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방송/연예 > 대중음악

신승훈 “노래인생 후반여행 떠나려니 긴장돼요”

동아일보

입력 2010-11-02 03:00:00 수정 2010-11-02 11:01:45

데뷔 20돌 기념앨범 내고 해외투어 떠나는 신승훈

데뷔 20주년, 170여 곡 발표, 누적 음반 판매량 약 1700만 장, 단독 콘서트 1700여 회….

가수 신승훈(44)의 기록은 곧 1990년대 이후 한국 가요사의 한 페이지가 되고 있다. 1990년 데뷔하자마자 스타로 떠올라 20년. 발표 곡의 90% 정도는 직접 작사 작곡했다. 기필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얄밉지만 미워할 순 없는 모범생 같다고 할까.

그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1일 베스트 앨범 '신승훈 20th Anniversary'를 발표하고 쇼케이스를 열었다. 사모하던 가수 유재하가 세상을 떠난 11월 1일을 데뷔날짜로 정하고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발표한 지 꼭 20년만이다. 하필 데뷔하던 그날 자신이 마음에 품었던 또 다른 가수 김현식이 눈을 감고 말았으니 이날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12월 23~25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투어를, 내년 상반기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중국, 일본 투어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2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카페에서 신승훈을 만났다. 기자와 초면인데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안하게 수다를 늘어놓는 스타일이었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기분이 어떠세요.

데뷔 20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음악을 ‘애물단지’라고 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애(愛)’가 너무 세졌고 ‘증(憎)’도 너무 세졌다”며 “20년간 음악에 빠져 살다 보니 ‘가수 신승훈’이 아닌 ‘인간 신승훈’에겐 미안하다”고 했다. 사진 제공 도로시컴퍼니
"긴장돼요. 20년 동안 내가 뭘 했는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으로 20년 동안 뭘 할까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인생에서 40~50년은 노래할 것 같은데 딱 중간쯤 왔으니 길 가다가 잠깐 나무 밑에서 쉬고 또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심정이에요. 계속 현재진행형이고 싶은 마음이죠."

-이번 베스트 앨범에서 싸이, 다비치, 슈프림팀 등 후배 가수들이 신승훈 씨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불렀죠. 헌정곡을 받은 소감이 궁금해요.

"저는 남한테 곡을 써준 적이 한번도 없어요. 그런데 여성 듀오 다비치가 부른 '두 번 헤어지는 일', 슈프림팀이 요즘의 사랑관에 맞게 개사해서 랩까지 넣어 부른 '로미오&줄리엣'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내 노래를 딴 사람이 부르면 이렇게 변하는구나!'하고 감탄했죠. 이번 앨범을 계기로 앞으론 곡을 써서 후배들한테 주려고 해요. 프로듀서로서 후배를 키워보려는 계획도 있어요. 단, 기획사 대표로 경영을 할 생각은 없어요."

-정규 10집을 낸지 벌써 4년이 지났어요. 정규 11집은 왜 이리 늦어지나요.

"중간에 미니앨범을 3장 내놓기로 했는데 아직 1장이 안 나왔어요. 정규 11집에서는 앞으로 제가 할 음악을 제시할 거예요. 팬들 사이에서 찬반이 갈릴 가능성이 있어요. 원래의 신승훈으로 돌아오거나 완전히 새로운 음악 스타일로 갈 수도 있거든요. 가장 신승훈다운 발라드를 하면 '안주'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고 '역시 신승훈은 자기 색깔을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도 있겠죠. 제 색깔이 너무 진하다보니 곡에 변화를 줘도 제 목소리로 노래하면 '또 신승훈 스타일이잖아'라고들 생각하더라고요. 20년 된 가수가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할 고민이죠."

-'발라드의 황제'라는 수식어에 가려 '싱어송라이터'라는 점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지요.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더 세서 그래요. 그것 때문에 평가절하 되기도 하고 억울한 면도 있어요. '신승훈의 색깔은 계속 똑같다'고 하니까…. 그럼 내가 썼는데 당연히 내 색깔이지. 작곡가한테 곡을 받아 부르는 가수들과 비교당하면 억울하죠. 고흐나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 누구의 그림인지 아는 것처럼 저만의 음악 스타일로 가고 싶은데 주위에선 자꾸 고흐에 피카소를 섞으라고 하더라고요. 창작의 고통은 똑같은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보는 시각은 다른가 봐요."

-수많은 히트곡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뭔가요.

"'보이지 않는 사랑'이죠. 스물다섯 때 뭘 안다고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이런 가사를 썼을까. 지금의 내가 객관적으로 보기엔 좀 미친 사람 같아요. 글짓기 상 한번 받아본 적 없을 정도로 글재주가 없는데…."

-당시 열렬한 사랑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죠. '보이지 않는 사랑' '그 후로 오랫동안'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모두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의 이별을 바탕으로 쓴 곡이예요. 그 얘긴 요새 안 하려고 해요. 그 친구는 지금 잘 살고 있는데 자꾸 옛날 추억 꺼내는 것 같아서…."

-데뷔 이후 이렇다할 굴곡이나 슬럼프도 없이 꾸준히 가요계의 정상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모범생 기질이 있는 것 같은데….

"맞아요. 어머니 말로는 태어나서 가수 되기 전까지 한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대요. 그런 성격이 안 좋을 때도 있어요. '또라이' 기질이 있어야 대중을 휘어잡잖아요. 국민의 절반 정도가 제 노래를 좋아하게 하려면 뭔가 특출 나야 하는데…. 그래서 고민이 많았어요."

-가수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였나요.

"8집 이후부터 점점 진정성이 떨어지는 가사를 쓰고 있더라고요. '내가 소설을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타이틀곡까지 작사가에게 맡겼죠. 나이 들고 때가 묻어 그런지 내가 쓴 가사가 스스로 너무 유치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초심으로 돌아가 데뷔전에 밑줄 치며 읽었던 김소월 시집을 다시 꺼내보고 있어요."

-20주년도 대단하지만 '조용필 42주년' '패티김 52주년'과 비교하면 아직 긴 음악인생이 남아있는데요.

"전에는 목소리가 나올 때까진 노래하겠다는 각오였는데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신승훈이 옛날엔 목소리 좋았는데 나이 먹더니 바뀌었다'고 하면 어떡해요.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좋아해줄 수 있을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대신 조용필 형님처럼 꾸준히 콘서트 하는 가수가 되고 싶죠."

-단독 콘서트만 1700여 회를 했으니 '달인'이 되셨겠네요.

"끝장 난거지! 이젠 무대에 딱 서면 떨리지도 않죠. 떨면 큰일 나요. 관객 1만 명을 휘어잡아서 쥐었다 놨다, 웃겼다 울렸다 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관객들 기에 눌리면 공연이 안 돼요."

-신승훈에게 '음악'이란 뭔가요.

"음악은 저한테 '애물단지'가 돼버렸어요. 항상 있어야 하고 없으면 채워놔야 하는…. 애증(愛憎)이 너무 세졌어요. '애(愛)'가 너무 세졌고 '증(憎)'도 너무 세졌어…. 20년간 음악에만 심취하다보니까 '가수 신승훈'이 아닌 '인간 신승훈'에겐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요즘 가요계에선 '미소 속에 비친 그대'처럼 시적인 가사를 찾기 어려워졌어요.

"'후크송' 가사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참 민망해요. 그런데 대중음악은 대중의 트렌드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삶이 각박해져서 옛날처럼 가사를 읊으며 감탄할 시간이 없거든요. 제작자들은 비즈니스맨이기 때문에 요즘 트렌드를 정확히 읽고 그대로 만들 수밖에 없고, 작곡가 작사가들도 제작자의 부탁에 맞춰줄 수밖에 없어요. 좋은 음악이 나오려면 제작자 작곡가 작사가가 삼위일체가 돼야 해요. 그런데 요즘 워낙 가요계가 불황이라서 그렇게 강요할 수도 없어요."

-음반시장이 호황일 때 데뷔하셨는데 2000년대 들어와 음반시장이 위축됐어요.

"저는 비관적으로 보지 않아요. 국내 가요계에 다시 상승세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수익적 측면과 상관없이 1, 2년 안에 가요계가 양질의 콘텐츠로 확 바뀔 거예요. 그런 기운을 느껴요. 우리나라 엔터테이너들은 아시아권에서 정말 최고거든요. 지금 가요계를 비판하면 안 됩니다. 음악은 기(氣)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 하는 사람들 기를 꺾으면 안 되죠."

-후배들한테 한 마디 해주세요.

"자기 음악만큼은 자기가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표절로 걸렸다고 해서 '내가 쓴 게 아니라 남이 쓴 곡이다'라고 하면 안 되죠. 곡을 못 쓰면 표절을 가려낼 수 있을 만큼 평소에 음악이라도 많이 듣든지…. 음악에 자기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데 완제품만 받는다고 되는 건 아니죠."

-결혼, 언제 하냐는 질문은 지겹겠지만….

"연애 안 한지 오래됐어요. 그것 때문에 화나 죽겠어 지금…. 옛날엔 방송 대본에 결혼 얘기 있으면 작가들한테 빼달라고 했는데 이젠 짜증도 안 나요. 주위 사람들한테 참한 사람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계몽'하고 있어요."

-공식홈페이지에는 1968년생이라고 나와 있던데 사실은 1966년생이시죠?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몇 살이었는지가 중요해요?(웃음) 20년 전에 기획사에서 그렇게 얘기한 건데…. 1966년생 맞아요. 그런데 기사에는 안 쓸 거죠?"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재테크 정보




많이 본 뉴스

종합

정치

국제

사회

스포츠

연예

댓글이 핫한 뉴스

오늘의 dongA.com

핀터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뉴스 설정


모바일 버전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