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내신 몰아주기’ 반응… 대학들 “조작 알지만 제재 방법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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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진학 담당자 “상 몰아주기 등 3개 수법 있다”
뿔난 학생-학부모 “극소수 학생들에 들러리 선 꼴”

일부 고교에서 명문대에 합격할 만한 학생을 골라 내신을 몰아주는 ‘내신 조작’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 일부 고교에서는 내신 조작을 부인했으나 다른 고교 교사와 학원가 진학 담당자들은 본보에 “내신을 부풀리는 대표적인 ‘3대 수법’을 털어놓기도 했다.

▶본보 17일자 A1면 참조


○ 투서는 많지만 물증 잡기는 어려워

고려대 서태열 입학처장은 수시전형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한 학생이 보낸 e메일을 받았다.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내신 조작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충남의 한 고교에 다니는 이 학생은 “저희 학교 내신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수 학생에게는 하지 않은 봉사, 캠프 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해주고, 면접 때 구체적인 내용을 물으면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까지 알려줬습니다”라고 밝혔다.

서 처장은 “입시철만 되면 이런 투서가 쏟아지지만 대학 차원에서는 해당 고교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거나 제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알면서도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며 “심증이 있어도 이를 토대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대학들이 내신조작 사례와 문제 학교를 대부분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효과적인 제재 방법을 찾지 못해 미봉책으로만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백순근 입학본부장은 1년에 70여 군데씩 전국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교육 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같은 지역의 특정 학교에서만 내신 만점자가 많이 나오는 경우는 일단 의심 대상. 교사와 학생들을 직접 만나 내신 부풀리기와 같은 편법은 없었는지도 조사하지만 쉽지 않다. 백 본부장은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고교 교육환경 등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거치기 때문에 내신 조작을 받은 학생은 불리한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대학이 고교의 내신 조작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김동노 입학처장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제공하는 ‘스쿨 프로파일링’을 구체화하자”고 제안했다. 비교과 항목 정도만 제공하던 것을 각 고교가 산정하는 내신 등급, 동점자 수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면 내신 조작을 막을 수 있다는 것. 고려대 서태열 입학처장은 “이미 대학에 숫자로 제출된 점수를 가지고 대학이 조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며 “공정한 입시를 위해서는 내신 비중을 줄이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 ‘수행평가 몰아주기’ 등 3대 수법


학원가 진학 담당자들과 교육계 관계자들은 수행평가 몰아주기, 상 몰아주기, 시험문제 어렵게 내기 등을 대표적인 3대 수법으로 꼽았다.

수행평가 몰아주기란 우수 학생들에게 수행평가 점수를 의도적으로 잘 주는 것. 상 몰아주기는 특정 학생들이 ‘교육감상’ 등 외부에서 주는 상을 수시로 받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2006년 고교를 졸업한 장모 씨(25·여)는 “선생님이 동아리방에 갑자기 찾아와 ‘성적이 되는 사람 중에 상장이 필요한 사람은 손을 들라’고 했다”며 “며칠 후에 그 학생들이 상을 실제로 받았다”고 말했다. 시험문제 어렵게 내기란 우수 학생들만 풀 수 있는 문제를 내 원천적으로 우수 학생들의 내신 성적을 좋게 만들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 동점자는 상위 등급으로 모두 포함시키는 동점자 처리 규정을 활용해 1등급을 최대한 많이 주는 방법도 있다.

현직 교사들은 이런 방법이 “일부 지방 사립고에서나 가능하지 공립고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시내 모 고교의 한 교사는 “수도권에서는 학부모가 성적을 감시하고 있어 공립고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17일 노현경 인천시의원에 따르면 인천외고는 지난해 고3 학생들의 생활기록부 중 정성(定性)평가의 미흡한 부분을 수정해 인천지방경찰청이 현재까지 수사를 벌이고 있다.

○ 학생·학부모, “억울하고 분하다”


학생과 학부모,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학생들은 “결국 보통 학생들은 관리를 받는 극소수 학생의 ‘내신 들러리’만 서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학부모들도 문제점을 공감하며 대책을 촉구했다. 올해 고교에 진학하는 딸을 둔 주부 김민경 씨(47·서울 서초구 서초동)는 “가장 정직해야 할 학교가 이런 짓을 해도 되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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