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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강진호]문화유산 디지털화, 국가가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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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강진호]문화유산 디지털화, 국가가 나서야

동아일보입력 2011-09-15 03:00수정 2011-09-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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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호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이제 새로운 것은 없다’고 혹자는 말한다. 백지 상태에서의 창조는 사라지고 기존의 것을 단지 변형하고 모방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변형과 모방이 거저 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비밀스러운 작용이 있기 마련이니 곧 ‘창의성’이다.

문화 부문은 어떤가. 구한말 이래 근대화가 본격화하면서 우리 문화는 끊임없이 변하면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근본의 가치와 주제가 변한 것은 아니다. 봉건의 늪에서 민족을 구제하고자 했던, 그 열의가 너무나 강렬해서 분별지마저 상실했던, 계몽주의자 이광수가 ‘무정’에서 힘주어 강조한 것은 정(情)이고, 그것은 후대에 김동리나 박완서에게, 심지어 최근 젊은 작가들에게까지 이어져 변주되어 왔다. 즉 과거는 늘 미래의 창조와 변형의 원천이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것이 없다는데도 매일 새로운 책, 새로운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인류는 끊임없이 상상하고 끊임없이 재창조해낸다.

신간이 나오면 그 전의 책들은 재배치되고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다가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어디론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태어난 지 오래된 책들, 오래전에 나온 그 많고 많은 책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가. 궁금한 일이 아니던가.

그들의 현주소는 천차만별이다.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저작물이 있는가 하면 소리 없이 폐기된 존재도 있고, 유령이 되어 떠도는 저작물도 있다. 충분히 향유되어야 하는데도 햇빛을 보지 못하고 땅 속에 묻혀 있는 저작물이 태반이다. 도서관의 먼지 낀 서가에서 찾아낼 수 있다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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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프로젝트라는 사이트가 있다. 당장 플라톤의 ‘향연’을 구해서 읽고 싶다면?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구하고 싶다면? 구텐베르크로 가면 된다. 이 사이트는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인문사회 분야에서 저작권이 소멸된 사후 50년이 지난 작가, 사상가들의 저작을 텍스트 파일로 서비스한다. 물론 돈을 받지 않는다.

우리도 무관심하게 방치된 공유저작물을 적절한 공간에 모아 놓으면 어떨까. 그리하여 서가에서 잠자고 있는 문화유산에 부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일을 처리하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무정’을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손가락 끝에서 편지를 작성하고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습속에 맞게 이들의 손가락 끝에 ‘무정’을 올려놓아야 한다.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말을 허언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지난 문화자산을 활용 가능하게 변형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에서 과거 문화자산을 디지털화해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분야에서 디지털화 작업이 진행되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여러모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고 그것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실정이다. 여기에는 물론 저작자의 권리문제가 끼여 있다. 저작권 문제가 개입되는 관계로 모든 문화자산을 디지털로 공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작권이 말소된 공유저작물만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그 양은 엄청나다. 휴대전화로 수만 편의 한국문학 작품을 검색해서 읽을 수 있고, 또 수십만 편의 잡지와 신문 기사를 자유롭게 찾아볼 수 있고, 필요하면 원문을 검색해서 필요한 구절만을 찾아낼 수도 있다.

젊은이들의 손가락 끝에 그 무한대의 저작물이 놓일 때 어떤 상상의 결과물이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무궁무진한 자원이지만 방치하면 버려지는 공유저작물이라는 광맥을 키보드로 찾을 수 있게 만들었을 때, 그것이 무엇이든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이 나올 것임은 틀림없다.

최근 애플이 삼성을 견제하고 제압하기 위해 공격적인 소송을 자행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새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기계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는 콘텐츠와 운용이 문제라는 것도. 우리가 문화자산의 디지털화에 좀 더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진호 성신여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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