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중산층 20년간 줄고 늙고 고단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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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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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비중 75.4%→67.5%
평균 연령 37.5세→47세… 적자 가구15.8%→23.3%

중견기업 부장인 박모 씨(42·경기 수원시)와 논술학원 강사인 박 씨 아내의 수입은 한 달에 500만∼520만 원. 각종 세금과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를 제하면 실제 계좌에 들어오는 것은 440만 원 정도다. 중산층 중에서도 소득이 높은 편이다.

그러나 다달이 나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2년 전 아파트를 사면서 빌린 돈의 원리금 상환에 90만 원, 두 자녀의 학원비에 70만∼80만 원, 가족 4명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요금 등 통신비에 20만∼25만 원, 퇴직연금 및 각종 보험으로 60만 원이 든다. 수입의 절반 이상이 통장에서 고스란히 빠져나간다. 여기에 각종 생활비와 경조사비를 쓰고 나면 저축을 하기가 쉽지 않다. 박 씨는 “여름방학 기간에는 아이들 학원비가 월 120만 원 정도 들어 외식 한 번 제대로 못했다. 백화점에서 옷을 산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면서 “마이너스통장의 대출액이 늘어만 가는데 나 같은 사람도 중산층이냐”고 반문했다.

○ 갈수록 줄어들고 늙어가는 중산층

현대경제연구원이 28일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1990년부터 20년간 한국의 중산층 변화를 분석한 결과 1990년 75.4%이던 중산층은 지난해 67.5%로 7.9%포인트 줄었다. 중산층은 통상적으로 도시가구 월평균 소득의 50∼150% 범위에 있는 계층을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0년 2인 이상 도시가구 중산층 월평균 소득은 약 322만 원이었다.

20년간 고소득층(가구 월평균 소득의 150% 초과)은 17.5%에서 20%로, 저소득층(가구 월평균 소득의 50% 미만)은 7.1%에서 12.5%로 늘어 양극화가 심해지는 양상이다.

중산층 가구주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1990년대에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30대의 고졸자’가 가장 많았지만 2010년에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40대의 대졸자’가 표상이 됐다. 특히 대표적인 자영업인 도소매, 음식, 숙박업에 종사하는 중산층 가구주 비중은 1990년 16.8%에서 2000년 23.2%까지 늘었다가 2010년 18.6%로 후퇴했다. 2003년 카드 대란에 따른 내수 부진과 구조조정 때문이다.

중산층 가구주의 평균 연령은 1990년 37.5세에서 2010년 47세로 열 살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맞벌이 비율도 15%에서 37%로 급증했다. 중산층이 되려면 더 높은 학력과 더 오랜 경제활동 기간이 필요하고, 부부가 동시에 벌어야 한다는 얘기다.

○ 중산층의 삶은 갈수록 고단

중산층이 되기도 어렵지만, 중산층이 살아가는 현실 또한 힘겨워지고 있다.

중산층 가운데 적자가구는 1990년 15.8%에서 2000년 24.2%로 최고조에 달했다가 2010년 23.3%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 자영업자 몰락과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중산층의 사업소득이나 재산소득은 줄어드는 반면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각종 비용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지출 가운데 부채 상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준조세, 사교육비, 통신비 등 4대 경직성 비용(가계가 줄이지 못하는 고정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년간 3배 안팎으로 뛰었다. 특히 부채 상환 비중이 1990년 10.4%에서 2010년 27.5%로 크게 늘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늘어나다 보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소비 여력은 줄었다. 중산층의 전체 지출에서 오락·문화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3%에서 2000년 4.7%까지 올랐다가 2010년 4.1%로 오히려 줄었다. 음식·숙박비 지출 비중은 2000년 10.1%에서 10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2000년에 비해 2010년의 적자가구가 0.9%포인트 줄어든 것도 중산층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동열 수석연구위원은 “중산층의 경우 호황기에 문화비 지출을 늘리고 불황기에 지출을 줄이는 탄력성이 두드러진다”면서 “중산층이 카드대란과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오락, 문화, 외식, 여행 비용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산층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을 장기에 걸쳐 분산시키고 사회보험료를 인상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한다”며 “특히 사교육비와 통신비 부담을 줄여 중산층의 소비 여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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