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창원]인식차 클수록 필요성 커지는 韓日역사 공동연구

  • Array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본인 친구들을 만나면 아주 드물게 한일 과거사 문제가 화제가 될 때가 있다. 거북한 이야기다 보니 좀처럼 말을 삼가지만 일단 말이 나오면 기자는 일제의 횡포와 탄압에 흥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바탕 설전을 기대하지만 대개 그들은 듣기만 할 뿐 입을 다문다.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모습에 얄미운 생각까지 든다.

그들의 함구에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은 교과서에서 일제 군국주의 시대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서는 한 단원이나 차지하고 있는 분량이 두서너 쪽에 지나지 않는다. 고입이나 대입 시험에도 출제되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냥 건너뛰는 게 예사다. 일본인들에게는 1904년 러일전쟁 직후에서 1945년 패전까지의 반세기 역사가 붕 떠있는 셈이다.

23일 발표된 제2기 한일 역사공동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우리 측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과거사 교육이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본 학자들은 “그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자랑스럽지 않은 어두운 과거를 들춰내고 싶지 않은 의도적인 ‘집단 망각’처럼 들렸다.

오히려 일본 측은 한국의 역사교육이 지나치게 반일교육으로 일관하고 있고 전후 평화헌법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데 대해 섭섭함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불행한 과거에 대한 유감”을 표명한 일왕의 발언이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담은 무라야마 담화를 한국 교과서가 기술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학자는 조직적인 조선인 강제징용 등 명백한 사실조차도 사실이 아니라고 발뺌했다.

이번 공동연구 결과는 2007년 6월부터 30개월 동안 34명의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67번의 회의를 거친 결과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역사적 사실에 엄중해야 할 역사학자끼리도 이처럼 동일한 사건을 해석하는 시각이 판이한데 하물며 일반 국민의 인식 격차가 어떨지를 생각하면 허탈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연구가 비록 양에 차지는 않아도 소기의 성과를 거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은 고대에 한반도 일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공식 폐기하는 등 1차 공동연구 때보다 접점이 넓어진 대목도 있다. 양국 간에 주기적으로 외교적 갈등이 되고 있는 교과서 문제에 대해 각자의 입장을 정리한 것도 지금까지 없었던 첫 시도였다. 이번 공동 연구는 비록 아쉬움은 많았지만 어떻든 서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역사 문제를 파고들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게 했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