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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잊혀졌던 ‘한국의 파브르’ 조복성의 곤충기 63년 만에 빛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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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rative Report]잊혀졌던 ‘한국의 파브르’ 조복성의 곤충기 63년 만에 빛을 보다…

동아일보입력 2011-09-08 03:00수정 2012-01-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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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웅 씨 ‘역사 발굴, 집념의 12년’
우연히 손에 쥔 곤충채집여행기… 나라 잃은 학자의 눈물이었다
1939년, 나라 없이는 학문도 없던 그때에 조선과학운동 등을 펼치며 곤충 연구에 매진했던 조선인이 있다. 조복성(1905∼1971). 광복 이후 초대 국립과학박물관장을 지냈고 고려대 동물학 교수이자 한국곤충연구소의 설립자로 세상 떠날 때까지 곤충 연구에 매진해 ‘한국의 파브르’라 불렸던 사람.

광복 후 (정치적) 혼란기에서 1948년 그가 출간했던 ‘조복성의 곤충기’가 최근 복간됐다. 오랜 세월이 지나며 학계에서조차 잊혀졌던 이름, 조복성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미 절판돼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고서점에서조차 찾기 힘든 그 책을 8년간 찾아다니며 그를 되살려낸 또 다른 곤충애호가 황의웅 씨(41). 곤충표본으로 둘러싸인 연구실에서 조복성에 매료된 황 씨를 만났다. 60여 년의 세월 차에도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매우 많았다.

○ 빼앗긴 조국을 위해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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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39년 내몽골 지역. 경성제국대 동물학과의 조교수였던 서른넷의 조복성은 떨리는 두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뒷목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등 뒤로 서늘하게 느껴지고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짐승이 내뿜는 살기(殺氣)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 여기서 죽으려고 그 수모를 참았던 건가.’ 그의 머릿속에 1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일본의 동물학을 뛰어넘는 저명한 곤충·동물학자가 되어 식민지 조국의 교육에 이바지하기 위해 경성제국대의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에게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 일본이 한반도에 이어 중국 대륙을 장악하기 위해 조직한 ‘대륙문화연구회’에서 중국과 몽골 지역의 생물, 지리 등을 조사하는 학술조사 연구원이 필요했던 것.

12년간의 열정으로 ‘조복성 곤충기’를 복간한 황의웅 씨.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자인 동시에 대단한 곤충 애호가다. 서울 청계천 풀숲이 우거진 곳에서 ‘조복성 곤충기’를 손에 쥔 그가 나뭇잎에 앉아 있는 풀벌레를 유심히 보고 있다. 작은 사진은 곤충학자 조복성과 그가 쓴 ‘곤충기’. 장승윤 기자 tomato@donga.com
곤충을 연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지만 일제의 끄나풀이 되는 것 같아 조복성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중국에서 얻게 될 광범위한 지식과 정보도 제국주의자의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조복성은 몽골 지역으로 떠났다.

엄청난 물을 담고 있는 푸른 호수, 몽골 지역의 맑고 고요한 수면 위로 한가로이 노니는 나비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눈앞의 대왕팔랑나비에 집중하고 있던 조복성의 시야를 검은 그림자가 덮었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굶주린 야생 곰의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옆에 있던 포수가 총을 장전하기도 전에 곰의 이빨이 포수의 얼굴을 덮쳤다. 선혈이 조복성의 얼굴에 튀었다. 원주민이 설치해 놓은 덫에 새끼를 잃은 어미였다.

‘다 끝났구나….’

조복성은 두 눈을 감았다. “탕, 푸드득.” 밀림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뒤처진 조복성 일행을 걱정해 발걸음을 돌린 일본군 호위대가 쏜 총소리였다. 놀란 곰은 달아났고 조복성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 조복성을 만나다


또 허탕이었다. 2004년 가을 고서적이 많기로 유명한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앞 헌책방 이오서점에도 그 책은 없었다. 먼지 쌓인 서고를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조복성 곤충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곤충기’를 찾아나선 지 벌써 5년째. 여기서 그만 멈춰야 하는 걸까.’ 아침 일찍 나섰건만 어느덧 하늘은 노을로 붉어졌다. 황 씨의 그해 가을은 그렇게 한숨 속에 저물고 있었다. 그가 조복성의 곤충기를 처음 알게 된 것은 5년 전인 1999년이었다.

“황 형. 내게 좋은 책이 한 권 있는데 이런 곤충학자가 있었는가 싶어요. 관심 있으면 좀 볼래요?”

평소 곤충 애호가로서 곤충 채집 및 곤충 관련 고서적을 수집하던 황 씨에게 친한 고교 동창이 한 권의 책을 건넸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조복성의 곤충채집 여행기’라고 써 있었다.

조복성, 곤충학자로서 몇몇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동물학회장을 지냈다는 간단한 이력 외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여행기를 읽어 내려가던 중 그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곤충학 관련 논문을 발표한 학자였고 처음으로 울릉도 곤충에 대해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기에 금강산, 백두산, 울릉도, 만주, 몽골 등지를 구석구석 찾아가 곤충을 채집하며 자신의 삶을 불태웠던 곤충학의 선구자였다. 그가 1948년에 ‘곤충기’를 집필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학계 논문을 찾아봐도 조복성에 대한 언급은 극히 적었습니다.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기분. 절대 놓쳐선 안 될 것을 잃어버린 기분이었죠.” 황 씨가 전국의 고서점을 헤매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곤충채집 여행기’가 아니라 ‘곤충기’가 필요했다.

○ 그의 자취를 찾아 헤매다


1947년 조복성은 ‘금강산동물지’란 논문을 국립과학박물관 동물학부 연구보고서에 발표한다. 금강산에서 처음 채집한 무지갯빛 반점의 ‘제비나비’ 등 당시로선 희귀 나비종들을 소개했다. 조복성이 수년간 금강산을 다시 찾으며 채집한 곤충은 무려 300여 종에 달했다.

조복성이 나비를 찾아 금강산 구석구석을 헤맸듯 2005년 황 씨는 ‘조복성의 곤충기’를 찾아 일본 도쿄(東京)의 간다(神田) 거리를 뒤지고 다녔다. 서울 인사동과 청계천의 고서점은 이미 수십 차례 방문한 후였다. 간다는 좁은 골목 사이로 150여 개의 헌책방이 밀집해 있는 곳이었다. ‘우리 고지도가 수백 장 보관돼 있을 정도니 분명 곤충기도 있으리라. 이번에도 찾지 못하면 포기한다.’ 이렇게 마음먹은 황 씨는 도쿄의 고서점 100여 곳의 문을 두드렸다.

한 집, 두 집, 세 집…. 하나같이 책방 주인들은 고개를 저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한 일본인 서적상이 조복성이란 이름에 반응을 보였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황 씨에게 그 손짓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퀴퀴한 종이 냄새, 어두운 골방,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한 줄기 햇빛, 뿌연 먼지. ‘드디어 찾았다.’ 책방 입구에서 창고로 들어가는 길지 않은 그 길을 걸으며 황 씨는 그렇게 믿었다.

서적상이 누렇게 바랜 고서 한 권을 꺼내왔다. 한자로 선명하게 쓰인 조복성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 왔다. 그런데 제목이 달랐다. 일본어로 ‘원색의 조선 접류(蝶類)’라 적혀 있었다. 그가 찾던 책이 아니었다. 황 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복성의 이름이 쓰인 그 책을 부여잡고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곤충기’를 찾아 나선 지 7년째였다.

‘원색의 조선 접류’. 1934년 조복성이 일본인 학자들과 함께 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나비도감이다. 황 씨가 첫 장을 넘기자 마치 나비들이 살아 있는 듯 그려져 있었다. 조복성이 직접 그린 것이다. 섬세한 날개 무늬, 우아한 듯 길게 뻗은 더듬이. 오랜 연구와 관찰이 있어야 가능한 그림이었다. 그 많은 나비와 선명히 새겨진 조복성의 이름. 황 씨는 조복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었다.

1930년 조복성은 ‘울릉도산 인시목’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학 논문이자 세계 최초의 울릉도 곤충 조사였다. 그의 나이 불과 스물다섯이었다. ‘동해 한가운데 외로이 떠있는 저 섬이 꼭 나와 같구나. 나라를 잃은 학자는 이토록 외로운 것이다.’ 울릉도는 꼭 그의 처지와 같았다.

논문을 발표한 조복성은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학자들과 강연회 개최, 탐사여행 등의 활동을 펼쳤다. 또 조선어학회와 함께 일본어로 된 학명을 하나하나 우리말로 고치며 토종 곤충의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주는 일에 앞장섰다.

1945년 마침내 광복은 찾아왔고 조복성은 곧바로 곤충기 작업에 들어갔다. 마침내 1948년 우리말로 쓴 조복성의 곤충기가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됐다. 근대 대중과학서의 시초였다.

○ 곤충기, 마침내 빛을 보다


도쿄의 고서점 거리에서도 찾지 못한 곤충기를 체념하며 살던 황 씨에게 2007년 가을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가끔 검색하던 인터넷 고서점 사이트에서 그토록 애타게 찾던 ‘조복성의 곤충기’를 발견한 것. 만지면 곧 바스러질 듯한 오래된 종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기는 순서, 우리말과 한자가 세로쓰기로 편집된 배열, 조복성이 손수 그린 곤충 그림들…. 감격 그 자체였다.

‘이 책은 나만의 것이어선 안 된다. 곤충을 주제로 한 대중과학서의 시초인 이 곤충기를 복간해야만 해.’

그러나 책을 복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시련이 많았다. 우선 조복성에 대해 아는 편집자가 전무했다.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황 씨는 조복성의 집념과 업적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찾아내고도 다시 살려낼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유족을 찾는 것도 시급한 과제. 조복성의 저작권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손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투병 중이었다. 결국 그는 2010년 외조카를 만나 책 복간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고 조복성이 세웠던 한국곤충연구소로 저작권을 위임했다.

바스러진 종이, 뭉개진 활자. 황 씨는 조복성이 당시 동아일보에 기고했던 글과 그가 집필한 교과서를 샅샅이 읽어가며 곤충기의 내용을 검증했다. ‘곤충채집여행기’의 내용도 정리해서 책 뒷부분에 덧붙였다. 그의 열정이 통한 것일까. 뜨인돌 출판사에서 흔쾌히 책을 복간하기로 했고 2011년 ‘조복성 곤충기’가 새로이 출간됐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조 선생님이 남기신 다른 책들과 조명 받지 못했던 그분의 훌륭한 업적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반드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조복성의 곤충에 대한 애착과 열정을 꼭 닮은 황 씨. 12년에 걸친 그의 노력 끝에 ‘조복성 곤충기’는 63년 만에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됐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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