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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커버스토리]서태지와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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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커버스토리]서태지와 소녀시대

동아일보입력 2010-01-28 14:02수정 2010-04-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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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세대가 바라본 소녀시대의 매력
● 데뷔 4년차 "Oh!Oh!!Oh!…오빠, 오빠"를 소환하는 명민함
● 서태지의 전략을 통쾌하게 재연하는 마케팅적 쾌감
● 서태지가 성공했던, 기획사와 가수 간의 관계 전복할 수 있나?



"소녀시대를 처음 보고…, 같이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우리나라 아이돌의 어떤 완성판을 보는 것 같았다. 노래부터 시작해 아이돌의 본질적인 것이 완성됐구나…."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으로 유명한 작곡가 겸 DJ 유희열(39)은 2008년 1월 이 같은 극찬을 내놓았다. 소녀시대가 데뷔한지 반년이 지났을 즈음이다. 웬만한 시청자들은 윤아와 태연조차 제대로 구분 못하던 때다.

하지만 음악을 만들어 팔아본 사람들에게 소녀시대란 '완성형 아이돌'의 표본이자 최종버전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포스를 품어내고 있었다.

철저하게 준비된 댄스와 퍼포먼스, 9명 소녀 멤버들의 군기 잡힌 모습, 음반활동에 얽매이지 않는 멀티플레이(DJ, 연기, 모델, 예능, 뮤지컬 등), 탁월한 외국어 실력, 게다가 멤버 하나하나 상큼한 캐릭터까지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제대로 기획된 문화상품이었던 것.
지난 4년간 소녀시대가 보여준 치밀한 마케팅은 서태지가 개척한 15년을 부드럽게 압축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SM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이게 전부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허전하다. 1971년생으로 한국 대중음악계의 거물인 유희열이 단지 소녀시대의 깜찍하고 귀여운 외모에 반해 '한국형 아이돌의 완성'을 언급했을 리 없다. 아이돌 그룹의 이 정도 능력은 연예계에 데뷔하고자 하는 1990년 이후 출생 소년 소녀들에게는 최소한의 스펙에 가깝다.

그가 말했던 아이돌의 '본질적인 면'이란 음악 외적인 기획력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 신비주의, 음악 외적인 사회적 담론 창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능숙한 미디어 믹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완성 모델이 X세대의 우상인 '서태지'의 성공 방정식과 닮았다는 것이다.

▶ 소녀시대는 아이돌의 완성판, 도대체 왜?

1월23일 새벽부터 '네이버 뮤직' 홈페이지는 소녀시대 2집 대표곡 'Oh!'의 티저 영상을 보기 위한 누리꾼들로 북적였다. 시스템관리가 완벽하기로 유명한 대형 포탈임에도 한 동안 다운될 정도로 폭발적 반응이 이어졌다. 이어 25일 각종 음원 사이트는 Oh! 전곡을 들어보려는 이들의 아우성으로 시끄러웠다. 소녀시대의 신곡 발표는 그만큼 파괴력 있는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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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시대의 신곡은 공중파 TV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먼저 공개돼 판매에 돌입했다. 이게 새로운 방식은 아니다. 소리바다를 비롯한 멜론이나 벅스 등 디지털 음원시장이 급성장한 2005년 이후 가수들이 CD보다 음원사이트에 신보를 공개하는 것은 보편화됐다.

그러나 소녀시대의 마케팅 능력은 동종 기획사 가수들의 그것을 훌쩍 뛰어 넘는다. 2년3개월 만에 내놓는 정규 2집 앨범의 치밀한 이슈화 과정을 살펴보면 소녀시대가 단순히 노를 파는 가수가 아니라 문화현상을 선도하는 마케팅 기업임을 알 수 있다.
소녀시대는 화려한 복귀무대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입증한다. 이는 서태지가 시도했던 은퇴-재복귀의 소프트한 변용이다.

# 소녀시대 정규 2집 앨범 'Oh!'의 마케팅 순서

- 1월21일 신곡 '오(Oh!)' 타이틀 공개
- 1월22일 인터넷 쇼핑몰 통해 2집 구매 예약 시작
- 1월23일 30초짜리 티저영상 공개(서버다운)
- 1월25일 Oh! 음원 공개
- 1월27일 Oh! 뮤직비디오 공개
- 1월28일 2집 전곡 공개(공식 컴백일)
- 1월30일 첫 공중파 무대 MBC '쇼! 음악중심' 출연
- 2월 27일 2집 첫 단독 콘서트


노래 한 곡을 만들어 파는 과정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밀하다. 특히 인터넷에서 바람을 일으켜 점차 TV와 오프라인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전략이 글로벌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보는 듯 물 흐르는 듯 자연스럽고 자신감에 넘친다.

그 결과 신곡 타이틀을 공개한지 일주일 만에 소녀시대 팬들을 'Oh!'의 멜로디와 뮤직비디오에 잡아두는 '티저(Teaser) 전략'을 성공시켰다.

현재 팬들은 'Oh!'의 가사와 멜로디가 진부한지 아닌지, 그리고 이에 걸맞은 무대 퍼포먼스가 어때야 하는 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1차로 공개된 Oh!의 뮤직비디오는 예상대로 화려한 원색과 소녀시대의 귀여움이 잘 표현됐다는 평가다. 1월 30일 첫 공중파 데뷔 날에 소녀시대를 향한 열광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 소녀시대에서 엿보이는 서태지의 유산

"소녀시대는 서태지가 1992년부터 2007년까지 약 15년 동안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한국형 아이콘의 행보를 압축해 재연하는 기획력의 우월함을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멋들어진 티저 전략이 순전히 소녀시대를 기획한 SM엔터테인먼트의 창작품만은 아니다. 소녀시대의 삼촌 팬으로 승격된 X세대는 소녀시대의 행보에서 1990년대 '문화대통령'으로 불렸던 서태지의 흔적을 발견한다.
서태지는 대중문화의 지평을 확장한 마케터이자 전략가이다(동아일보 DB)

서태지를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그의 음악 자체가 선구적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모험들을 통해 동료와 후배들에게 어마어마한 영감과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선보인 기행들은 치밀한 마케팅이란 찬사로 평가받으며 음반 산업에 새 이정표를 세우는 데 기여했다.

서태지는 댄스와 패션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한 인물이다. 트렌드 세터로서 뮤지션의 위상을 세웠고, 결국 여기서 파생된 문화적 논란을 통해 스스로를 '시대의 아이콘'으로까지 격상시켰다. 소녀시대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고자 서태지의 행보를 부드럽게 변용해 수용한 아이돌 그룹'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은퇴와 잠적을 감행한 서태지의 기행은 소녀시대에겐 6개월마다 반복되는 정기적인 이벤트로, 서의 파격적인 드레스 코드는 소시의 섹시미를 극대화한 제복으로, '9시뉴스' 단골소재였던 서의 사회저항적 가사는 소시의 '오빠~'라는 순응적 노랫가락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소녀시대가 선보이는 감칠맛 나는 티저 마케팅을 처음 선보인 것도 서태지였다. 그는 1집의 대성공 이후 2집부터 언제나 방송음악프로그램을 활용한 티저 마케팅을 선보였다.

서태지식 (티저) 마케팅은 은퇴 후 2년이 지난 1998년 7월7일 첫 번째 솔로 앨범(5집)을 발표할 때 정점에 이르렀다. 음악에 대한 아무런 정보 없이 비둘기가 아로새겨진 포스터와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어린 신세경만을 모델로 세워 놓고 대대적인 예약판매를 시도한 것.

인터넷 팬 사이트를 처음으로 도입해 활용한 것도 서태지였다. 그는 자신의 복귀소식을 맨 처음 인터넷을 통해 알렸고 이후 인터넷을 베이스캠프 삼아 TV와 여러 매체를 전 방위로 활용하는 '뉴미디어 믹스' 전략을 선보였다.

서태지의 뮤직비디오나 패션코드 이슈화 과정 역시 아이돌 그룹에게 그대로 전수 된다. 결국 스쿨걸룩에서 시작, 꾸준하게 통일된 의상을 입고 압도적인 군무(群舞)를 선보이는 소녀시대는 비주얼 시장의 중요성을 예견한 서태지의 선구안을 계승한 사례다.

▶ 변화된 환경, 소녀시대의 위기 탈출 방정식

하지만 데뷔한지 3년 만에 최정상에 오른 소녀시대는 자신들이 구축한 성공 시스템의 딜레마에 봉착하고 만다. 소녀시대가 불씨를 당긴 '걸 그룹' 전성시대로 인해 어느 한 그룹이 시장을 독점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사 경쟁 그룹이 대거 출시된 것이다.

한동안 '아이돌'의 대명사였던 소녀시대는 자신들보다 더 어린 소녀그룹들의 협공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이제 2집의 성공 여부는 소녀시대의 롱런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여기에서 소녀시대 기획자들은 소녀시대의 본질적인 면을 들고 나왔다. 자신들의 정체성이자 성공 방정식인 '삼촌부대'를 소환한 것이다.
소녀시대 2집 Oh! 뮤비 가운데. 치어리더의 집단 군무를 통해 삼촌 팬들의 환상을 극대화 한다

"오빠 나 좀 봐 나를 좀 바라봐/

오빠 잠깐만 잠깐만 들어봐/

Oh oh oh oh oh oh oh oh(오)빠를 사랑해/

Ah ah ah ah ah ah ah ah 많이 많이해/" (2집 앨범 Oh!의 가사 가운데)


흥미롭게도 소녀시대의 핵심 타깃은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즐긴 30대 중반 이후의 삼촌 부대다. 90년대 대중문화 폭발의 수혜를 받았던 축복받은 세대이자 IMF를 맞이했던 비운의 세대이다. 이 세대는 정확하게 서태지 세대로 치환 가능하다.

소녀시대 마케팅에서 서태지가 겹쳐 보이는 이유는 소녀시대를 기획한 SM의 젊은 기획자들이 서태지로부터 영감을 받은 '서태지 세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 Gee의 대박모델을 반복한 Oh! 마케팅, 신선함 떨어져

서태지 세대인 문화평론가 조희제 씨(38)는 "서태지는 음악과 패션이 앞서간 면도 있지만 동시대 젊은이들이게 '아! 권력이던 TV에 끌려 다니지 않고 TV를 저렇게 갖고 놀 수도 있구나'라는 점을 일깨운 혁명가였다"고 평가한다.

이제 2집 앨범으로 복귀를 앞둔 소녀시대의 과제는 어떤 무대매너와 패션으로 서태지 세대인 삼촌부대를 만족시킬까 하는 점이다. 물론 소녀시대의 2집은 여전히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2집 'Oh!'는 소녀시대의 판타지로 넘실거리며, 삼촌 팬들은 그 판타지를 소비할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TV무대용 가수를 넘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서태지. 1998년 솔로 데뷔앨범을 기획하면서 티저 광고 모델로 내세운 어린 신세경(오른쪽)

1년 전 발표된 Gee와 2010년 Oh!가 거의 같은 패턴으로 공개가 됐고 홍보되고 있다. 2009년 Gee의 성공은 3년에 걸친 소녀시대 마케팅의 정점이었다. Oh!는 완성형 아이돌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극한치를 이미 다 보여줬다는 듯 전작의 성공전략을 구태의연하게 반복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공중파 TV의 권능이 가장 막강했던 시절은 1996년 서태지가 은퇴를 선언한 때부터 2000년 MBC에서 복귀 무대를 가졌을 시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서태지는 권력에 만족하지 않고 TV라는 무대를 박차고 나갔다.

소녀시대는 서태지가 15년(1992~2007년)에 걸쳐 이뤄낸 성공 방정식을 단 몇 년으로 압축해 그대로 반복하는 기획력의 우월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서태지는 끊임없이 실험했지만 소녀시대는 멈춰섰다. 서태지와 소녀시대의 차이, 거기에서 '완성형 아이돌' 그룹의 한계가 엿보인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악담일까?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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