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자치정부 명예선언 “명예살인 인정 않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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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에 코와 귀가 잘린 젊은 여성의 얼굴을 찍은 섬뜩한 사진이 실렸다. 사진 속 여성은 아프가니스탄 19세 소녀 비비 아이샤였다. 열두 살에 빚을 갚기 위해 탈레반 반군과 결혼한 그는 남편의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다 붙잡혀 코와 귀가 잘렸다. 그의 잔혹한 남편이 그에게 씌운 멍에는 ‘명예 살인(honor killings)’이었다. 지아비를 버리고 도주한 것은 죽어 마땅한 죄라는 것이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당시 명예살인에 대해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을 죽이는 행위”라고 강력 비난했다. 그러나 명예 살인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이슬람과 힌두교 사회에선 여전히 위세 등등하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지난해 “해마다 약 2만 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는다”고 전했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의 줄기찬 요구에도 가해자 남성은 ‘솜방망이’ 처벌만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스라엘 일간지 하레츠는 12일 “길고긴 악습과의 전쟁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고 보도했다. 법률상 명예살인을 인정하던 팔레스타인에서 개선 의지를 표명한 것.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명예살인 가해자 처벌을 면제하는 법의 적용을 대통령령을 발동해 중단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명예살인은 상당수 아랍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는 여전히 처벌 면제법이 있다. 여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명예살인을 인정한 1960년 요르단 형법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1967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한 뒤 요르단 형법을 폐지하고 자국 법을 적용하려 했으나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강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바람에 명예살인을 인정한 악법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21세 아야 바라디야 씨 살해는 팔레스타인 사회에 큰 경종을 울렸다. 헤르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던 이 여성은 온몸에 멍이 든 채 우물에 버려져 있었다. 미궁에 빠졌던 사건은 경찰과 여성단체의 추적으로 아버지와 오빠가 진범으로 밝혀졌다. 살해 이유는 가족의 의사를 따르지 않고 자유연애를 했다는 것이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도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아바스 수반은 “어떤 살인도 명예로울 수 없다”며 악습을 비난했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인권단체 ‘팔레스타인 여권위원회’는 “적용은 금지됐지만 법은 그대로 남아있다”며 “차기 국회에서 법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논평했다.

법 개정이 모든 걸 해결할 순 없단 주장도 있다. 지난달 인도에서 벌어진 명예살인은 좋은 본보기다. 북부 한 마을에서 힌두교 남성과 연애한 이슬람 소녀를 가족들이 목 졸라 살해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반성은커녕 당당했고,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영웅시했다. 일간지 하레츠는 “명예살인을 스스럼없이 여기는 통념을 바꾸지 않는 한 쉽게 뿌리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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