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의구현사제단의 ‘추기경 비난’ 막가는 표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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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추기경이 올 3월의 주교회의 성명과 관련해 “4대강 개발을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10일 “주교회의의 결정을 함부로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정 추기경이 “4대강 사업은 과학적 전문적 분야이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른 의견이 있는 만큼 종교계가 판단하는 것은 비합리적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발언에 공감하는 천주교 신도와 일반 국민이 많다. 그럼에도 사제단은 ‘추기경의 궤변’이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정부를 편드시는 혹은 그래야만 하는 남모르는 고충이라도 있는 것인지 여쭙고 싶다”고 비아냥거렸다.

교황→추기경→주교→신부 순으로 위계질서가 분명한 천주교에서 일부 사제들의 비공식적 모임이 한국 천주교를 대표하는 추기경에게 ‘쓴소리’를 하려면 이성적이고 절제된 표현을 써야 옳다. 사제단은 “미움이나 부추기는 골수 반공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하니 교회의 불행”이라고 거칠게 정 추기경을 비난하는가 하면 “당신이 사목적(司牧的) 혜안을 과감하게 포기했거나 아예 갖추지 못했음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선언”이라고 단정했다. 추기경이기를 포기했거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막말이나 다름없어 사제의 언어로 들리지 않을 정도다. 평신도 인터넷저널에 “내 나이 70 평생 천주교회 안에서 장상(長上)께 이렇게 온갖 못된 말을 함부로 써서 대드는 짓을 본 일이 없다”는 글이 올라있다.

편향되고 조악한 운동권 격문 수준의 사제단 성명이 처음은 아니다. 사제단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뒤인 5월 야당 및 좌파단체들과 함께 “명확한 증거의 공개, 국제적 공인이 없는 섣부른 결론은 국민적, 국제적 불신과 질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8년엔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에 앞장서 고(故) 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장이 “진정 삶의 권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북한 인권을 위해 지금껏 촛불을 들지 않았느냐”고 질타한 적도 있다.

사제단은 한국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을 지낸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비롯한 원로사제들이 13일 견해를 밝힐 것이라고 했다. 함 이사장의 성향에 비추어 어떤 의견을 낼 것인지 대충 짐작이 된다. 지금은 유신이나 5공화국 군부 통치 같은 독재치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사제들이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한 정부와 과거의 군사독재정권을 동일시하고, 걸핏하면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은 매우 종교적이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정교분리(政敎分離)의 국가다. 천주교를 아끼는 신자와 국민은 일부 사제들의 편향적인 ‘정의구현’ 활동에 대해 사회 갈등을 키우는 ‘정치구현’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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