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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집권당 72년만에 최악 패배]가난한 술집 아들 베이너 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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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집권당 72년만에 최악 패배]가난한 술집 아들 베이너 뜨고…

동아일보입력 2010-11-04 03:00수정 2011-03-1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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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기 하원의장 낙점
동아일보 자료 사진
2일 늦은 밤(현지 시간) 워싱턴 시내 한 호텔. 까무잡잡한 피부에 잔뜩 상기된 얼굴의 노신사가 연단에 오른다. 장기간의 선거 레이스로 쌓인 피로 탓인지 움푹 파인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는 듯했다. 잠시 고개를 숙인 뒤 운집한 청중을 응시한 이 사내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하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선언한다”며 “이번 선거 결과는 유권자들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하원에서 대승을 거두고 4년 만에 다수당의 지위를 탈환하면서 차기 하원의장 자리를 예약한 존 베이너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61·사진)는 인생 최고의 밤을 이렇게 만끽했다.

그는 이날, 젊은 시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견뎌냈던 자신의 인생역정이 생각난 듯 2분여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는 장면도 연출했다. 오하이오 주 남쪽 끝자락의 레딩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12남매 중 둘째로 자란 베이너 대표는 “일과 후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마치 보육원에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고 술회했다. 아버지는 삼촌과 함께 동네의 술집을 운영하면서 여기서 나온 수입 가운데 절반을 삼촌과 쪼개 집으로 가져와 12자녀를 키웠다.

신시내티에 있는 제이비어대를 나온 그는 작은 플라스틱제품 판매회사인 뉴사이트세일즈에서 판매사원으로 출발해 승진을 거듭하며 사장자리에까지 올랐다. 기업인으로 입지를 굳힌 뒤 정계에 진출한 베이너 대표는 199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이번 중간선거까지 11차례 재선에 성공했다.

겉으로는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역정에 굴곡도 있었다. 1994년 당시 공화당 출신 하원의장인 뉴트 깅리치 아래에서 급성장해 당내 서열 4순위인 공화당 의원총회의장이 됐지만 1998년 선거에서 민주당에 패배(다수당 지위는 유지)하면서 지도부에서 퇴진하게 된다. 8년 뒤인 2006년, 당시 다수당이던 공화당의 원내대표로 권토중래하지만 몇 달 뒤 중간선거에서 다시 민주당에 대패해 1995년부터 12년간 이어진 공화당 다수당 지위를 내주며 또 한 번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2008년 민주당에 대통령 선거까지 내주자 싸움닭으로 변신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8140억 달러짜리 경기부양책에 대한 승인을 요청하기 위해 의회를 전격 방문했다. 하지만 공화당 원내대표였던 그는 대통령의 면담 요청을 거부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천문학적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반대한다고 공개선언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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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간선거 후 베이너 대표는 “향후 오바마 대통령과 국정운영의 협력자가 되겠다”면서 “소수당이지만 민주당의 자유로운 의회 내 토론을 보장하고 필요한 법안에 대한 제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다. 골프와 파티를 좋아하고 와인을 즐기며 줄담배를 피운다. 1973년 결혼한 아내 데비 여사와의 사이에 두 딸이 있다.
▼ 정치명문가의 딸 펠로시 지고… 하원의장직 낙마 ▼

동아일보 자료 사진
4년 전 미국의 첫 여성 하원의장으로 등극하면서 영향력 있는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불린 낸시 펠로시 의장(70·사진)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내주면서 하원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부친이 볼티모어 시장과 하원의원을 지내는 등 이탈리아계 정치가문 출신인 펠로시 의장은 1987년 5명의 자녀 중 막내가 고교생이던 시절 보궐선거를 통해 하원의원에 오른 이후 내리 12선에 성공했다.

그는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 ‘리버럴의 괴수’라는 말을 들으며 줄기차게 공격을 받았다. 부동산 재벌의 부인으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명품을 선호한다는 점을 빗대 ‘아르마니를 입은 좌파’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진보적인 샌프란시스코를 지역구로 한 펠로시 의장은 낙태를 옹호했고 총기 소유에 반대했으며 제3세계의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높였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에 가장 강력한 반대론자이기도 했다.

펠로시는 4년 전 하원의장 취임선서 때 ‘하원 전체의 의장’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그의 재임기간 하원의 당파성은 심화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해 2월 8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해 6월 기후변화 입법과 건강보험개혁 입법까지 이끌어내면서 지도력을 입증했다.

23년간 지켜오던 하원의원 생활도 기로에 올랐다. 이날 펠로시 의장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낙승을 거뒀지만 하원의장은 자신의 소속 정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으면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관례여서 펠로시 의장의 거취가 주목된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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