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월든’ 개정판(은행나무)이 최근 출간됐다. 이 책은 1993년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뒤 지금까지 30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다. 이번 개정판을 번역한 강승영 씨(67)는 18년 전 이 책을 처음 완역했던 주인공. 40여 년째 ‘월든’에 빠져 있는 그는 2004년부터 6년여 동안 소로를 연구하는 미국 학자들과 수십 통의 e메일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단어와 문장 400곳 이상을 수정했다. 현재 미국 시애틀 근교에 사는 강 씨는 2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재번역을 포함해 월든 번역에 후반기 인생 전체를 바쳤다”고 했다.》
‘월든’은 저자 소로가 1845년 월든 호숫가 숲 속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한 2년여의 삶을 담은 책. 톨스토이와 간디에게 큰 영향을 준 책으로도 알려졌다.
강 씨는 대학 2학년 때 처음 이 책의 원서를 접했다. 이후 마음의 번민이 생길 때면 항상 이 책을 펼쳤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왜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는지 안타까웠다. 30년 가까이 지난 후, 개인 사업을 정리하고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직접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심했다.
1992년 1월 그는 무작정 미국으로 떠나 도서관에서 각종 자료를 수집했고, 책의 배경인 월든 호수와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를 답사했다. 귀국 후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번역에만 몰두했다. 특히 낯선 새와 동물 등의 이름을 정확히 알기 위해 노력했다. 부엉이와 다른 올빼미의 울음소리를 알기 위해 조류학자에게 묻기도 했다.
1993년 5월 강 씨는 이레출판사를 차리고 첫 책 월든 완역판을 출간했다. 호평이 이어졌고 출간 첫해에만 3만5000부 넘게 팔렸다. 하지만 그는 1995년 출판사를 다른 이에게 넘기고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소로와 월든을 알리는 일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지만 월든은 그 뒤에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2000년대 초, 출판사에서 제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초판을 고쳐 이른바 ‘개정판’을 냈어요. 그래서 제가 잘못 고친 데를 되돌려놓고 20여 군데를 새로 수정해 2004년 개정 2판을 냈죠. 그 과정에서 초판에도 개선할 점이 많음을 깨달았어요. 찬찬히 재검토해 제대로 된 개정판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전 번역을 다시 읽어 보니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오역이 적지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예를 들어 ‘월든 호수는 한 번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해야 할 것을 ‘(월든 호수는) 단 한 번의 봄도 빼놓지 않았다’로 번역했어요. 샘 또는 봄이란 뜻을 지닌 ‘스프링(spring)’을 잘못 해석한 거죠. 초판 발행 당시 방송에 나가 이 문장을 참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칭찬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요.”
강 씨는 월든에 대해 “2011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산소 같은 책”이라며 “인간의 욕심으로 지구의 미래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 이 책을 숙독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소로는 주위에서 뭐라 하든 말든 자신의 철학에 따라 인생을 살았습니다. 저도 출세와 금전에 대한 욕망이나 사람에 대한 원망 등이 생길 때마다 월든을 읽으며 마음을 진정시켰죠. 더 많이 취하는 게 아닌, 더 많이 버리는 삶을 배울 수 있었어요.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덕목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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