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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차 한 잔]37년만에 ‘나혜석’ 복간한 이구열 근대미술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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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차 한 잔]37년만에 ‘나혜석’ 복간한 이구열 근대미술硏 소장

동아일보입력 2011-07-02 03:00수정 2011-07-02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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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품지못한 천재의 불꽃 미술사에 부각시키고 싶었다”
“37년 전에 한 번 책을 낸 이후 그간 나혜석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느낌입니다. 20세기 여성사나 미술사에서 그가 제대로 부각돼야 한다는 생각에 이미 고서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워진 책을 다시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 소장(79·사진)은 1974년 출간한 ‘나혜석 일대기’를 37년이 지난 지금 ‘그녀 불꽃같은 생애를 그리다, 나혜석’이란 제목으로 다시 펴냈다. 전작에서 나혜석의 사망 시점을 ‘1946년 50세, 사망’으로 잘못 기재했던 것을 이번에 ‘1948년 12월 10일, 서울시립 자제원에서 53세로 사망’이란 확실한 기록으로 바로잡았다. 그리고 전에 공개하지 못했던 나혜석의 미국 여행 원고와 위자료 청구 소송문 등을 새로 보완했다.

“나혜석이 남긴 삶을 정신없이 뒤쫓으며 느꼈던 37년 전 전율을 이번에 새로 쓰면서도 여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그의 글에서 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혜석은 1920, 30년대에 활동한 화가이자 문인, 시대를 앞서간 여권론자였다. 한국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도쿄여자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귀국 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또 16개월 동안의 세계일주 및 자유연애와 시험결혼 등 당시로선 파격적인 행동으로 늘 화제 인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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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을 졸업하는 여성이 많지만 막상 사회 곳곳 기관에서 활동하는 비율은 매우 적어요. 나혜석이 지금 살아있다면 또다시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썼을 겁니다.”

나혜석은 1934년 월간 ‘삼천리’에 게재했던 글로 당시 사회로부터 온갖 비난과 외면을 받는다. ‘이혼고백장’이란 제목의 글에선 ‘자기는 정조 관념이 없으면서 처나 일반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하는 조선의 남성-이 어이한 미개명의 부도덕이냐’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혜석이 1928년경 그린 유화 ‘자화상’. 이구열 소장은 “나혜석 그림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도덕적이고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녔던 사회가 그를 용납 못한 것이죠. 그러나 한 인간의 부족함만으로 그 사람 전부를 평가절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나혜석은 생활고와 사회의 지탄으로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졌습니다. 친오빠에게도 버림받아 갈 곳 없는 행려병자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의 첫 페이지는 74년 처음 공개된 나혜석의 자화상이 실렸다. 왠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그녀의 눈은 정면을 바라보지 못한 채 허공을 응시한다.

“1930년 당시 이처럼 창조성이 내포된 자화상은 단 한 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구도, 표현, 색상 모두 놀라울 정도로 뛰어납니다. 천재 화가를 포용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죠.”

이 소장은 14일 나혜석 생가 터가 있는 경기 수원시 행궁동 주민센터에서 나혜석기념사업회가 제정한 ‘나혜석 학술상’의 특별상을 받을 예정이다. 나혜석에 관한 그간의 연구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김진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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