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사망]北 바로알기에 미친 영향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南에서 13년 ‘행동하는 망명객’으로… 北 민주화 등불 밝혀

10일 숨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최고위 탈북자로서 남한 내 북한연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가 1997년 탈북하기 전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최고지도층 인사들과 나눈 대화와 개인적인 경험 등은 가장 권위 있는 북한정보로 남한 연구자들의 연구에 활용됐다.

황 전 비서는 북한 체제를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라고 개념화했다. 그는 북한 체제가 “(김일성과 김정일 등) 수령의 개인독재를 절대화한 것으로 스탈린식 계급독재에 봉건 가부장 독재를 결합시킨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가장 반동적이며 반인민적인 독재형태”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일이 확립한 이 체제가 김일성의 스탈린식 독제체제와 세 가지 면에서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1997년 7월 현대중공업 공장 방문 황 전 비서(왼쪽)가 1997년 7월 10일 울산 현대중공업을 방문해 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 대우자동차 고려합섬 유공 LG화학 등도 둘러봤다.
1997년 7월 현대중공업 공장 방문 황 전 비서(왼쪽)가 1997년 7월 10일 울산 현대중공업을 방문해 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 대우자동차 고려합섬 유공 LG화학 등도 둘러봤다.
첫째, 수령의 개인독재를 강화한 나머지 당과 군대, 국가재산을 모두 개인소유로 전환했다. 둘째, 당의 독재 위에 군사독재를 올려놓고 폭력적 탄압을 더욱 강화했다. 셋째, 민족주의 구호를 내걸고 외부세계의 영향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민들에 대한 우매화 정책을 철저히 실시했다. 황 전 비서는 이런 주장을 통해 자신이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 김정일 체제를 강력히 비판했다.

황 전 비서는 북한 독재의 경제적 측면을 ‘수령경제’라는 이름으로 설명했다. 수령경제란 김정일이 북한 내 희소자원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당과 군 권력기관과 엘리트들에게 활용권을 부여함으로써 엘리트들을 관리하고 그들에게서 정치자금을 회수받아 자신의 통치에 활용하는 시스템이다.

1998년 6월 국방부 안보강연 황 전 비서가 1998년 6월 9일 국방부 회의실에서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대북 안보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의 공개활동은 2000년부터 제약받았다.
1998년 6월 국방부 안보강연 황 전 비서가 1998년 6월 9일 국방부 회의실에서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대북 안보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그의 공개활동은 2000년부터 제약받았다.
수령경제 전문가인 정광민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황 전 비서의 증언이 없었다면 북한 수령경제 시스템의 존재와 김정일의 통치자금 운영 방식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며 남한의 북한연구는 아직도 노동신문 등 북한 공식 선전매체에 등장하는 거짓말에 휘둘렸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 전 비서는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독재가 1990년 경제난을 뜻하는 ‘고난의 행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지적하고 아사(餓死)의 참상을 고발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1995년에 당원 5만 명을 포함해 50만 명이 굶어죽었고 1996년 11월 중순까지 또 100만 명이 죽었으며 1997년에도 100만 명이 죽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그가 전한 북한 내부 정보는 남한의 보수진영에게 북한 비판의 강한 증거와 논리를 제공했다. 이후 한국에 온 고위 탈북자들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는 보수진영의 북한연구 프레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에 대해 일부 진보진영 학자는 “황장엽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북한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2009년 8월 동아일보 방문 황 전 비서(왼쪽)가 2009년 8월 19일 동아일보의 인터넷 방송 뉴스프로그램인 ‘동아뉴스스테이션’에 출연해 첫 국내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9년 8월 동아일보 방문 황 전 비서(왼쪽)가 2009년 8월 19일 동아일보의 인터넷 방송 뉴스프로그램인 ‘동아뉴스스테이션’에 출연해 첫 국내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실제로 황 전 비서가 경험한 북한은 그가 북한을 나온 1997년까지, 김정일이 50대로 젊었을 때의 북한이라는 한계가 명백했다.

한편 황 전 비서는 김정일 아닌 새로운 엘리트들이 권력을 잡은 노동당이 중국의 조언과 지원을 받아 스스로 개혁 개방을 해나가는 점진적인 방식을 주장해 북한의 붕괴와 빠른 통일을 원하는 일부 보수진영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