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태순]지역끼린 다투고, 정부는 손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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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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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남부권 신공항 입지 선정을 두고 가덕도 유치를 주장하는 부산과 경남 밀양을 주장하는 경남 대구 경북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주민 수천 명이 참여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광역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나서서 상대를 몰아세우고 있다. 또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놓고 대전과 광주, 영남권의 경쟁이 치열하다.

남부권 공항 논란 방치해서야

지방자치 시대에 선호시설 유치 경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갈등이 항상 나쁜 것만도 아니다. 경쟁과 갈등을 통해 많은 사람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그러나 현재 지자체 간 갈등은 이런 긍정적인 수준을 넘어선다. 국가 비전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고 공정하게 위치를 선정하기보다는 주민의 원초적 욕구를 이용해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세를 몰아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여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지자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이 앞장서고 있다. 광역 경제권 시대에 상호 보완과 협력의 중요성은 온데간데없고 부산에 유치하면 경남이 손해 보고, 경남에 유치하면 부산이 손해를 본다는 식이다. 모든 문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고 상대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다.

갈등 발생의 1차적 원인자인 국가는 비전과 목적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절차와 과정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역 간 갈등을 이유로 정책적 결단을 유보하면서 지역사회 갈등은 깊어가고 있다. 또 상위기관으로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할 책임은 포기한 채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다.

갈등을 이렇게 방치한다면 국가사업은 표류하여 천문학적인 예산을 낭비하고, 지자체 간 갈등이 누적되면서 상호 불신이 깊어지고 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세계가 광역 경제권을 중심으로 협력하고 융합하는 시대에 이웃 지자체 간 갈등과 불화는 ‘우리 모두의’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가사업을 둘러싼 지자체 간 갈등의 일차적 책임은 국가에 있다. 자신의 지역에 더 좋은 국가시설이 유치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가는 지역 간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국가사업의 비전과 목적을 분명히 하고 위치 선정의 조건, 사실관계 조사 방법, 의사결정 과정과 절차, 국민적 공감대 형성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이런 원칙과 기준이 없거나 모호하다 보니 지역주민의 여론과 정치인의 압력에 흔들리면서 사회적 인정과 합의는 실종되고 국가사업이 욕망의 각축장으로 변하게 되었다.

美-日처럼 전문가-역량 강화를

이와 함께 우리도 미국의 ‘행정분쟁해결법’이나 일본의 ‘재판 외 분쟁해결 절차 이용의 촉진에 관한 법률’같이 국가나 공공기관이 정책이나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사회적 갈등을 예방하고 발생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원칙과 절차, 방법 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또 공무원 및 시민사회의 갈등 해결 역량을 키우는 교육 및 훈련 기회를 확대하고, 갈등을 전문적으로 조정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다.

마지막으로 지자체 간 갈등을 해결하려면 지자체 공무원과 정치인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지자체의 경쟁 대상은 이웃 지자체가 아니다. 세계와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지자체 단독으로 세계와 경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웃 지자체와 역할 분담과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웃 지자체는 경쟁자인 동시에 동반자이다. 지자체장과 지역 국회의원이 미래지향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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