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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일과 삶]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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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일과 삶]정재원 정식품 명예회장

동아일보입력 2010-11-13 03:00수정 2010-11-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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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3시간 영어공부… 내 나이? 93세죠
정재원 명예회장은 ‘젊은 시절 열심히 공부하라’는 교훈을 평생 실천하며 살아왔다.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아침 3시간씩 영어를 공부하는 그는 그래서 여전히 청춘이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나무와 꽃이 참 많은 위안을 줍니다. 나이가 들고 집사람도 6년 전 세상을 먼저 떠 외로웠어요. 그런데 이네들 물 주고 정성스럽게 가꾸고 자라나는 것 보면 아이들 키우는 것처럼 보람이 있어요.”

11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정식품 정재원 명예회장(93)의 자택을 찾아가는 길은 험했다. 지도로 보니 큰길에서 별로 멀지 않아 보여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집을 찾는데 좁은 길은 경사가 거의 45도로 가팔랐다. 한참 헉헉대고 올라가 계단을 또 한참 오르니 절벽 같은 언덕 끝자락의 자택을 찾을 수 있었다.

○ 최고령 경영자의 오래된 취미

국내 최초로 두유 ‘베지밀’을 개발했고 정식품을 창립해 베지밀을 보급한 정 회장은 1917년생으로 국내 최장수 경영자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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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랜 취미는 정원 및 온실 가꾸기이다. 이날도 정 회장은 기자와 함께 정원을 돌며 나무 이야기를 들려줬다. “1983년 이 집터를 샀는데 그때는 저 소나무 한 그루와 바윗돌이 전부였어요. 이 앞으로는 개천이 흘렀고요. 여기에 집을 짓고 빈 공간에 나무를 하나둘 가져다 심었지요.”

정원의 끝자락에 서니 북악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긋불긋 단풍과 나무 내음에 취해 고적한 주변을 보니 서울에 이런 공간이 있나 싶다. 27년 전부터 심은 나무들이 이제는 제법 풍성하게 자랐다. 소나무, 감나무, 목련, 단풍, 사철나무, 철쭉, 개나리, 들국화, 해당화…. 마침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왕성할 때는 감 300개가 열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까치밥 하라’며 남겨두고 있다. 정원 반대편에는 비닐하우스 온실도 갖췄다. 상추 열무 시금치 등 채소와 레몬나무 선인장 같은 열대식물도 기른다.

“젊어서는 골프, 테니스도 했지만 이제 운동은 힘들어요. 하지만 정원 가꾸는 건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죠. 또 식물들은 절대 배신하는 법이 없어요. 정성스럽게 돌봐주면 그에 대한 보답을 돌려주죠. 온실서 기르는 채소는 바로 식탁으로 올려 함께 사는 큰딸과 같이 먹습니다.”

○ “공부는 내 삶의 열정의 근원”

정 회장은 요즘도 어김없이 오전 5시면 일어나 8시까지 EBS라디오 영어강좌를 듣는다. 정 회장의 서재에는 라디오와 함께 11월호 김대균 토익, ‘텝스’ 등의 라디오 영어강좌 교재가 놓여 있었다. “공부한다고 해도 나이가 드니까 힘든 게 사실이에요. 들어도 금세 잊어먹고, 그래서 반복해서 듣는데. 듣고만 있으니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쓰고 말하는 훈련도 하려 애써요.”

그는 요즘도 콩과 영양에 관한 최신 영어 논문을 찾아 읽는다. 전자 확대 장비로 논문을 확대해 읽고 인터넷 검색도 한다. 지난달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대두학회’에 직접 참석해 연구 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 연세에 왜 그리 공부를 열심히 하십니까”, 기자의 우문에 그는 “공부는 삶에 열정을 주는 활력소”라며 일제강점기 소학교에서 그는 형님에게 배운 노래를 불러줬다. “소년이로학난성∼ 일촌광음불가경∼.’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순간의 세월도 헛되이 보내지 마라는 주자의 권학문을 노래로 만든 것이다.

그는 이 노래를 평생의 교훈으로 삼고 실천했다.

“황해도 은율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평양관립사범학교 시험을 쳤는데 떨어졌어요. 형편이 어려워 평양의학교에 급사로 취직해서 학생들 강의자료 등사를 해주는 일을 했지요. 강의자료를 한두 장 가져와 틈나면 읽었는데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몰랐지만 계속 읽다보니 하나씩 알게 되고 재밌는 거예요. 그러다 기대도 않고 의사고시를 봤는데 2년 만에 만 19세 최연소로 의사고시에 합격했지요.”

○ 유당불내증 극복 한평생

성모병원 소아과에서 의사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한 아주머니가 갓난아기를 업고 찾아왔다. “딸 다섯을 낳고 겨우 얻은 아들이라며 살려 달라고 간청했어요. 그런데 아기는 뭘 먹이면 설사만 하고 일주일 만에 죽었어요. 큰 충격을 받았어요.”

많은 신생아가 모유와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죽던 때, 그는 병의 원인을 찾으려 20여 년을 매달렸지만 치료 방법은커녕 병명조차 알 수 없었다. 불혹을 넘긴 1960년 6남매와 아내를 남겨놓고 홀로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1964년에야 ‘유당불내증’이란 병을 알게 됐다. 유당분해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된 아이가 모유나 우유를 소화하지 못하고, 이 유당은 대장에서 유독물질을 형성해 난치성 설사가 생기고 죽음까지 이르는 병이었다.

“‘엄마 젖’이 치명적이라니. 유당불내증을 해결할 치료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매달렸어요. 유당이 없는 영양식품을 찾다 보니 콩이 있었어요.” 귀국한 뒤 병원에 동물실험실과 연구실을 차려놓고 콩 연구에 매진했다. 1967년 콩을 맷돌로 갈아 처음 ‘베지밀’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1973년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만들고 ‘정식품’을 설립했다. 베지밀은 현재 하루 250만 병이 생산되며 37년 동안 총 110억 개가 팔렸다.

정 회장은 “유아의 유당불내증은 대부분 해결됐지만 성인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성인은 상당수가 유당불내증인데도 우유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등을 섭취하거든요. 이러면 소화가 안 된 유당에서 악성가스가 나와 쌓이고 암과 같은 성인병에 이를 수 있어요. 유당불내증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다음 국제대두학회는 한국에 유치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다음 학회에서도 정 회장은 유당불내증과 콩에 대해 전하고 싶은 내용이 많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영어 공부와 운동을 멈추지 않는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정재원 명예회장은

―1917년 황해 은율 출생

―1937∼1942년 성모병원 재직

―1960∼1965년 영국 런던대 소아과 대학원 수료

―1965년 정소아과 개원, 두유 연구 본격 시작

―1973년 정식품 설립 대표이사 회장 취임

―1984년 재단법인 혜춘장학회 설립

―1995∼1996년 베지밀 호주, 미국, 한국 발명특허 획득

―1999년 국제대두학술대회 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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