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NO, 중독!… ‘야동’ 보는 아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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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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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性, 성장기에 치명적
“10명중 2명은 준중독 상태”
청소년 범죄로 이어지기도

“엄마, 잠깐만 나갔다 올게.”

경기 고양시에 사는 초등학교 4학년 유정식(가명·11) 군은 오후 10시면 집을 나와 동네 PC방으로 향한다. 유 군은 PC방 구석에 앉아 웹하드로 내려받은 음란 동영상을 감상한다. 유 군이 속칭 ‘야동’을 보게 된 것은 지난해 말. 같은 반 친구의 권유로 음란동영상을 접한 뒤 성행위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부모의 퇴근이 늦다보니 유 군은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PC로 매일 야동을 봤다. 새벽까지 음란물을 보고 나면 다음 날은 늘 졸렸다. 유 군이 PC방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 강성희(가명·39) 씨가 우연히 유 군이 방에서 야동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부터다. 강 씨는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한 아이가 설마 음란물을 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강 씨가 인터넷 사용시간을 제한하자 유 군은 자주 화를 내고 성격이 공격적으로 변했다. 집에서 인터넷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자 밤마다 PC방을 찾게 됐다.

○‘음란물 중독’에 빠진 청소년들

경찰이 국내 웹하드 업체에 대해 그동안의 관행과 달리 ‘음란물 유포죄’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웹하드에 널리 퍼진 음란물을 더는 방치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고교생이나 초등학생까지 음란물에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의 인터넷 환경은 심각한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김진호(가명·13) 군은 지난해 수업 중 성교육을 받다가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교사와 같은 반 친구들이 이상히 여겨 이유를 묻자 김 군은 울면서 자신이 화장실에서 당한 일을 설명했다. 김 군은 친구들과 어울려 자주 야동을 접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학교 화장실에서 휴대전화로 야동을 보던 중 싸움을 잘하는 친구가 야동에 나온 성행위 모습을 김 군에게 재연하라고 강요한 것. 이후 김 군은 친구들을 피해 다니게 됐다.

한국성과학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의 약 70%가 스스로의 의지로 음란물을 찾는다. 또 청소년 10명 중 2명 정도는 음란물에 매달리는 ‘준중독’ 상태다. 음란물을 처음 접하는 연령대도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어려지고 있다. 잔트만아동청소년상담센터 오승아 박사(44)는 “음란물에 중독되는 연령이 점점 어려지고 있어 심각한 사회문제”라며 “왜곡된 성행위로 점철된 포르노 등 음란물은 아이들 정서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성폭행으로 연결

판단력이 부족한 아동과 청소년들이 음란물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현실과 음란물 속 세상의 구별이 불명확해진다. 음란물이 학습화되면 행동으로 재연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박현이 서울시립 청소년성문화센터 기획부장(40·여)은 “청소년들이 음란물을 자꾸 보다보면 비정상적 성행위가 오히려 정상으로 보이고 이는 곧 청소년 성폭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성폭력 가해자로 형사 입건된 10대 청소년 수는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10대 성폭력 가해자는 2005년 1349명에서 2009년 2934명으로 4년 새 2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인천지역에 사는 고교생 안모 군(18)은 음란 동영상을 보고 길을 지나던 여성에게 문구용 칼을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다. 안 군은 경찰조사에서 “여성을 학대하는 음란물 동영상을 보고 따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스마트폰 등 매체환경 때문에 청소년들이 음란 동영상을 보려고 마음을 먹으면 사실상 막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성윤숙 연구위원은 “오프라인 매체를 중심으로 규정된 청소년 유해매체물 제도를 인터넷시대에 맞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조가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법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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