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폰, 전신마비 장애인에겐 그림의 떡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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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휴대전화는 버튼을 똑딱똑딱 누를 필요 없이 손만 대면 전화가 걸린다. 지갑 속, 주머니 속에 가볍게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얇고 작아졌다.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터치’와 ‘슬림’이 대세다.

그런데 이 편리하고 보기 좋은 정보기술(IT) 기기가 누군가에겐 독(毒)이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가 없는 터치기능으로는 번호를 식별할 수 없다. 기기가 지나치게 슬림해지면 전신 마비 장애인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전달할 범용직렬버스(USB) 포트를 만들기 어렵다. IT 강국 한국이라고는 하지만 ‘장애인을 위한 IT’는 찾아보기 힘들다.

○ 조금만 신경 쓰면 모두가 행복한 IT 강국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캠퍼스에서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는 2006년 7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뒤 재활활동으로 강단 복귀에 성공해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린다. 몸을 움직일 수 없어도 IT 기기의 도움으로 강연을 하고 있기에 장애인을 위한 IT 개발에 누구보다도 더 공을 들이고 있다.

이 교수는 이날 기자와 만나 “요즘 아이폰이니 아이패드니 ‘터치’가 대세인데 나는 손을 못 움직이니 이 모든 게 ‘그림의 떡’”이라고 털어놨다. ‘그림의 떡’인 전자제품 하드웨어를 장애인이 쉽게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가 제안한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는 자신의 입 옆에 닿은 붉은 특수 마우스를 눈으로 가리키며 “이 단순한 마우스 덕분에 전신이 마비된 내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 TV 등 전자 제품에 이 마우스를 연결할 수 있는 USB 포트만 갖춰도 전신마비 장애인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확대로 주목받는 무선통신도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 될 수 있다. 이 교수는 블루투스 기술을 활용해 전화통화를 한다.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둔 채 블루투스용 프로그램을 컴퓨터 모니터에 띄운다. 그 다음 입으로 특수 마우스를 움직여 화면의 숫자를 짚어가며 전화번호를 선택한다.

○ 장애인용 소프트웨어 한글 보기 힘들어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가운데 한글로 된 것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문제다. 이 교수가 보고서를 작성할 때 활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음성-문자 전환 프로그램은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 교수는 “중국어는 간체 버전과 번체 버전 2가지나 지원하는데 왜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는지 억울하고 원통해서 MS 측에 항의했다”며 “알아보니 한국 정부에서 한글 음성 데이터베이스를 외국기업에 못 준다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는 특정 제품이 출시되기 전에 안전성과 함께 ‘접근성(accessibility)’을 고려한다”며 “국내에서는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해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접근성이란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정보통신 기기나 서비스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접근성을 고려한 제품을 만들어야 앞으로 고령화 사회에서도 시장을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휴대전화만 해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한두 개 모델에 문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을 적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노키아 애플 모토로라 등은 아예 홈페이지에 접근성 코너를 두고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이 교수는 또 IT를 장애인이 직접 배워 실제 고용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도 IT를 다룰 수 있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활용해 학생들을 다시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에게 직업을 주는 것입니다. IT를 활용해 일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면 정부는 단순히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할 수 있고 장애인은 자기 존재감을 느낄 수 있으니 모두 행복한 길이죠.”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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