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사용습관 캐보면 길이 있다” 고객 15명 5개월간 따라다니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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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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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한국형 스마트폰” 옵티머스Q 세상에 내놓기까지


사진 폴더별 관리기능 만들고
메인화면에 ‘네이버 검색창’
‘한국형 기능’들 속속 만들어내

“휴대전화는 통화 잘되고 문자메시지를 잘 주고받을 수 있으면 되는 거야.”

고객이 말했다. 그래서 휴대전화 업체들은 통화 잘되고 문자메시지 입력이 편한 휴대전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이제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 아니라 고객이 상상도 못 했던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이 성공한다. 스마트폰 시장이 딱 그런 시장이었다.

그래서 LG전자는 스마트폰을 내놓기 위해 새로운 제품 기획 방식을 도입했다. 고객의 휴대전화 사용 패턴을 관찰해 고객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욕구를 찾아내는 이른바 ‘생활연구’다. LG전자는 과거에도 얼리어답터 시장을 노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모바일 운영체제(OS)를 사용한 스마트폰을 만든 경험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말 LG텔레콤을 통해 판매를 시작하는 ‘옵티머스Q’는 애플의 ‘아이폰’처럼 국내에서만 수십만 대 이상 스마트폰을 팔겠다는 목표로 만든 제품이다.

○ 생활의 발견


“왜 문자하고 통화밖에 안 할까?” “왜 문자와 통화 이외의 기능들은 거추장스럽다고 여길까?” “왜 카메라 기능은 쓰지 않는 걸까?” “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관리하기 힘든 걸까?” “왜 카메라를 노트처럼 쓸 수 없는 걸까?”

LG전자 상품기획팀 박지희 과장은 “생활연구 과정에서 고객의 행동 하나하나에 ‘왜?’라는 질문을 다섯 번 이상 했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생산라인에서 근로자들이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비결로 내세우는 방법이다.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새로운 해결 과제를 만들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면 자연스레 개선이 이뤄진다.

LG전자는 이런 질문을 찾기 위해 약 1000명의 타깃 고객을 면밀히 조사해 이들의 휴대전화 사용습관을 분석했다. 이 가운데 15명은 핵심 관찰 대상으로 선정해 LG전자 직원들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모든 순간을 비디오로 녹화했다.

그러자 새로운 정보들이 ‘발견’됐다. 한 대학생은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쉴 새 없이 사용했다. 학교 게시판에 취업 정보가 붙어 있으면 옮겨 적는 대신 카메라로 내용을 찍었고, 영어로 된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나중에 찾아보려고 역시 카메라로 촬영했다.

LG전자는 이런 사용습관에 착안해 수없이 많은 사진을 쉽게 분류할 수 있도록 사진을 컴퓨터처럼 폴더별로 관리하게 했다. 또 명함, 벽보, 책의 특정 부분 등 문자를 촬영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도 발견하고 문자인식 기능도 집어넣었다. 명함을 읽어 자동으로 주소록에 추가하거나 책을 읽다 발견한 좋은 구절을 촬영해 글자로 변환한 뒤 e메일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새 스마트폰에서 구글 안드로이드 OS를 쓰면서도 메인화면에 구글 검색창과 함께 NHN의 ‘네이버’ 검색창을 집어넣은 것도 특징이다. 전국 교통정보와 음력 날짜를 자동으로 보여주는 일정관리 프로그램 등 한국 소비자의 필요를 고려한 ‘한국형 기능’이 메인화면에 올라와 있다.

LG전자 마케팅팀 임영화 차장은 “한국 인터넷 사용자의 대부분은 구글 검색이 아닌 한국 포털 사이트의 검색을 사용하고 그 결과에 더 만족한다”며 “미국에서 ‘블랙베리’ 같은 미국형 스마트폰이 인기이듯 LG전자도 ‘한국형 스마트폰’을 만들어보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 LG전자의 역습


LG전자는 옵티머스Q를 시작으로 스마트폰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당장 다음 달에는 SK텔레콤과 KT를 통해 ‘옵티머스Z’라는 키보드가 없는 얇은 디자인의 스마트폰도 내놓는다.

옵티머스Q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5개월이다. 이 회사는 일반적으로 새 휴대전화를 만들 때까지 10개월 정도를 사용하는데 이번엔 5개월이 더 걸린 셈이다. 이 5개월은 생활연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LG전자는 옵티머스Q 외에도 다양한 스마트폰 제품이 팔릴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설명했다. 옵티머스Q는 키보드로 전자사전을 사용하고 e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즐기는 사람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 반면 옵티머스Z는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원하는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란 것이다.

임 차장은 “경쟁사보다 늦었지만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시간이 더 걸렸다”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LG전자 스마트폰이 시장에 나오면 경쟁 구도도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이런 점은 편해요
100여개 ‘앱’ 기본으로 설치
카메라 문자인식 기능 편리
▶▶이런 점은 불편해요
멀티터치 기능 없어 아쉬워

옵티머스Q를 보고 든 첫인상은 ‘두껍다’였다. 슬라이드 방식으로 열리는 쿼티(QWERTY) 키보드 때문이다. 게다가 앞뒷면은 검은색이고 옆면과 슬라이드는 금속 재질의 테두리로 감싸서 남성적이고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디테일은 오히려 여성적이었다. 기능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다듬은 게 느껴졌다. 대표적인 게 사전 기능이다. 키보드에 있는 사전 버튼을 누르면 영한사전과 국어사전은 물론 일한, 중한사전 등 11종류의 사전이 있는 사전 화면으로 넘어갔는데 간격이 넓은 키보드 덕분에 단어를 입력해 찾아보기도 편했다. 심지어 영어책을 읽다 카메라로 단어를 찍기만 해도 어떤 단어인지 단어를 인식해 자동으로 한글 뜻을 보여줬다.

구글의 설정을 그대로 사용해 메인화면에 구글 검색창이 나오는 다른 안드로이드폰과는 달리 메인화면을 일정관리와 미투데이, 트위터처럼 자주 사용하는 응용프로그램들로 채운 것도 작지만 세심한 배려였다.

이 외에도 100여 가지의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용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이 미리 설치돼 있어 사용자는 전원을 켜고 구글 계정만 입력하면 e메일과 웹 서핑은 물론 스마트폰의 주요 기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스마트폰처럼 사고 난 뒤 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하면서 제품을 채워가는 대신 이미 있는 기능 가운데 쓸모없는 걸 버리기 바빴다.

다만 안드로이드 OS 1.6 버전을 사용했기 때문에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멀티터치’ 기능이 없는 건 아쉬웠다. 최신 안드로이드폰은 대부분 2.1 버전의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한다. LG전자는 7월에 옵티머스Q의 OS를 업그레이드해줄 방침이다. 처음부터 2.1 버전을 사용하지 못한 건 옵티머스Q의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드는 미국 퀄컴사가 아직 LG텔레콤의 2세대(2G) 통신방식을 위한 CPU를 만들지 못해서다. 세계 대부분의 통신사가 3세대(3G)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퀄컴도 3G 제품부터 만든 다음에 2G용 제품을 내놓는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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