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연아처럼 탈진해본 적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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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0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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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휴, 힘들어.” 지난 토요일 아침신문마다 실린 김연아의 공항 입국장 표정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2018년 겨울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프레젠테이션(PT)을 앞두고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나라를 어깨에 짊어진 느낌”이라던 연아였다. 스위스 로잔 PT 때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고 했다.

평창 성공의 뒷북에는 잽싼 與野

수천, 수만 명 앞에서도 떨지 않았던 얼음의 여왕이(연습이 완벽하면 안 떨린단다) 그 조그만 어깨에 짊어졌던 나라의 숙제를 완수한 순간 그만 몸살과 급성위염에 탈진한 것이다.

연아가 유치단 귀국환영회와 기자회견에 빠진 채 병원에 실려 간 날,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와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평창 겨울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도록 남북 단일팀 구성에 노력한다고 발표했다. 김 원내대표는 “작년 천안함 사태 뒤 북한을 압박한 5·24조치를 중단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연아는 5·24제재 무렵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행사 참석을 준비하면서 “천안함 피폭으로 나라 상황이 안 좋으니 의상을 블랙톤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속 깊은 20대다. IOC 위원들의 역사적인 ‘평창 2018’ 결정에 기여했던 연아가 여야 원내대표의 순간적 합의에 더 탈진할지 알 수 없다.

두 정치인이 나라를 어깨에 짊어졌다는 책임감에 연아처럼 죽을힘을 다해 목표를 이뤄낸 적이 있는지도 나는 모른다. 분명한 건 2005년 5월 27일 교육부총리로서 “국립대도 사립대 수준으로 등록금을 올릴 필요가 있다”던 김 원내대표가 지난 6월 8일엔 “지금 등록금이 워낙 빠르게 오르니 국공립대 반값 인하정책을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사립대 등록금이 평균 579만 원에서 739만 원으로(2010년 현재 754만 원), 국립대는 309만 원에서 427만 원으로(2010년 444만 원) 빠르게 오른 것도 ‘지금’이 아니라 그가 당정고위직을 고루 누리던 노무현 정부에서였다.

황 원내대표가 반값등록금 논란의 불을 지른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지난달 한나라당 공청회에서 “대학들이 지원금 부족으로 등록금 인하를 못 한다는데 재산 기부 용의는 없나? 반값 세비 용의는?” 하고 묻는 내 말을 하회탈처럼 웃어넘겼다. 자신이 손해 볼 말도, 일도 안 할 사람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건지 궁금하다.

감동은 ‘땀과 헌신’에서 나온다

고백하자면 나는 평창에 열렬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연아의 PT를 보면서 평창의 비전이 우리나라의 명운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귀여운 눈웃음으로 시작해서 정말 진심을 다해 “평창의 성공이 의미하는 건 성공과 성취의 가능성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 모든 곳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하고 또 주어져야만 해요” 호소하는 연아를 보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창이 눈 안 오는 아프리카나 저개발국 청소년들을 초청해 겨울스포츠를 가르쳐온 드림 프로젝트를 ‘우리 사회 안의 아프리카’에도, 교육과 사회복지정책에도 적용한다고 상상해보라. 소외지역 저소득층부터 최상의 학교시설에서 최고의 교사가 가르치게 공교육을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이들이 제 실력으로 대학에 가고, 반값등록금 아닌 장학금으로 공부해 좋은 일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성공과 성취의 가능성 아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강조하는 이 좋은 정책을 딴나라 아닌 이 나라에서 펼친다면 2018년 전에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연아가 바로 열악한 빙상환경 속에서도 진심과 노력, 그리고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입증한 ‘살아있는 유산’이다. 한 누리꾼은 “대한민국에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했다. 공정사회가 뭔지 헷갈린다면 연아의 좌우명 ‘No Pain, No Gain(고통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을 알려주고 싶다.

‘무늬만 대학’에서 노력도 안 하면서 결과의 평등만 요구하는 사람들은 “내가 흘린 땀, 눈물, 잠 못 자고 투자한 시간, 포기한 즐거움 등 모든 것이 합쳐져 강심장이 됐다”는 연아를 배웠으면 좋겠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을 탓하고 있다면 “내가 평생 후회하지 않을 연기를 해서 성적과 상관없이 감동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다”던 연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쟁 없는 유토피아를 설파하는 세력이라면 “잘하는 선수들과 경쟁하면 더 좋은 성적이 나오더라”던 연아를 떠올리며, 남들 발목 잡지 말고 조용히 빠져주기 바란다.

유니세프 친선대사이기도 한 연아는 “어린 새싹들에게 더 나은 삶을 주려면 헌신이 필요하다”며 실천했다. 일신의 영달과 계파이익을 위한 일 빼고는 탈진해본 적 없는 정치꾼들은 ‘대인배’ 연아 앞에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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