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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21세기 경쟁력… 90년간 문화주의 제창한 東亞정신 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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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21세기 경쟁력… 90년간 문화주의 제창한 東亞정신 이어야”

동아일보입력 2010-03-13 03:00수정 2010-03-13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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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치학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동아일보가 후원한 ‘국권상실 100년 특별학술회의: 21세기 대한민국, 문화대국에의 비전과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올해 창간 9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의 문화적 의의를 평가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왼쪽부터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김대영 동북아역사재단 교류홍보실장,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 유용식 우송대 교수. 김재명 기자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은 경제대국이나 군사강국이 아닌 문화대국이다. 문화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한국정치학회(회장 정윤재) 주최로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국권상실 100년 특별학술회의: 21세기 대한민국, 문화대국에의 비전과 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정치학회가 정치 사회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시각에서 대형 세미나를 개최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올해 창간 9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의 문화적 의미도 살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학자들은 “20세기가 정치와 경제의 시대였다면 앞으로는 문화가 그 나라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세계 각국은 ‘문화의 세기’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류가 세계적 트렌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글로벌 문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우리 역사를 문화주의적 시각에서 들여다보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1,2회의 조선왕조∼근현대 지도자들의 문화적 이념
공론정치 - 국가경영이 조선 500년 역사의 원동력
세종, 소통의 왕도정치 실현
후대 왕들이 본받아 제도화


제1회의와 제2회의에서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근현대로 이어지는 한국 역사에서 지도자들이 기울였던 ‘소통’의 노력에 초점을 맞췄다. 발표자들은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의 뜻을 알기 위해 공론(公論)을 활성화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의 차원이 아니라 지도자의 문화적 이념과 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 리더는 문화적 리더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은 조선왕조가 500여 년간 장기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공론정치’와 ‘국가경영’을 들었다. 조선에서는 고위 관료와 하위 관료 사이에 제도적 견제장치가 마련돼 있어서 관료들이 끊임없이 토론과 논박에 참여해야만 했다. 삼정승과 육조판서는 관직 임명 등 중대사를 논의할 때 자신보다 낮은 하위관료인 이조(吏曹)의 의견을 구하도록 했다. 큰 벼슬과 작은 벼슬이 서로 얽히고 상하 관료가 서로 견제하도록 한 것이다. 박 연구원은 “왕을 포함해 조선의 관료들은 공론에 참여해야만 하는 제도적 견제장치 때문에 권력의 집중이 차단되고 부패가 방지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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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연구원은 또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한 세종대왕이 있었기에 조선시대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세종대왕은 정치를 국가경영 차원으로 올려놓은 최고의 리더다. 그는 “후대 왕과 관료들은 ‘세종치세’를 본받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힘썼다”며 “세종이 만들어놓은 정치시스템과 운영방식의 힘이 조선의 장기 지속을 가능하게 했으며 오늘날 정치가들에게도 세종의 리더십은 가장 본받아야 할 표본”이라고 말했다.

세종 리더십은 크게 소통, 창조, 실용, 민본 등 4대 사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박 연구원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소통 부재’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세종은 즉위 초기에 ‘의논하자’는 말로 어전회의를 시작했을 정도로 수평적 의사소통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강상규 방송통신대 교수는 구한말 고종의 대외관과 자주의식의 변화를 시기별로 살펴보며 국권상실의 역사를 분석했다. 고종은 동아시아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거대한 변화의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강 교수에 따르면 집권 초기 고종은 중국 중심의 유교사상에 기초해 국민을 대화와 소통의 대상이 아니라 ‘돌봐야 할’ 대상으로 봤다. 또 그에게 서양인은 문명국가가 견지해야 할 윤리적 가치를 갖추지 못한 ‘야만’의 표상이었다. 고종의 전통적인 대외관념이 동요하게 된 것은 개화사상가 박규수를 만나면서부터다. 고종은 서양의 자유주의적 사상을 접하면서 국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또 중국이 중요하고 세계정세에 적극 활용해야 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중심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 됐다. 강 교수는 “갑신정변의 실패로 급진개화파 세력이 퇴장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려는 고종의 이 같은 노력은 사실상 와해됐고 결국 국권 상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사회에서 망명정부 승인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였던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체로 국내 정치외교사 학계는 임정의 승인외교 정책을 실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임정이 대한제국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설정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김 교수는 “임정은 대한제국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며 “임정은 정당성의 원천을 3·1운동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대한제국의 잔존세력이 왕정복고를 추진하는 것을 경계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제3회의 근현대사 동아일보의 문화주의적 역할
브나로드… 신춘문예… 東亞는 문화운동 핵심기관
조선인에 민족의식 고취
4·19 원동력으로 이어져

제3회의에서 유용식 우송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는 문화운동의 핵심 기관이었다”고 말했다. 1924년 이광수가 동아일보에 5회에 걸쳐 발표한 ‘민족적 경륜(經綸)’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에 새로운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정치적, 산업적, 교육적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교육, 정치, 산업 운동이 연합해서 일어나야 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교육 운동이라고 봤다.

유 교수는 “동아일보는 교육 운동에 초점을 맞췄다”고 강조했다. 신교육보급론, 구교육개혁론, 실생활중심론, 과학기술교육론, 농민교육론, 여성교육론, 아동교육론 등 일곱 가지 논조를 유지하며 근대화의 필수요소로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유 교수는 농민교육을 위해 동아일보가 벌인 ‘브나로드 운동’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브나로드 운동은 1920년대 도시 청년지식인들이 귀농해서 벌인 농촌계몽운동으로 당시 동아일보는 한글 보급, 문맹 퇴치, 미신 타파, 농업생산 기술, 풍속 개량에 관한 기사를 집중 게재했다.

홍찬식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광복 후 동아일보는 정부 차원의 문화정책이 거의 없던 시기에 신춘문예, 학술강연회, 예술공연 사업을 펼치며 국내 문화활동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1946년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10주년을 맞아 ‘마라톤 제패가’를 공모하는 사업을 벌였다. 같은 해 한글 반포 500주년을 기념해 세종대왕이 묻힌 경기 여주군 영릉에 기념비를 세우기로 하고 마라톤 주자들이 기념비에 새길 글을 들고 서울에서부터 이어달리기를 하는 행사도 개최했다. 1947년에는 순수 문화행사로 정청자 독창회를 주최했고, 학생 야구대회인 제1차 전국지구대표중학야구쟁패전 등 체육행사도 열었다.

홍 위원은 “6·25전쟁의 피해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동아일보의 문화사업이 더욱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영국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로열발레단, 미국의 신시내티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 명성을 지닌 단체의 내한공연을 주최했다. 1961년에는 동아음악콩쿠르가 연례사업으로 출범했고 1963년 동아사진콘테스트, 1964년 동아무용콩쿠르와 동아연극상을 제정했다. 197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정명훈의 금의환향 독주회를 여는 등 해외 유학을 다녀온 음악가의 공연도 주최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대영 동북아역사재단 교류홍보실장은 “일제강점기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시대’가 아니다”라며 “동아일보가 벌인 문화운동은 일제하 조선인의 근대의식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일보는 독립뿐만 아니라 민권도 중시했다”며 “동아일보의 민권의식은 4·19혁명의 원동력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방청객으로 참석한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의 공과에 대해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1931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이순신 장군 유적지 보존운동 등은 당시 그 어떤 언론도 따라오지 못했던 민족적 의미를 가진다”며 “독립운동가들이 다른 나라의 외교적 지원 없이 민족운동을 펼치고 있을 때 동아일보는 문화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기사로 조선인들의 사기를 북돋웠다”고 말했다.

제4, 5회의 21세기 한국의 아티스트와 전통적 자연관
첨단 - 전통 아우른 한국 예술가에 세계인 이목 집중
인간과 자연의 조화 강조
현대 녹색국가론과 연결

제4, 5회의에서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첨단기술과 전통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한국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세계적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국 문화의 세계화 가능성을 연 문화예술가로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건축가 승효상, 음악가 윤이상, 사진가 김아타 등 4명을 꼽았다.

이 교수는 백남준을 과학기술을 인간화된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백남준의 작품 ‘텔레비전 부처’ ‘텔레비전 정원’ 등을 보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참여 텔레비전 형식을 통해 관객과의 소통 의지를 부각하고, 인체 중심의 비디오 조각작품에서는 관객 친화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

이 교수는 “세계인이 주목하는 문화로 발돋움한 한국 고유의 문화들을 소개하며 한국인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문화를 즐기면서 만들어 나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며 “지구화 시대에 인류가 경계해야 할 최대 적은 ‘획일화’이며 통합적 보편적 시각에서 문화를 보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나정원 강원대 교수는 한국의 전통적 자연관이 21세기 녹색국가론과 맥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나 교수는 “한국의 무속신앙과 풍수사상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했다”며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녹색정치와 시민단체의 환경운동은 자연을 지배하려는 의도를 배제하고 인간적 욕구 충족을 위해 자연 질서를 거역하는 인위성을 배제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 교수는 환경보전이라는 가치를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지켜 나가는 ‘환경정치’가 21세기에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환경은 인류가 추구해야 할 모든 목표들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목표이자 모든 정치이념의 기본이 되는 가치”라며 “국가권력은 국민에게 주어진 쾌적한 환경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화가 가속화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반세계화를 외치기보다 세계화의 틀 속에서 환경보호가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등의 방식으로 환경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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