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前 동아일보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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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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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투쟁은 반드시 승리한다”군사정권 압박에도 민주발전 헌신

3일 별세한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오른쪽)이 1982년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 회관에서 개막한 동아국제사진살롱 전시회에서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DB
3일 별세한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오른쪽)이 1982년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 회관에서 개막한 동아국제사진살롱 전시회에서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DB
3일 별세한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은 1981∼82년 동아일보 사장, 1983∼89년 회장을 지내며 엄혹한 군사정권의 압박하에서도 신문경영 일선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고인은 1981년 3월 2일 사장 취임사를 통해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기로에 당면한 현 상황에서 동아일보의 사장 자리는 영광의 좌석이 아니라 고난의 자리임을 잘 알고 있다”며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은 오랜 시일이 걸리는 일종의 지구전이기 때문에 동아의 과거가 그랬듯,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으로 궁극의 목표를 향해 꾸준하고 의연하게 전진해 나가자”고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김 전 회장은 다양한 문화사업으로 국내 문화 발전에도 앞장섰다. 1981년에는 서울 여의도 사옥에 ‘동아문화센터’를 개설해 평생교육의 장을 열었다. 1984년에는 ‘음악동아’ ‘월간 멋’ 등 2개의 월간지를 창간하며 잡지 저널리즘의 영역을 확장했다. 4월 음악동아 창간호는 ‘지휘봉의 제왕 카라얀’ ‘스페셜 인터뷰-윤이상’ 등을 실어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고인은 동아일보의 사세 확장에도 힘을 쏟았다. 동아일보는 1981년 신년호부터 12면에서 16면으로 증면했다. 발행부수도 1979년 100만 부에서 5년 새 50만 부가 증가해 1984년에는 한국 일간신문 사상 최초로 발행부수 150만 부를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 신문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

고인은 한국민간방송협회 이사와 방송윤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며 방송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종숙 씨와 장남 병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고려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 차남 병표 씨(주원 대표이사), 딸 창원 영원 효신 씨 등 2남 3녀, 사위 이종훈(개인사업) 이민교 씨(변호사), 며느리 주영아 신준희 씨가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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