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 입적]“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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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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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산에는 꽃이 피네’ 등 숱한 스테디셀러로 대중과 소통
“몸담은 가정-일터가 진정한 도량 … 모든 것 놓아버리는 연습 해놔야”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은 2008년 펴낸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이렇게 썼다.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라면서 좋게 마무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같은 책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스님의 글은 이처럼 삶을 관조하는 지혜로 가득하다. 그런 스님의 글은 30여 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나이와 신분, 종교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입적 소식에 스님의 책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교보문고가 11일 서울 광화문점에 특별코너를 설치하는 등 서점가에선 ‘베스트셀러 작가’인 스님을 기리는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스님은 1975년 서울 봉은사에서 전남 순천시 조계산 자락 한 칸짜리 불일암으로 거처를 옮긴 뒤 17년을 이곳에서 지내며 ‘무소유’ ‘산방한담’ ‘텅빈 충만’ 등 산문집과 법문집을 냈다.

1976년 4월 출간된 ‘무소유’는 출판사 집계로 지금까지 370만 부나 팔린 스님의 대표작이다. 화장지를 절반으로 잘라서 쓰고 종이 한 장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던 스님의 삶이 이 책에 그대로 담겼다. 소비와 소유에 집착하던 현대인들은 이 책을 통해 청빈한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1999년 나온 개정판에 “이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는 추천사를 썼다.

스님이 1993∼1998년 동아일보에 연재한 글을 묶은 ‘산에는 꽃이 피네’에도 행복과 무소유, 더불어 살기에 대한 가르침이 가득 담겨 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마음 따로 있고 네 마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하나이다. 한 뿌리에서 파생된 가지가 내 마음이고 당신의 마음이다.”

스님은 많은 시간을 산골 오두막에서 자연과 함께 살았다. 밥을 해 먹고, 장작을 패서 땔감을 만들어 불을 지피고, 거기에 물을 끓여 차를 달였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세상을 향해 편지를 썼다. 그런 편지들을 모아 ‘오두막 편지’와 같은 산문집을 펴냈다.

스님의 책에는 “현재의 생에 충실하라”는 메시지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법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에선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삶에서 가장 기특하고 기억할 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기쁨도 슬픔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하고 수행하는 도량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처한 삶의 현장이 곧 도량이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가정이나 일터가 진정한 도량이 되어야 한다.”

스님은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간다는 사실에 있다”고 설파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는 일상 등 이런 현상은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서는 것이라는 얘기다.

스님은 그렇게 현재에 충실히 살면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 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마음 먹고 놓아 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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