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60년 노하우로 빚은 문경한지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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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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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복원용 한지 제조하는 김삼식 명장

‘문경 전통한지’를 만드는 김삼식 명장(왼쪽)과 아들 춘호 씨가 대나무발에 종이를 뜨면서 잡티를 없애고 있다. 이권효 기자
‘문경 전통한지’를 만드는 김삼식 명장(왼쪽)과 아들 춘호 씨가 대나무발에 종이를 뜨면서 잡티를 없애고 있다. 이권효 기자
“제대로 만드는 한지(韓紙)가 세계 유산이라고 생각하지요. ‘조선왕조실록’을 복원하는 데 이 종이가 쓰이니까 더 정성껏 만들어야 하고요.” 경북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에서 ‘문경 전통한지’를 만드는 김삼식 명장(68·경북도무형문화재)은 능숙한 솜씨로 한지를 뜨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명장이 조선왕조실록을 복원하는 한지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근 기자가 방문한 한지공장은 평범한 농가에 딸린 30m²가량의 아담한 공간이었다. 여기서 그는 하루 10시간가량 전통 방식대로 최고급 한지를 만들고 있었다. 열 살 무렵부터 종이 만드는 일을 했으니 올해로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가 가로 세로 2m 정도의 통에 있는 닥섬유(솜처럼 풀어진 닥나무)를 대나무발로 떠서 한지를 만들 때는 말을 붙이기가 어렵다. 일정한 온도(10도가량)에 맞춰져 있는 재료가 굳기 전에 작업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손님이 찾아와도 차 한잔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대나무발을 통에 담가 종이를 뜨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초. 이 짧은 시간에 발을 전후좌우로 흔들어 닥섬유가 일정한 양으로 골고루 펼쳐지도록 하는 게 기술이다. 한지에 관한 한 최고 베테랑인 김 명장도 조선왕조실록 복원용 한지 제작에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로 60cm, 세로 85cm 크기의 종이를 두 겹으로 붙여 한 장을 만든다. 두 겹으로 붙이는 이유는 ‘음양’의 조화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만든 한지는 잡티가 없어야 하는 데다 무게도 30g을 기준으로 1g가량의 오차만 허용된다. 모든 과정을 기계의 도움 없이 손으로 하는데도 매우 정밀한 작업이다.

문화재청과 서울대 규장각은 현재 조선왕조실록(국보 151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중 밀랍본(벌집에서 추출한 밀랍용액에 담근 종이를 말려 만든 책) 부분이 훼손돼 그에게 한지 제조를 요청했다. 그는 3년째 밀랍본을 대체할 전통 한지를 만들고 있는데, 지금까지 1000여 장을 만들었다. 그가 만든 한지에 코를 대면 집 근처에서 직접 키워 채취한 닥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온다.

그는 ‘돈벌이’와는 거리가 먼 전통 한지를 평생 만들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이 곁에 있어 든든하다. 전수자인 아들 춘호 씨(36)는 10여 년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한지를 만들고 있다. 올해 2월 충북대 목재종이학과를 졸업한 그의 꿈은 전통 한지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도록 하는 것이다. 춘호 씨는 “전통 한지의 품질은 모두 인정하지만 수출 기반은 거의 없다”며 “전통 한지를 단순히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종이’를 글로벌 상품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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