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다시 10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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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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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따지고 보면 체육 아닌 게 없다.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자 눈에는 그렇다. 부산 여중생 살해 용의자는 60cm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빌라 옥상 사이를 날아다녔다. 스파이더맨처럼 건물 틈새를 지지대도 없이 손발과 등만 이용해 손쉽게 내려왔다. 처음 마주친 경찰에겐 얼굴을 가격하기도 했다. 육상 멀리뛰기와 ‘야마카시’라 불리는 익스트림 스포츠, 그리고 교도소에서 연마했다는 복싱 기술이 사용됐다.

야구 방망이를 사용한 폭행 사건 보도를 보면 얼굴이 시뻘게지는 야구인들, 축구의 기도 세리머니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불교와 기독교, 미식축구와 농구의 지역방어를 쏙 빼닮은 정치인들의 단상 점거, 승률 계산 방식을 악용한 자유당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이처럼 체육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해지고 전문화돼 가고 있다. 기자가 몸담고 있는 스포츠레저부는 10년 전에는 체육부였고 그 전에는 운동부로 불렸다. 이 추세면 다시 이름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단체이기도 한 바둑은 장기, 체스와 함께 11월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 메달을 가리는 종목이다. 레포츠로 통했던 당구와 댄스스포츠, 족구 비슷한 세팍타크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20년 가까이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스포츠가 못 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름조차 생소한 아웃도어 스포츠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팬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기자가 1998년 일본 나가노 겨울올림픽 취재를 갔을 때만 해도 비엘만 스핀만 알면 피겨 전문가였다. 컬링을 보고 빗자루로 빙판을 청소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던 때였다. 하지만 이제는 피겨 점프의 악셀, 살코, 토루프, 플립, 러츠 등을 구분하지 못하면 대화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시대가 됐다.

스포츠 전문 채널이 생겨 리모컨만 누르면 24시간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공중파 방송은 금쪽같은 뉴스 시간에 스포츠만 따로 떼어 내 보도하고 있다. 신문으로 치면 매일 12쪽짜리 스포츠 섹션이 있는 셈이다.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를 놓고 국내 방송사들끼리 치열하게 중계권 다툼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체육계로선 박수를 칠 만한 일이다. 먹을거리가 풍성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기자가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만 해도 체육기자들은 큰 꿈을 가졌다. 10년 후면 미국처럼 체육 선진국이 될 거라고. 그러고 강산이 두 번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그동안 국민의 관심은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고 박태환, 김연아,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는 불가능의 벽을 깼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은 여기에 편승해 정치만 할 줄 알았지 진정 체육인이 원하는 것이 뭔지는 나 몰라라다.

체육 예산이 국가 전체 예산의 0.23%에 불과한 것도 문제지만 체육부가 따로 없으니 체육 행정을 여러 곳에서 관장하는 게 더 큰 문제다. 학교체육은 교과부의 논리에 따르다 보니 뒷전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 맞지 않는 주말, 방학 리그제가 나온 이유다. 태릉선수촌 증축은 문화재청의 인가가 먼저 나와야 된다. 백년대계는 아니더라도 체육에도 십년대계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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