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미인 권하는 사회’… 몸에 집착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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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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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만들기이영아 지음 344쪽·1만3900원·푸른역사

《“그녀의 다리는 멋져 다리는 멋져, 10점 만점에 10점.” 2PM의 노래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노래는 연인과 함께 걸으면서도 지나가는 여성들을 훔쳐보며 ‘점수’를 매기는 남성들의 속내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대상화되는 여성들도 이 ‘점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수많은 여성이 오늘도 사과 반쪽으로 점심을 때우며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어느 성형외과가 쌍꺼풀 수술을 잘하더라’ 하는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인다.》

2006년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포스터. ‘한나(김아중)’는 전신 성형을 통해 ‘제니’로 거듭난다. 여성
들의 마음속에는 한나처럼 늘 ‘뚱녀’가 살고 있다. 근대 이후 여성들은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왔다. 동아일보DB
2006년 개봉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포스터. ‘한나(김아중)’는 전신 성형을 통해 ‘제니’로 거듭난다. 여성 들의 마음속에는 한나처럼 늘 ‘뚱녀’가 살고 있다. 근대 이후 여성들은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왔다. 동아일보DB
이 책은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 여성의 숙명이자 굴레가 되어버린 미인강박증의 뿌리를 역사 문화적으로 고찰한다.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의 뿌리는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여성들의 몸 가꾸기 문화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적한다. “왜 우리가 몸에 대해 그렇게 지나치게 집착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러한 앎을 통해 한층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찾아보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부 ‘S라인의 탄생’에서는 ‘예쁜 여자’의 기준이 근대에 들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2부 ‘예쁜 여자 되기’는 예쁜 여자의 기준이 변하면서 그에 맞는 외모를 갖추기 위해 쏟아진 몸 가꾸기 관련 정보와 상품, 의학 기술 등을 담았다. 3부 ‘미녀는 괴로울까’에서는 그렇게 예쁜 여자가 되고 난 뒤의 여성들의 운명을 짚어본다.

20세기 직전까지 한국 여성은 S라인보다는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체형을 아름다운 몸으로 여겼다. 1920년대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치마 길이가 짧아지면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각선미를 따지기 시작했고, 1930년대부터는 가슴 부위의 곡선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14년 ‘매일신보’가 ‘예단일백인’이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기생들의 외모를 소개한 것을 계기로 대중매체들도 유명 인사들의 ‘미인관’을 빈번히 싣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미인의 기준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미와 미인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형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춘원 이광수는 “체격이 팔다리나 몸통이 자로 잰 듯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바로 맞고, 몸 쓰는 것, 걷는 것 등 모든 동작이 날씬하여 남의 눈에 조금도 거슬리게 보이지 않고… 또 취미와 그 정신이 아울러 고상하다면 그야말로 내가 찾는 미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얼굴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윤곽에다가 눈은 어디까지든지 크고 처진 듯하며 코나 귀가 복스럽게 예쁘고 살결이 하얀 분”이어야 한다며 얼굴 생김새에 대한 여러 가지 기준도 빠뜨리지 않았다. 소설가 현진건은 “첫째로 키가 조금 큰 듯하고 목선이 긴 여자가 좋다. 제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기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며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삼천리’ 1935년 10월호엔 요즘 여성잡지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만한 미용체조법이 소개됐다. ‘하나, 가슴을 앞으로 그냥 내밀며, 양손을 위로 쭉 뻗었다가, 손끝이 발가락에 닿을 때, 양손을 아래로 뻗으며, 전신을 굽힌다. 이 운동을 계속하면 가슴의 모양이 곱게 발달되고 미끈한 각선미를 갖게 된다.’

저자는 ‘예쁜 여자 만드는’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당신이 예뻐지고 하는건 당신의 뜻이 아니라 근대, 국가, 자본이라는 ‘권력’의 뜻이다. 그러니 예뻐지려고 해도, 예뻐지려고 하지 않아도 당신이 틀린 것은 아니다”며 위로를 건네고 격려한다. 푸른역사 제공
저자는 ‘예쁜 여자 만드는’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에게 “당신이 예뻐지고 하는건 당신의 뜻이 아니라 근대, 국가, 자본이라는 ‘권력’의 뜻이다. 그러니 예뻐지려고 해도, 예뻐지려고 하지 않아도 당신이 틀린 것은 아니다”며 위로를 건네고 격려한다. 푸른역사 제공
눈, 코, 다리, 가슴 부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성형외과수술 방법이 잡지와 신문 등의 지면에 소개되면서 여성잡지에 실린 성형외과 정보를 보고 자신의 몸을 고치려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쌍꺼풀수술을 한 주인공은 바로 최초의 미용사이기도 했던 오엽주였다. 일본에서도 여배우 몇 명이 겨우 쌍꺼풀수술을 할 정도였던 시절, 오엽주가 도쿄에서 수술을 하고 돌아오자 서울의 공안과 병원은 그를 특별 초빙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뒤 쌍꺼풀수술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인 오엽주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성들은 그만큼 많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욕망 앞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남성 편력’으로 이어졌다. 그런 여성들을 당시 사람들은 ‘팔자 사납다’ ‘문란하다’고 생각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장미란 선수는 그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저자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큰 몸집을 게으름이나 무능력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고착화된 미적 기준들에 종속되지 말고 아름다움의 형태를 좀 더 다원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렇게 ‘n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 절실하다”고 말한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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