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차 IT혁명]<하>위기의 한국 IT, 돌파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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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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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원’ 경쟁보다 ‘온리원’시장 찾아라

“애플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철렁합니다. 삼성과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삼성전자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중견 협력사 A 대표는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고 한다. 올해 경영목표도 다시 검토하고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전쟁 여파로 혹여 애플이 반도체 구입처를 삼성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바꿀까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A 대표는 “애플이 공급처를 바꾼다면 미리 투자해 놓은 장비도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물량이 줄어들지 않겠느냐”며 “제조경쟁력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삼성전자도 고심하는데 우리가 직접 해외의 다른 반도체회사들을 찾아가볼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차 정보기술(IT) 혁명은 한국 시장을 불확실성 속으로 내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이고 1500개가 넘는 이들의 협력사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미 일반 휴대전화(피처폰)의 키패드 생산업체들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터치패드가 대세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 IT시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TV와 PC 부문 부품회사들은 ‘포스트 PC’라는 말이 막막하기만 하다.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 업체들도 두려운 존재다.

○ 한국업체, 中 3D시장서도 고전

이번 IT 혁명의 특징은 ‘플랫폼’ 중심의 거대한 글로벌 단일 시장의 탄생과 이 속에서 벌어지는 자원의 효율적 사용으로 요약된다. 경제학적으로는 과잉생산이 줄어들고 무역거래 비용이 ‘제로’에 가까운 이상적인 시장이다. 하지만 하드웨어 중심 규모의 경제로 커온 한국 기업들에는 불리한 점이 많다.

플랫폼 중심의 글로벌 시장이 생기는 바람에 구글과 애플의 전략에 따라 국내 기업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인터넷을 활용해 컴퓨팅 파워를 함께 나눠 쓸 수 있으니 하드웨어도 그만큼 덜 필요하게 된다. 기술 격차도 금세 따라잡히고 있어 중국 시장에선 3차원(3D) TV 시장마저 한국 업체들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IT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잘 이동한다고 해도 고용 문제는 남는다. 소프트웨어 중심의 IT 기업은 기존 하드웨어업체의 고용효과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세계 IT를 주도하고 있는 회사들은 모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캘리포니아 주의 실업률은 12%에 달한다. 벤처기업들이 연일 상승세를 타는 실리콘밸리 일대 샌타클래라 카운티만 해도 7월 실업률이 9.7%에 이른다. 미국 평균 실업률보다 0.5%포인트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프트웨어 부문은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적어 주 정부의 재정적자로 인한 공공 부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미국 AT&T 등 통신사들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콜센터 직원이 필요 없어졌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올해 7월 통신 부문의 일자리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비해 2만 개 줄었다. 마크 안드레센 네스케이프 창업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최고의 대우를 받겠지만 그 반대편에 있는 기존 산업의 사람들은 꼼짝없이 헤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비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관만 하기에는 이르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얘기다. 서원석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주도하던 PC시대에 한국 기업들이 최고의 실적을 냈듯이 애플과 구글이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에도 잘 적응해 나갈 것”이라며 “반도체만 봐도 후발 업체들이 무너지면 결국 삼성전자가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갑자기 닥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하버드 경영대 문영미 교수가 저서 ‘디퍼런트’에서 지적했듯이 이미 있는 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면 차별화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돼야 살아남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인텔은 최근 공상과학소설가를 영입해 상상력을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도 하드웨어의 경쟁력에 소프트웨어를 더해 나름의 존재가치를 높이고 있다. 500여 명에 달하는 ‘미디어솔루션센터(MSC)’ 조직을 외부 인력으로 채우고 기존 삼성문화가 아닌 자유로운 ‘왼손잡이’ 조직처럼 키우려는 것이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잘하며 혁신을 해내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선도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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