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국]中企울린 키코, 검찰수사로 진실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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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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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키코(KIKO) 관련 민사소송에 관한 1심 판결에서 은행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키코는 2007년 하반기 이후 은행이 우수 중소수출기업에 대량 판매한 금융상품이다. 그 내용은 고도의 전문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매우 복잡한 상품이다.

키코 계약은 ‘제로 코스트 옵션’ 계약의 일종인데, 원화 수요자인 수출기업과 은행 같은 외화 수요자가 등가물인 서로의 옵션을 교환하여 별도의 비용 부담 없이 환위험을 헤지하는 방식의 계약이다. 문제가 된 키코 계약의 내용을 보면 환율 상승 시 기업이 부담하는 위험은 무한대로 커지는 반면에 환율 하락 시 기업이 향유하는 수익은 미미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거칠게 요약하면 가입한 기업은 ‘무한 손실, 유한 수익’이라는 상황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재판부는 사후적 시장 상황의 변화만을 이유로 계약상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보면서 키코 계약에 따른 손실 부담을 모두 중소기업이 지도록 하였다. 이제 은행은 해당 중소기업의 재산에 가압류 등 법적 조치를 취하고, 판결이 확정되면 기업은 중대한 재무적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다. 2008년 전후로 많은 시민이 은행이 권유하는 펀드에 가입했다가 깡통을 찼다면 중소기업은 키코 계약에 서명했다가 파산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은행은 환 헤지 경험이 별로 없는 수출 중소기업에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좋은 상품이라고 선전하며 적극적으로 키코 판촉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이 계약 안에는 기업의 손실을 제한하는 조항이 없었다. 그리고 은행은 기업에 환율이 안정적으로 하락하리라는 전망만 강조하고, 상승할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았다. 후자의 경우 무한대의 손실 가능성이 있음을 알리지 않았다.

은행의 민사적 책임 여부 이전에 이러한 행태는 금융선진화를 외치는 상황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유사한 사례인 ‘뱅커스 트러스트’의 파생상품 판매 사건에서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뱅커스 트러스트에 1000만 달러의 민사벌금과 행정금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 판결에 대한 상급심의 판단이 어떻게 내려질지는 지켜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형법학자인 필자는 은행이 판촉과정에 적극적 또는 소극적 기망을 하여 기업을 착오에 빠뜨리는 사기범죄를 범하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특히 은행이 취득한 콜옵션 프리미엄이 기업이 취득한 풋옵션 프리미엄의 평균 2배 이상, 심한 경우에는 7배까지 많음에도 계약서 프리미엄 계산표에는 양 옵션의 프리미엄이 동일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 이상하다.

2008년 4월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투기세력보다 더 나쁜 세력은 지식을 악용해서 선량한 시장참가자를 오도하고 그걸 통해서 돈을 버는 사기꾼이다”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은행을 “사기세력”이라고 맹비난했다. 필자는 강 전 장관의 경제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이러한 진단에는 공감이 간다.

생각건대 민사 판결의 진행과 별도로 키코 상품 판매는 형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번 판결 과정에서 키코 설계 및 판매, 인센티브 지급 관련 서류, 옵션 프리미엄에 대한 계산 근거와 은행이 주장하는 비용과 수익 산출방법과 금액의 기준에 대한 서류가 공개되지 않았다. 현재 ‘환 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가 은행을 검찰에 고발한 상태로, 검찰은 수사를 진행해 위의 서류를 확보하고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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