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배틀… 욕어플… ‘욕 문화’에 빠진 10대들

  • Array
  • 입력 2010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온라인에서 ‘욕’채팅-‘욕’애플리케이션 인기몰이
여학생도 거침 없어… “패륜논란 양산 배경” 지적

《지난달 26일 서울 J중학교. 이 학교 3학년 박모 양(16)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자 친구들과 장난을 쳤다. 한 친구가 세게 때리자 박 양은 “×발 ×년아, 너무 세잖아”라며 웃었다. 옆 분단의 친구로부터 “2PM의 재범이가 돌아온대”라는 쪽지가 전달됐다. 박 양은 “관심 없거든”이라며 답쪽지에 가운뎃손가락을 그려 넣었다. 방과 후 단짝 친구 세 명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박 양의 욕은 계속됐다. 친구들을 만나자 박 양은 “학원 간다 해놓고 왜 슈퍼마켓 앞에서 알짱거려. 미친 ××년들”이라고 외쳤다. 건널목 앞에서 50대 남성이 탄 자전거가 자신의 앞을 지나가자 박 양은 “에이 ×발 새끼”라며 비웃었다. 집에 도착한 박 양은 장난을 거는 오빠에게 “뭐야, ×발놈, 꺼져”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꾸짖자 박 양은 “엄마도 욕하잖아”라고 대꾸했다. 박 양은 “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박 양에게는 욕설이 즐거운 놀이였다.》
여성 환경미화원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한 ‘연세대 패륜남’, 어머니뻘 되는 환경미화원에게 심한 욕설을 한 ‘경희대 패륜녀’, 임신부를 폭행한 ‘지하철 발길질녀’ 등 젊은이들의 무례한 언행들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런 비뚤어진 사회 현상은 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아예 ‘즐기는’ 것처럼 행세하는 저급한 청소년문화의 부작용이 자리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불량한 학생들이나 욕을 하는 것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우등생도 거리낌 없이 욕설을 내뱉는다.

○ ‘욕어플’ ‘욕배틀’…욕 즐기는 문화


요즘 유행하는 각종 놀이문화에는 ‘욕설’이 주요 콘텐츠다. 최근 ‘욕’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어플)이 인기다. ‘대신 욕해 드림’이란 애플리케이션을 아이폰에 내려받은 후 화면을 터치하면 ‘염병할’ ‘× 같은 인간’ 등 욕설이 성우 음성으로 마구 쏟아져 나온다. 이용자들은 이를 보고 재미있어 한다. 욕 애플리케이션은 6일 아이튠스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게임하듯 욕을 해대는 욕배틀(Battle)도 청소년 ‘문화’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 게임톡, 네이트 토크온 등에 접속해 보면 ‘욕방’ ‘욕배틀’ ‘한판 뜹시다(주인 방관)’ 등 욕배틀 방이 수십 개씩 개설돼 있다. ‘욕배틀이란 문자채팅, 음성채팅 메신저를 통해 서로에게 욕을 주고받거나 여러 명이서 욕을 쏟아내는 놀이다. 방 주인이 심판에 나서고 방문자들이 “×신아” “×새” 등의 욕설을 주고받는다. 상대 욕에 당황하거나 욕이 끊어지면 게임에서 진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욕을 걸쭉하게 잘 하는 ‘욕’ BJ(Broadcasting Jockey·방송 진행자)가 인기다.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네이트, MSN 메신저 대화명을 욕설을 섞어 만드는 욕 네이밍(naming)도 유행이다.

서울 B고 교사인 신모 씨(28·여)는 최근 화장실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화장실 안에서 밖에 서 있는 제자들의 대화를 들어보니 마치 랩을 하듯 욕설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씨는 “요즘 애들은 10명 중 8명은 항상 욕설을 섞어 사용한다. 이들에게 욕설은 수식어”라고 밝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2009 학생들의 언어습관에 대한 교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교사의 92%가 “과거에 비교해 학생들의 욕설 비속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 “어른들의 공동책임, 적극 나서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청소년의 욕설문화 정착 과정은 초기 유행→급격히 증가→폭발시기→일상화의 단계를 거친다. 2000년 초고속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PC방, 채팅문화, 휴대전화 유행 등으로 비속어 사용이 늘어난 후 2000년대 중반부터 욕설 사용이 크게 증가했다. 일상화 단계가 되면 욕설 사용자는 기존 욕설에 무료함을 느껴 새로운 욕설을 찾는 등 오락화 단계가 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장근영 연구위원은 “성인들에게 욕이 일상화되면 청소년들은 더 센 욕을 찾아내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반적인 욕설 문화가 더 강화된다”며 “이렇게 자란 청소년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른들의 공동책임인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버릇없는 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지금 6학년 교실에서는’의 저자 서래초교 김영화 교사(58)는 “어린 학생이라도 욕을 하면 바로 지적해야 하는데 교실에서는 참고 가자는 분위기”라며 “가정과 학교에서 욕은 잘못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