 되지 말라”


손 감독의 지도 방식은 첫째도, 둘째도 기본기를 충실히 익히게 하는 것이다. 매일 2시간 반가량의 연습시간 동안 절반 이상을 볼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다루는 것)과 드리블 헤딩 러닝 등 기본기에 치중한다. 아들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아들은 자신처럼 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손 감독은 선수로서 자신에 대해 “창피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빠른 발 때문에 그나마 버텼지 기술이 너무 부족했다”며 “나 같은 선수로 안 만들려고 선수들에게 기본기 연습을 죽도록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훈련은 거의 매일 똑같다. 기본기 훈련과 미니게임이 전부다. 손 감독의 클럽 선수들은 정규 경기를 뛰지 않는다. 지겨울 법도 하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손 감독의 연습 방식이 효과적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흥민은 독일에서도 기본기가 충실한 선수로 꼽힌다. 독일의 에이전트와 영국의 스카우터들이 손 감독의 지도 프로그램을 견학하러 올 정도다.

손 감독은 “내가 선수 시절 겪은 시행착오가 오히려 아들과 제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며 “당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경기 승리에만 몰두해 기본을 배우는 데는 소홀히 했다”고 말했다.

엄격한 아버지 때문인지 아들도 자신을 평가하는 데 냉정함을 잃지 않고 있다. 흥민이가 프로에 데뷔한 지난 시즌에 대해 아들과 아버지는 똑같이 40점 수준으로 평가했다. 시즌 초반 3골을 넣으며 손흥민 시대를 예고했지만 아시안컵 출전 이후 컨디션 조절 실패로 출전 횟수가 줄어들었고 급기야 거품 논란까지 일었다. 하지만 이를 연습으로 극복했다. 올 6월 방문 때는 춘천에서 하루 1000개의 슈팅을 쏘는 등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연습에만 몰두했다.

○ 공지천의 연습벌레들


손 감독은 흥민이에게 “남과 똑같이 해서는 절대로 앞설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이를 실천하는 것은 오직 연습뿐. 이 때문에 흥민이는 독일에 진출해서도 연습을 거르는 날이 없다. 손 감독이 독일에 가 있는 날은 부자(父子)가 춘천에서와 마찬가지로 땀을 쏟는다. 한번은 흥민이가 독일에서 귀국한 날 춘천으로 오는 차 안에서 갑자기 축구화로 갈아 신기 시작했다. 차 안의 일행이 “뭐하는 것이냐”고 묻자 흥민이는 태연하게 “연습시간 됐잖아요”라고 답했다. 이때가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춘천FC 유소년클럽의 연습은 1년 365일 쉬는 날이 없다. 매일 오후 3시경이면 춘천 공지천 인조잔디 구장에 선수들이 모여든다. 공식 연습은 4시부터지만 이때 맞춰 나오는 선수는 거의 없다. 선수들이 연습 도중 걷거나 실수를 하면 가차 없이 손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욕설이 튀어나오기 일쑤다. 매일 10여 명의 학부모들이 연습 장면을 지켜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입단 당시 이 같은 지도 방식에 동의한 데다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흥민이가 경험한 연습 방식은 춘천FC 유소년클럽 선수 모두에게 적용된다. 현재 클럽 선수는 20명. 이들 모두 축구 하나에 인생을 걸었다. 이들에겐 흥민이가 동경의 대상이다. 클럽 출신 해외 진출 1호 선수이기 때문이다. 손 감독은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해외로 보낼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나간다. 그 시험대가 흥민이였다. 흥민이는 서울 동북고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들어갔다. 대한축구협회와 독일축구협회의 교류프로그램에 선발된 것.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고 기본기가 충실한 흥민이는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실력과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함부르크는 지난해 흥민이와 3년 정식 계약을 맺었다.

○ 성공 뒤에 가려진 험로


손 감독은 흥민이는 물론이고 축구를 하는 아이들에게 오직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꿈이다. 그의 과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던 그는 춘천에서 축구 선수생활을 하기 위해 중학교 입학과 함께 고향인 충남 서산을 등졌다. 이때부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롭고 힘겨운 합숙소 생활을 해야 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프로에서 3년가량 몸담았지만 연봉이 많지 않아 별로 벌어놓은 돈이 없었다. 춘천에서 10명 미만의 유소년들을 가르치며 헬스클럽 트레이너로 일했다. 한 달에 100만 원 남짓한 돈을 벌었다. 형 흥윤이에 이어 흥민이가 태어난 시기였다. 헬스클럽이 쉬는 날이면 막노동판을 찾아다녔다.

손 감독은 올해 초 유소년클럽을 해체하려고 했다. 아들의 개인 트레이너로 독일에서 뒷바라지에만 전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흥민이를 통해 인연을 맺은 독일과 영국의 에이전트, 스카우터들이 흥민이를 배출한 춘천FC 유소년클럽의 연습 방식을 보기 위해 찾아온 것. 이들은 연습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는 등 면밀히 지켜보고 돌아간 뒤 유럽 각국 축구협회나 구단과 제휴 형태의 축구 아카데미 건립을 제안했다. 현재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측과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건물과 용지 등 하드웨어는 한국이, 전문 코치 파견 및 유소년 프로그램 등 소프트웨어는 EPL이 맡는 방식이다. 국내에서 부담해야 하는 사업비는 약 3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예산 해결을 위해 펀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손 감독은 “국내 최고 수준의 축구 아카데미를 세우고 이곳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가르치고 세계무대로 진출시키는 것이 꿈”이라며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아들뿐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이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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