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나라서 주는 나라로]<2부>① 한국정부 초청유학후 경제관료된 자메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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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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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 근면 배운 유학생, 가나 돌아가 ‘생산성 전도사’로

《서아프리카 가나의 앞바다는 15세기 유럽 상인들에게 ‘황금해안’이라고 불리면서 열강들의 각축장이 됐다. 수백 년간 유럽 국가의 지배를 받은 가나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57년, 가나공화국이 출범한 것은 1960년의 일이었다. 독립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나의 경제 상황은 열악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500달러에 불과하고 GDP의 절반 정도는 농업이 차지하고 있다. 지금 황금해안에는 가나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수도 아크라의 해안에 자리 잡은 ‘경영개발생산성연구원(MDPI·Management Development & Productivity Institute)’이 바로 그곳이다. MDPI 원장인 자메 마르틴 야오 씨(63)는 “이곳이 가나 경제 발전을 위한 핵심 기지”라고 말했다.》

리더십-마케팅 등 70개 과정
공무원-대학생들에게 가르쳐
300여개 기업엔 재무상담

서울대서 경영학 석사학위
코리아 경제성장 과정 연구
“한국 가서 더 배우고 싶어”


○ “한국 경제의 성장 비결 알고 싶었다”

“한국말, 옛날, 잊어버렸어요.”

자메 씨는 더듬거리며 한국어로 말했다. 그는 1983년부터 1987년까지 서울대에서 공부해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을 떠난 지 23년, 그가 기억하는 한국말은 많지 않다. 한국에 오기 전 그는 MDPI 직원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생을 뽑는다는 소식이 들렸고 MDPI는 자메 씨를 추천했다. 자메 씨만큼 한국에 가고 싶어 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어디 있는 나라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역사를 좋아해서 일본 지배를 받았던 한국을 알고 있었죠. 가장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나라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자메 씨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보다 한국에 가 보는 것이 MDPI와 가나를 위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한국으로 가서 경제 성장의 비결이 뭔지 배워 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처음 온 한국 땅은 낯설었다. 버스에서 팔이 스치면 뭐가 묻은 것처럼 닦는 사람도 있었다. 자메 씨는 “그때만 해도 한국에 외국인이 많지 않았으니까 어딜 가든 구경거리였다”고 말했다.

“1년 내내 30도 아래로 기온이 내려가지 않는 가나와 달리 한국은 너무 추웠죠. 도서관에서 덜덜 떨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거의 다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공부를 위한 환경이 좋아서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이 교육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주는 장학금 덕분에 돈 걱정 없이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다.

그는 유학하는 동안 한 증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했다. 자메 씨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한 것은 아니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면서 일하는 방식이나 분위기를 배워 보려고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사람들이 늦은 시간까지 일하는 모습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오후에 날씨가 더워지면 하루 일과를 끝내는 가나 사람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일하면서 배운 게 더 많았죠.”

○ “한국에서 경영 마인드 배웠다”

파란색으로 칠한 목제 건물인 MDPI 한쪽에 마련된 사무실이 자메 씨가 매일 오전 8시에 출근하는 곳이다. 사무실 집기라고는 낡은 컴퓨터 한 대, 칠판과 나무탁자, 몇 개는 등받이가 부러진 나무의자 6개가 전부다. 정신없이 서류를 처리하고 회의를 하다 보면 점심을 거르기 일쑤다. 그의 비서는 “가나에서 제일 바쁜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MDPI는 1967년 유엔개발계획(UNDP)과 국제노동기구(ILO)의 공동 프로젝트로 설립됐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을 위한 국제적 지원 계획의 일환이었다. 이후 가나 정부 산하로 이양됐다.

MDPI가 하는 주된 역할은 기업과 개인의 재무상담과 기업이나 학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제공하는 것이다. 5년간의 한국 유학 생활을 마친 뒤 돌아온 자메 씨는 재무상담 분야를 총괄하게 됐다. 그는 가나의 기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한국에 비해 생산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일을 적당히 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였죠.”

그는 한국 경험을 토대로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는 교육 프로그램부터 개발했다. 직접 강사로 나서기도 했다. 그의 집무실 칠판에는 지금까지도 가장 기본적인 질문 6가지가 적혀 있다. ‘△왜 일을 하는가 △고객이란 무엇인가 △고객은 왜 중요한가 △고객관리란 무엇인가 △어떻게 고객을 돌아오게 할 것인가 △어떻게 단골을 확보할 것인가.’ 자메 씨는 “가장 기본적이지만 늘 생각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에 칠판에 적어뒀다”고 말했다.

최근 MDPI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리더십 강좌, 인적자원 활용법, 마케팅 전략 등 70여 개 교육 프로그램에 매년 1000여 명이 참여한다. 교육을 받는 대상은 공무원, 기업체 임직원, 대학생 등 다양하다. 기업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한 재무상담도 활발해 가나의 주요 300여 개 기업은 모두 MDPI 재무상담을 거쳤다.

○ “아직도 한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

자메 씨는 2008년 MDPI에서 부원장으로 은퇴했지만 정부 요청으로 재계약했다. 올해 1월에는 원장으로 승진했다. MDPI 관계자는 “자메 씨가 가진 노하우를 정부도 놓치기 아까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메 씨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아직 충분히 건강하다”며 “열심히 일하는 자세는 한국에서 배워 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크라에서 자동차로 30여 분 떨어진 그의 집은 여느 가나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저녁 이후에는 거의 불을 밝히지 않는다. 자그마한 TV가 거실에 놓인 유일한 가전제품이다. 부인 로지나 씨(57)는 “남편이 항상 바쁘지만 국가를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랑스럽다”며 “지혜롭고 따뜻한 아버지”라고 말했다.

자메 씨는 “한국에는 산이 많아서 등산을 즐겼다”며 설악산, 지리산, 북한산의 이름을 댔다. 그는 “다시 한국에 간다면 꼭 등산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을 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칠 때마다 “내가 가진 전문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다. 자메 씨는 “한국이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국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공부를 하고 돌아오고 싶다. 가나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나의 사명이다”라고 말했다.

아크라=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정부 초청 장학생 재초청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말 한국을 다시 찾은 외국인 장학생들이 경북 경주시의 불국사를 방문해 한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제공 국립국제교육원
‘정부 초청 장학생 재초청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말 한국을 다시 찾은 외국인 장학생들이 경북 경주시의 불국사를 방문해 한국 유학 시절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제공 국립국제교육원
■ ‘지식 원조국’ 대한민국
한국정부 장학금 받은 외국인 석·박사 1029명


한국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국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외국인 수가 1000명을 돌파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국제교류협회는 26일 ‘한국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36명의 외국인 장학생이 지난달 국내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해 이 프로그램을 통한 석·박사 학위 취득 외국인이 1029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정부 초청 외국인 장학생 프로그램은 지한(知韓) 및 친한(親韓)파 외국인을 늘리고, 신흥개발 국가에 대한 공적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1967년 시작됐다. 해외에 친미(親美) 인사를 늘리기 위해 미국 국무부가 194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이 모델이 됐다.

그런 만큼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경제발전 과정에 따라 수혜 대상 국가와 장학생 수가 변화했다. 첫해 일본 태국 대만에서 2명씩을 초청해 출범한 이 프로그램의 대상 국가는 경제 성장기인 1980년대까지 동남아국가에 머물렀다.

장학생 선발 국가에 첫 번째 변화가 생긴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였다. 1990년 수교한 옛 소련에서 그해 처음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를 선발했다. 1992년 수교한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1993년과 1994년 첫 장학생을 선발했다. 이후 이들 국가의 장학생 수는 급증해 지난해까지 중국은 200명, 러시아는 131명, 베트남은 120명이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두 번째 변화는 2006년으로, 초청 대상 국가를 50개국 이상으로 확대하고 장학생 수도 100명 이상으로 늘렸다. 지난해에는 역대 가장 많은 97개국에서 504명의 장학생이 초청됐다. 지난해까지 이 프로그램에 선발돼 국내 대학에서 공부한 학생은 123개국 2486명이다.

한편 43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국가는 89개국이다. 가장 많이 학위를 취득한 국가는 일본으로 170명의 국내 대학 출신 석·박사를 배출했다. 중국(118명) 러시아(56명) 베트남(51명)도 이 프로그램의 수혜를 많이 본 국가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한 석·박사 학위 취득자는 몇 년 안에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프로그램으로 국내 50여 개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밟고 있는 외국인 장학생은 석사과정 275명, 박사과정 679명 등 모두 954명이나 된다. 지난해까지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장학생 993명의 자국(自國) 귀국 후 직업은 교사, 강사, 교수 등의 교육직이 270명으로 가장 많으며 공무원도 76명이나 된다.

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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