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대법원장 남은 임기 20개월이 걱정스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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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용산 사건’ 수사기록의 복사를 허용한 법원의 위법성을 지적하는 의견서를 어제 법원에 냈다. 복사 허용 결정에 대한 즉시항고와 재판부 기피신청에 이은 두 번째 대응인 셈이다. 이번 사태는 용산 사건 2심 재판부의 결정이 도화선으로 작용했지만 그 밑바탕에는 ‘강기갑 무죄판결’과 같은 일부 젊은 판사들의 이념적 편향성과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불만도 자리 잡고 있다.

일부 젊은 판사들의 돌출 판결은 법 정신의 일탈일 뿐만 아니라 건전한 상식과 보편적 가치기준마저 혼란케 해 국민 불신을 키우고 있다.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른 독립된 재판’이 사회의 통념과 상규(常規)를 벗어난 판결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자칫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급격히 붕괴될 수 있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법원 내 사조직인 ‘우리법연구회’는 소속 판사가 비록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일정한 판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단순한 연구 모임이라기보다는 구체적 판결을 통해 권력화, 정치화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초기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 사법부 안팎에 파문을 던졌다. ‘국민을 섬기는 법원’이란 구호를 내세웠고, 두산그룹 비자금 사건 때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재판’을 강조하면서 집행유예 판결을 비판했다. 그러던 이 대법원장이 현 정권 출범 후에는 사법부 내부를 향해 꼭 말을 해야 할 때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 파동’ 때는 법원장의 사법행정 권한을 존중하지 않는 판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언급을 피한 반면 신 대법관에게 ‘엄중 경고’했다. 사건 배당과 인사평가 문제에 대한 양보도 거듭했다. 이번에도 공보관을 통해 ‘사법권 독립 훼손 우려’ 운운하면서 본질문제를 회피하는 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이런 연유로 대법원장의 책임론까지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세상 경험이 일천(日淺)한 젊은 판사들이 단독으로 중요 사건 판결을 맡는 현행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최근에 논란을 부른 판결은 대체로 단독판사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세상 이치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깊은 경력 판사들에게 단독 재판부를 맡기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임기 20개월을 남겨둔 이 대법원장은 지금 사법사(司法史)에 중대한 오점을 남길 것인지, 정도(正道)를 회복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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