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앞둔 ‘BBK 저격수’ 정봉주 前의원 “좋은 일 생겼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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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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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갈거라는 생각에 무척 쫄아 0.5평 쪽방서 적응훈련도 했는데…
담당 대법관 2년여 끌다가 퇴임

정봉주 전 의원
정봉주 전 의원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지난주 예고한 바 있습니다…2011년 2월 현재 만 2년 3개월을 끌었던 BBK 재판은 담당 대법관이 임기를 마치면서 결국은 판결을 하지 않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정봉주 전 통합민주당 국회의원(51)이 지난달 24일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정봉주와 미래권력들(cafe.daum.net/yogicflying)’에 ‘BBK 재판은?’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는 200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BBK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집중 제기해 ‘BBK 저격수’라는 별명을 얻은 바 있다. 당시 그는 한 언론사 기자에게 “김경준 BBK투자자문사 대표(45)의 변호인이 갑자기 사의를 표명한 것은 이명박 후보가 김 씨와 공범으로 처벌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2008년 12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되지 않은 채 2년여간 대법원의 최종 확정판결을 기다려 왔다.

○ “감옥생활 적응 훈련도 했다”

“사실 그동안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고 대범한 척했지만 무척 쫄아(졸아의 구어체) 있었고 무척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감옥 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장 감옥에 끌려가면 잘 적응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0.5평짜리 쪽방에서 1주일간 적응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정봉주의 정치 인생은 반짝 하고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서 한순간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만 그저 대범한 척하고 있었던 겁니다.”

정 씨는 자신의 카페를 방문하는 지지자 및 민주당원들에게 그동안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가졌던 초조함과 불안감을 이렇게 털어놨다. 대법원 상고심에서 실형이 확정되면 그는 감옥에 가야 하는 신세다. 10년 동안 공직선거 출마도 불가능하다.

“지난해 12월이 되면서 담당 대법관이 판결을 안 하고 갈(퇴임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닌가라는 변호사의 말을 듣고는 제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커졌습니다. …올해 1, 2월 들어서는 아예 우체국 직원이 집의 벨을 누를 때마다 덜컹덜컹(울렁울렁의 잘못인 듯)했습니다. 혹시 판결 통보를 갖고 오는 것은 아닌지 했던 것이지요.” 그의 바람대로 주심 대법관인 양승태 전 대법관은 그에 대한 판결을 선고하지 않은 채 지난달 27일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정 전 의원은 글의 말미에 이제 ‘역공’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제 조금 안심을 합니다. 후임이 오셔서 판단을 하겠지만 일단 큰 강물은 건너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젠 제가 역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와 시간은 벌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이 컸던 만큼 제 공격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정치권 눈치 보느라 재판 지연?

정 전 의원이 이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재판을 지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의혹을 제기한 장본인인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가 자신의 주장이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하고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이미 3년 4개월째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상황에서 정치인인 정 전 의원에게만 뚜렷한 이유 없이 특혜를 주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을 양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상훈 대법관에게 넘겼다. 주심이 바뀐 만큼 정 씨의 희망처럼 언제 선고가 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다시 시작된 것. 이미 항소심 선고 형량을 두 번 채우고도 남을 기간을 아무런 속박 없이 지낸 정 전 의원은 앞으로도 당분간 재판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7·28 재·보궐선거에서 동료 정치인들의 지원유세를 다니는 등 그동안 아무런 제약 없이 정치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정 전 의원 측이 사실관계는 물론이고 자신의 행동이 법적으로 허위사실 유포에 해당하는지까지 다투고 있어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의 해명은 통상적인 선거법 위반사건 처리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위반사건은 배당 직후 곧바로 공판기일을 지정해 매주 1회 이상 공판을 여는 등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해 6개월 안에 상고심까지 끝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일선 법원에 지침을 내린 바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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