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 뭐가 보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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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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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벵자맹 주아노 지음·신혜연 옮김·284쪽/1만4000원·21세기북스

얼굴은 육체적 존재와 상상적 공간이 만나는 특별한 곳이다.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 속 푸른 눈의 아프간 소녀(왼쪽)의 무표정한 얼굴과 강렬한 눈빛에서 전쟁과 폭력, 상실과 소외의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오른쪽은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스튜디오 사진과 카라바조가 그린 ‘메두사의 머리’. 21세기북스 제공
얼굴은 육체적 존재와 상상적 공간이 만나는 특별한 곳이다. 사진작가 스티브 매커리의 사진 속 푸른 눈의 아프간 소녀(왼쪽)의 무표정한 얼굴과 강렬한 눈빛에서 전쟁과 폭력, 상실과 소외의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오른쪽은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의 스튜디오 사진과 카라바조가 그린 ‘메두사의 머리’. 21세기북스 제공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소셜네트워크 ‘얼굴책(facebook)’ 열풍이 뜨겁다.

세계인들이 각기 조그만 얼굴 사진을 하나 내걸고 자신의 일상을 소통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훔쳐보는 타인의 일상은 실제생활과는 거리가 먼, ‘얼짱 각도’로 윤색된 현실이다. 소셜네트워크에 내비치는 ‘사이버 얼굴’은 자신이 통제하고 창조해내는 가면인 셈이다.

사람과 처음 만날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형상인 얼굴. 그러나 단지 눈, 코, 입, 이마가 모여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얼굴이라고 부를까. 고양이나 개에게도 얼굴이 있을까.》
저자는 “얼굴이란 인간만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호’ 체계”라고 정의한다. 얼굴이란 단순히 몸 위에 붙어 있는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사회와 집단 개인의 역학관계가 고스란히 담긴 문화적 상징이라는 것. 이 책은 그리스 신화의 메두사에서부터 한국의 돌하르방, 성형수술 후유증으로 녹아내린 마이클 잭슨의 모습까지 얼굴에 담긴 상상계를 인문학적으로 해설한다.

책에 따르면 모두들 각자의 얼굴을 인식하게 된 것은 ‘근대의 산물’이다. 거울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 온 태평양 솔로몬제도의 원주민들은 자신을 찍은 사진을 보고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얼굴 자체보다는 가면이나 장식, 장신구, 옷 등으로 정체성을 구분했다. 인간이 ‘걸친’ 최초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가면은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 역할과 지위, 아우라를 부여한다. 잠시나마 가면을 쓰고 영혼이나 조상, 신이 되는 것은 큰 영광이었다. 가면은 개인과 집단을 연결시키며, 신성한 세계로 들어가는 열쇠였다. 그러나 이슬람이나 한국의 조선시대 등 많은 문화권에서는 여성에게 가면을 주지 않았으며 그들의 얼굴은 가려졌다. 얼굴에 대한 부정은 공적 영역에서의 모든 권력,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상징적 부정이었다.

중세 기독교 문명에서 얼굴은 신성불가침한 존재였다. 아담의 얼굴은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기에 얼굴을 손상시키는 가면이나 분장, 장식은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변형된 얼굴을 한 존재(괴물)’는 신과 반대되는 악마의 이미지로 여겼다. 왕과 귀족들은 초상화를 수없이 남겼지만 민중들이 ‘얼굴 없는 존재’를 벗어난 건 근대 부르주아 혁명 이후다.

현대는 바야흐로 ‘얼굴 훼손(de-faceisation)’의 시대다. 수많은 사진과 예술작품 속에서 인간의 얼굴은 해체되고, 모욕당하고, 신성을 잃고 훼손됐다.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은 실제로 인간의 몸 전체가 해체될 수 있다는 충격을 던졌다. 당시 등장한 입체파의 작품에서 인간의 얼굴과 몸은 여러 각도에서 보는 것처럼 조각조각 잘려나갔고, 개개인은 여지없이 분열됐다.

국가 권력에 의한 얼굴통제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나치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위해 인종과 문화에 따라 인간을 측정하고 분류하는 ‘인체 측정학’ 기술을 사용했다. 물샐틈없이 구성한 수용소는 ‘세상에서 뿌리 뽑아야 할’ 유대인의 얼굴을 제거하기 위한 도구였다. 나치는 수용소에 끌려온 모든 이를 분류하고, 관리하고, 처리하기 위해 수천 장에 이르는 얼굴 사진을 남겼다. 프랑스 미술사학자인 장 클레르는 “나치즘이 이룬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얼굴을 상실케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얼굴 전체를 가리는 여인의 ‘부르카’, 9·11테러 이후 인질 납치와 참수 동영상, 마스크를 쓴 연쇄살인마를 다룬 영화 등 현대사회에서 얼굴 훼손의 위기는 점점 심화된다. 저자는 “이슬람에서는 이해 못하지만 얼굴을 통해 개인의 휴머니티를 인식해 온 서양 사람들에게 ‘부르카’는 충격적인 상징”이라며 “얼굴 없는 개인이 어떻게 타자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인격을 갖춘 시민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현대의 미디어와 성형수술 열풍은 ‘만들어진 거짓 얼굴’을 통한 얼굴의 비개성화를 부추긴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에게 비극이 일어나기 시작한 곳도 바로 그의 얼굴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근대는 터져오는 웃음 속에 얼굴이 폭발하고 ‘가면이 귀환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유럽에서 인기를 끈 정치인, 지식인, 앵커와 같은 사뭇 진지한 사람들의 얼굴에 흰 크림 파이 던지는 놀이는 유명인의 가면을 벗기고, 진짜 얼굴을 드러내도록 하는 대중의 놀이였다.

저자는 17년째 한국에서 한국학과 문화인류학을 연구해온 프랑스인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책들을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프랑스 출판사 아틀리에 데 카이에(l'Atelier des Cahiers)의 디렉터이기도 하다. 4일 기자와 만난 그는 “현대 사회의 ‘얼굴의 위기’는 인간성에 대한 낡은 정의가 도전받는 ‘문명의 위기’의 한 증상”이라며 “얼굴의 신성함을 되찾기 위해 비인간적 현대문명을 성찰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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