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1등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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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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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초등학교. 5학년 A 군(11)이 수업이 한창이던 교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상위권 학생인 그는 담임교사 앞에서 보란 듯이 시시덕댔다. 교사가 “자리로 돌아가라”고 주의를 줬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교사가 어쩔 수 없이 학생을 내버려둔 채 수업을 이어가려 하자 A 군은 ‘×××’이라는 쌍욕을 칠판에 적으며 교사를 조롱했다. A 군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배드민턴채를 들고 나와 교사 뒤에서 때리는 시늉을 했다. 교사가 제지하며 A 군의 몸을 잡자 “어? 학교폭력!”이라며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에 신고하는 시늉까지 보였다. 평소에도 A 군은 문제아였다. 교사가 보지 않으면 같은 반 학생들을 꼬집고 때리거나 심지어 단소나 피리 등으로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또 함께 수업을 듣는 청각장애 학생에게는 물건을 집어던지며 “야, 이 찐따자식아”라는 폭언을 일삼았다. 결국 피해 학생 부모의 신고로 학교선도위원회가 열렸지만 A 군의 어머니는 아이의 일탈행동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부 잘하는 아들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 담임교사가 우리 아이를 미워해 편파적으로 대한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요즘 초중학교에서는 일부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벌이는 일탈행동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친구들과 교사를 상대로 버젓이 폭언을 퍼붓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 일탈행동은 주로 공부를 못하거나 이른바 ‘문제아’들이 일으키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최근엔 상위권 학생들의 일탈도 적잖다.

상위권 학생들의 일탈이 더욱 심각한 이유는 이들이 벌이는 지능적이면서도 이중적인 행태 때문이다. 부모 앞에서는 ‘천사’인 척하다가 학교에만 나오면 ‘악마’로 돌변하는 것. 하지만 해당 부모 대부분은 “공부 잘하는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며 자녀를 두둔하고,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성적 최상위권인 서울 강남의 중3 B 군(15)은 학교친구를 괴롭힌 끝에 전치 4주의 상해를 입히고 5일간의 집중상담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상담 기간에 B 군의 아버지는 “학원에 빠질 수 없으니 교육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왕따(집단따돌림)’ 사건을 주도한 학생들은 모두 최상위권으로 그중 한 명은 학급반장이었다.

이들은 같은 반 친구 한 명을 집단적으로 괴롭히다 적발됐다. 피해 학생 자리 주변에 테이프를 붙여 경계선을 표시한 다음 “넘어오면 얻어맞는다. 죽여버리겠다”고 윽박지르며 화장실도 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동할 때는 이들이 교과서와 문제집 등을 쌓아서 정해준 길로만 다니게 했다. 이들은 “부모님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공부하는 기계가 돼라’고 했다. 재수가 없어 걸렸다. 혼나서 억울하다”고 말해 상담전문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일부 상위권 학생의 일탈, 왜 일어날까? 상위권은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강하다. 조금만 성적이 떨어져도 부모에게 꾸중을 듣거나 특목중·고에 진학하기 위해 내신 등수에 극히 민감해하는 등 극도의 경쟁 상황에 놓인다. 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폭언과 폭행 같은 공격적 행동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일선 교사들은 “성적만 잘 나오면 인성적인 부분은 문제 삼지 않는 일부 부모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고 말한다.

상위권 학생의 일탈행동은 지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 담임교사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는 전교 1등을 다투던 C 군(12)이 자폐증을 가진 친구를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초 C 군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증을 가진 학생이 수업을 듣는 개별학습실의 학습도우미를 자원했던 것. 하지만 그는 요리실습 시간에 교사의 눈을 피해 “멍청한 ××, 넌 이것도 모르냐”면서 장애학생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괴롭히다 적발됐다. 이후로도 C 군은 후배인 4학년들의 돈을 빼앗거나 같은 반 학생을 꼬집고 때리는 문제를 일으켰다. 심지어 2학기 때는 “반장이 안 됐다”면서 아이들을 선동해 2학기에 반장이 된 친구를 따돌리기도 했다.

이 학생의 문제점을 발견한 D 교사는 “이 학생이 자폐친구들을 돕겠다고 지원한 이유도 자신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 학급에서 진행하는 선행상 투표에서 좋은 결과를 받기 위해서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상위권 학생들의 일탈은 온라인상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 5학년 E 양(11)은 반에서 1등을 하며 교내외 글쓰기 대회를 휩쓰는 학생.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발, ×나, ×창’ 같은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일상어처럼 늘어놓는다. E 양은 온라인상에서 한 학생을 희생양 삼아 집단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이른바 ‘사이버 왕따’를 주도하기도 했다.

E 양은 자신의 인터넷 미니홈피에 글을 올려 피해 학생을 지목하며 “미친×, 제대로 밟혀야 정신 차리나? 대가리 쳐버리고 싶어”, “×발 ×창 우릴 우습게 보는 ×. 걔는 눈×이랑 귓구멍도 없나” 같은 욕설을 쏟아냈다.

E 양의 담임 F 교사는 “아이의 일기를 살펴보니 거의 모든 과목에서 100점을 받아도 한 과목만 점수가 떨어지면 부모에게 꾸지람을 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서 “나와 상담할 때는 ‘선배들이 괴롭힌다’면서 울먹이던 아이가 정작 인터넷에는 ‘5학년 후배를 밟아버리겠다’고 글을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일부 교사와 상담사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잘못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일부 학교의 분위기가 문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상위권 학생들의 일탈 행동은 적발된다고 해도 ‘평소 모범적인 학생이니 이번은 넘어가자’며 실수로 넘겨버린다는 것. 경기도의 한 중학교에서 반장을 하며 반 1등을 하는 1학년 G 군(13)이 최근 반 친구에게 폭력을 휘둘렀지만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H 씨는 “상위권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처벌받을 경우 학교 이미지가 나빠질뿐더러 처벌 결과가 학생부에 남으면 해당 학생의 향후 입시와 진로에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 때문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초중생 상위권 학생들의 일탈을 바로잡으려면 부모가 나서야 합니다. C2면에는 상위권 학생의 일탈행위를 바로잡을 3단계 대화법을 소개합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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