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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22>‘무적 핑크’ 변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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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22>‘무적 핑크’ 변지민

동아일보입력 2010-03-22 15:11수정 2010-04-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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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변지민 씨(21)는 서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부생이다.

'무적핑크'라는 드라마틱한 필명을 쓰는 웹툰 작가 변지민 씨(21)는 서울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하는 여대생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블로그 활동으로 서울대 특기자 전형에 합격한 것으로 유명한 '파워 블로거'. 그뒤 '콘텐츠를 만들어 보겠다'며 웹툰 계에 도전, 현재는 네이버 인기 웹툰 '실질객관동화'(이하 실객동)의 작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지난해 개설된 팬클럽(http://cafe.naver.com/pinkvajim)에는 3월 현재 1만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변 작가의 웹툰 실질객관동화는 '99%의 허구에 1% 사실을 보태는 순간 동심의 세계는 발작을 일으킨다'는 주제 하에 전래동화와 만화, 소설 등을 독특한 방식으로 패러디해 재해석한 작품이다. 초등학교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민을 깊이있게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빵빵' 터지는 개그와 시니컬함 때문에 변 씨의 정체(?)가 탄로 나기 전까지는 독자들 사이에 "작가가 30대 남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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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직접 만나본 '무적핑크' 변지민 씨는 핑크색 입술에 큰 눈, 살짝 세팅한 긴 생머리에 반짝거리는 실크 스카프를 두른, 발랄한 스물한 살 여대생 그 자체였다.
‘무적핑크’ 변지민 작가가 그린 '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 후기 만화'


▶ 하루아침에 왕비로 신분 급상승한 '심청', 컴퓨터를 켜보니…


"동화 패러디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어요. 다만, '내 식으로 패러디를 해볼까' 한 거죠. 처음부터 패러디 희화 풍자를 하려던 것은 아니고 떠오르는 대로 하다 보니…."

가령 그녀의 손을 거치면 전래동화 심청전은 이렇게 각색된다.

공양미 300석에 몸을 팔아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은 용왕의 도움으로 왕비가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컴퓨터를 켠 심청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급상승 검색어 '삼백녀'!

포털 사이트 내이보(來異報, 네이버), 사의월도(私意越都, 싸이월드)에는 '비단 옷에 인륜도 버렸다. 봉사 아버지 남기고 재벌가로 떠난 S모양', '성균관 이하도 남자인가요? 삼백녀 발언 물의' '미팅 상대는 최저 진사 이상, 삼백녀의 지인이 폭로' 등의 기사가 주르르 뜬다.

기사를 클릭하면 심청의 대학동기를 자처하는 누리꾼이 "삼백녀는 사실 주막 죽순이에요. 탁주만 보면 환장함. 동이 째로 들이켜서 별명이 '조선의 장비'였다"는 댓글을 다는가 하면, 성형 의혹을 제기하는 누리꾼도 있다. 영화 '300', '백제 의자왕과 삼천궁녀'을 패러디한 '삼백녀 시리즈'가 사진 합성 갤러리를 달군다.

인터넷 마녀사냥을 풍자한 셈이다. 실객동의 매력은 이처럼 현실을 비트는 데 있다.

"제목은 객관 실질동화지만, 굳이 동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건 게임, 만화 소설이래도 어떤 클리셰(낡은 표현)를 가지고 있다면 동화라고 볼 수 있다고 보고 소재로 삼았습니다. 찝찝한 뒤끝 없이 깔끔하게 만화가 마무리되는 걸 좋아합니다."
변지민 작가의 웹툰 '실질 객관동화' 한 장면.


▶ 수능 시험 밀려 쓰고 '망했다'

남보다 일찍 철이 든 초등학생 시절, 집안 사정으로 '현실타협'이란 것을 경험하고 좋아하는 미술대신 일반계로 진로를 택하기로 했다. 다행히 공부에도 소질이 있어 중학교 때 전교에서 2~5등, 반에서는 1등을 했다. 숙명여고 1학년 초까지만 해도 변호사나 외교관 같은 전문직종을 선망했다.

그러나 고1 말, 그녀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시 미술 영재학급 시험을 치르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에 맛 들렸다. 그녀는 '예술고교에 들어갈 걸. 왜 난 똥고집을 부렸을까'라고 후회하면서, 인문계에서 할 수 있는 미술 활동을 '게걸스럽게' 찾아다녔다. 아까운 장롱에 페인트칠을 해서 그림을 그리고 그걸 블로그에 올렸다. UCC 만든답시고 파워포인트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그는 UCC 공모전에서 40여 개의 상을 받고 블로그에 쓴 내용을 기반으로 2010년 2월 책 '고 3생존비기'를 펴내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09학번이지만, 처음 치른 2008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은 '망쳤다'. 사회탐구를 보는데 주르르 밀려 썼다.

변 작가는 "여우에게 홀렸다"고 말했다. 성적표를 받아든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많은 것을 깨달았다. '인생 한 방이구나. 한 방에 훅 가는구나.'

하지만 '엄친딸' 변 작가의 인생은 그녀의 표현처럼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원하던 서울대 대신 1지망을 고려대로 바꾸었을 뿐이다. 고려대학교 미술대는 사회탐구 점수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

대학생이 돼 사발식도 하고 엠티도 가보면서 대학생활을 만끽했다. 그러다 갑자기 권태를 느꼈다. 5월 즈음 의뢰가 왔던 '고3 생존비기'도 내팽개치고 '20살의 우울'에 빠져 있었다. 여름방학도 다 지나 개강이 다가올 즈음 출판사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너 이게 과제인 줄 아니? 사회활동을 뭘로 보는 거야!" 그 길로 책에 전념하기 위해 휴학계를 냈다.

가을 날씨는 좋고 책은 안 써지고…. 탱자탱자 놀다 방황하다 하던 그녀는 고등학교 은사를 찾아갔다. 마침 교무실 문에 '수능 접수는 가사실에서'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 하고 가사실에 가서 수능 접수를 했다. 그렇게 2009학년도 입시생이 됐다.

휴학을 했으니 독기가 필요했다고 판단했다. 시험을 한 번 더 떨어지면 제대로 살 것 같았다. 실수로 받은 사회탐구 점수 탓에 다시 한번 시험을 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아무 준비 없이 수능을 봤지만 괜찮은 점수가 나왔어요. 서울대 특기자 전형도 덜컥 합격했구요. 특기자 전형이라는 게 면접을 잘 보면 붙는 시험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면접 당시 '마흔 살의 나는 뭘 하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열심히 일만 하며 살다가 마흔 살이 될 즈음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싼 나라에 가서 1년간 살다가 돌아와 그 경험담을 책으로 쓰겠다고 대답했죠."
소설 '어린왕자' 를 패러디한 변 작가의 웹툰 '실질 객관동화'의 한 장면.


▶ "그랬다고 합니다"…일본 개그 콤비 라멘즈 오마주

웹툰은 어쩌다 그리게 됐을까. 2008년 12월 10일, 서울대 수시 발표 3일 전 그녀의 머릿속에서 뭔가 '팍' 터졌다. 중학교 때부터 '난 콘텐츠 공부를 할 거야'라고 다짐했지만, 제대로 콘텐츠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게 웹툰이었다.

"예전부터 만화에 관심은 많았으나 만화계가 어렵다고 해서 일부러 피해 다녔어요. 하지만 웹툰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거였어요. 일단 시작하기로 하고 네이버 도전 만화가에 올렸어요. 4개월이 지나자 연재 의뢰가 왔습니다."

아이디어는 학교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하고 그림은 집에 진득하니 12~13시간씩 앉아서 그린다. 연재가 계속되면서 점점 팬이라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슬슬 자기 얘기가 하고 싶었던 변 작가는 웹툰 번외편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때 '응? 여자?' '응? 여자?' '응? 여자?'하는 놀라워하는 댓글이 쫙 달렸다.

실객동의 마지막은 항상 네모난 박스에 앉은 두 남자가 자뭇 진지한 투로 "~그랬다고 합니다"라며 끝을 맺는다. 마치 동화책을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듯한 컨셉트다. 어투가 재밌어선지,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유행어가 됐다.

"일종의 오마주인데, 일본에 '라멘즈'라는 개그 콤비가 있어요. '웃음만이 재미가 아니다'라는 구호 하에 공포나 긴장 등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큰 재미입니다. 무대도 무채색 배경에 박스를 몇 개 갖다 놓은 게 전부일 정도로. 그대로 빌려왔지요."
고전 심청전을 패러디한 '실질 객관동화'


▶ '실객동' 단행본 작업, 모바일 게임 창작, 프로듀서까지…꿈 많은 스물한 살

현재 그녀의 근미래 계획은 실객동의 단행본 작업. 웹툰을 그냥 종이에 인쇄하는 게 아니라 '실질객관동화 책'이라는 제목으로 글과 그림이 끈덕지게 연결된 서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게임 동아리 친구들과 스마트폰 용 모바일 게임을 만들어 배포하는 작업도 시작했다. 이야기 연출에도 관심이 많아 PD나 영화감독 일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일 얘기를 할 때는 '애늙은이' 같은 변 작가지만,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를 할 때는 또래 여대생다웠다. 그녀는 연예인들이 우르르 참석한 영화 제작발표회에 다녀온 기자를 몹시도 부러워했다.

끝으로 변 작가에게 인터뷰 후기를 담은 만화 한 컷을 부탁했다. 만화와 함께 날라온 그녀의 이메일.


'안녕하세요, 어이쿠~! 폭설에 봄비까지 다사다난한 한 주였습니다. 저는 학교 가기 싫어서 몸살이 났습니다. 더불어 인터뷰 참으로 즐거웠사옵니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대미를 김남길로 장식해주시는 배려에 감사합니다. 두 근 반 세 근 반 흥겨웠습니다. 그럼 춘삼월이지만 감기조심하시고 즐거운 한 주 되길 빌겠습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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