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대한민국이 뛴다]<3>튀니지 임업환경연구사업

  • Array
  • 입력 2010년 1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튀니지의 하나뿐인 숲을 살려라”… 한국 녹화 경험 심어

《비탈진 산기슭에서 풀을 뜯는 수많은 염소와 양 떼.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이런 모습은 평화와 안식의 상징이다. 하지만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서북쪽으로 200여 km 떨어진 참나무숲의 한가운데에 있는 아인스노시 지역에선 얘기가 다르다. 여기선 국가적 차원의 재앙(災殃)으로 여겨진다.》

삶의 터전인 참나무숲이…
방목 가축, 묘목도 먹어치워 70년새 숲 절반이나 감소

무상 지원보다 자생력 키워
위성-GIS로 과학적 분석하고 목축 대체할 한국형 작물 실험


아인스노시 입구의 샛강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참나무들. 참나무 군락이 줄어들면서 토양이 침식되고, 이로 인해 참나무들이 훼손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뿌리가 드러난 참나무들이 언제라도 강물로 떨어질 듯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아인스노시 입구의 샛강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참나무들. 참나무 군락이 줄어들면서 토양이 침식되고, 이로 인해 참나무들이 훼손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뿌리가 드러난 참나무들이 언제라도 강물로 떨어질 듯 위태위태한 모습이다.
튀니지 임업수자원연구원(INRGREF) 소속 압델하미드 칼디 박사는 “튀니지 참나무숲은 1930년대의 14만 ha(1400km²)에서 현재 7만 ha로 그 규모가 절반으로 감소했다”며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이 기르는 가축들이 참나무 묘목을 먹어 치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축 방목이 숲의 미래를 갉아먹는 위험인 셈이다.

튀니스를 떠나 자동차로 약 2시간 만에 도착한 아인스노시. 띄엄띄엄 나타나는 마을이 사라질 무렵에 나타난 참나무숲은 거대한 바다와도 같았다. 하지만 그 속은 골병이 들어 있었다. 샛강 주변에선 토양 침식 탓인지 뿌리의 절반이 허공에 매달려 곧 강물 속으로 떨어질 것 같은 참나무 수십 그루가 눈에 띄었다. 마을 어귀에 있는 수령 200년의 거대한 참나무도 줄기의 3분의 2가 사라졌고 벌레로 뒤덮여 고사(枯死) 직전이다.

이곳 참나무숲은 튀니지 전체 국토의 6%를 차지하는 유일한 산림지대다. 밀이 생산되는 중부지역은 로마시대의 곡창기지로 유명하고, 영화 스타워즈와 잉글리시 페이션트 촬영지였던 남부는 사막지역이다. 북서부 지역의 참나무는 와인 마개로 쓰이는 코르크의 재료. 참나무숲이 사라지면 튀니지의 유일한 산림지대가 소실될 뿐 아니라 주요한 수출상품이 없어진다.

이 지역 자치단체장인 후신 오트마니 씨는 “이곳 속담에 ‘숲은 사람들의 보호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나무를 신성시한다”며 “하지만 가축을 길러 파는 돈이 수입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주민들로서는 생존을 위해 숲을 해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INRGREF 압델하미드 칼디 박사(오른쪽)와 서미영 KOICA 튀니지사무소장이 아인스노시에 설치된 기후변화 측정장비를 점검한 뒤 KOICA사업을 상징하는 현판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인스노시=김영식 기자
INRGREF 압델하미드 칼디 박사(오른쪽)와 서미영 KOICA 튀니지사무소장이 아인스노시에 설치된 기후변화 측정장비를 점검한 뒤 KOICA사업을 상징하는 현판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아인스노시=김영식 기자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튀니지 참나무숲 쇠퇴 원인 분석사업도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2011년을 목표로 산림개발국가전략을 수립한 튀니지 정부는 산림 쇠퇴의 원인을 분석하고 복원을 위한 연구사업을 도와달라고 한국에 요청했다. 한국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인정한 대표적인 산림녹화 성공 국가로 단기간에 훼손된 산림을 복구한 기술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KOICA는 2007년부터 250만 달러를 투입해 INRGREF와 함께 종합적인 산림 쇠퇴 원인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구대상 지역은 500가구 2600여 명이 거주하는 아인스노시 지역의 숲 3000ha. 버섯 등 각종 작물의 시험재배로 주민들이 다른 소득원을 찾게 함으로써 참나무숲을 보전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시니어 봉사단원으로 한국 작물을 시험재배하고 있는 강승규 씨(60)는 “주민들이 배추 호박 등을 재배해 팔면 목축 중심의 생활 방식도 바뀔 것”이라며 “그러면 방목 위주의 가축 사육이 울타리 안에서 사료로 키우는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형 농가’ 실험가구로 지정돼 올해부터 상추와 고추 등을 재배할 예정인 무함마드 압다지즈 씨(52)는 “농업이나 다른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주민들이 왜 숲을 해치겠느냐”며 “다른 선택만 있다면 숲의 보전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오트마니 씨는 “7, 8월에 코르크 껍질을 벗기는 작업에 동원돼 일당을 받고 나머지 기간에는 목축업을 하는 주민들은 숲이 사라지면 삶의 터전이 사라진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며 “다른 소득증대사업이 이뤄지면 숲의 쇠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나무숲 쇠퇴 원인 분석사업은 다른 나라에서 실시하는 KOICA의 무상지원 사업들과는 다른 독특한 사업이다. 직접적인 수혜자가 불분명하고 사업 결과도 연구보고서로 나온다. 서미영 KOICA 튀니지사무소장은 “KOICA 내부에서도 ‘왜 연구사업에 KOICA 자금을 지원하느냐’는 궁금증이 많았다”며 “그러나 연구 결과가 나오면 현지 주민들에게 산림보호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KOICA의 후속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우수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주민들이 숲에 낸 길이 산림 쇠퇴에 90%의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한 작업들을 통해 최초로 과학적으로 설명했다”며 “연구사업은 현지인의 자생력을 키우는 선진국형 원조사업으로 한국의 대외원조 수준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칼디 박사는 “과거에도 프랑스 스페인 등 주변 국가의 지원으로 참나무숲 쇠퇴 원인을 연구했지만 아리랑 위성까지 동원해 입체적으로 분석한 것은 KOICA가 처음”이라며 “참나무숲 복원을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KOICA 사업의 결과는 8월 23일부터 일주일간 서울에서 개최되는 23차 세계임업연구기관(IUFRO) 총회에서 연구보고서로 발표된다. 전 세계 산림 임업 학자와 전문가들이 5년에 한 번씩 모이는 총회에서 발표할 KOICA 연구 결과물에 대해선 와인 마개용 코르크를 생산하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 6개국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아인스노시·튀니스(튀니지)=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KOICA 프로젝트, 주민 100만명 삶과 직결된 사업”

■ 레제브 임업硏 소장

“KOICA 프로젝트는 튀니지 서북부 산림지대 전체 주민 100만 명의 삶과 직결된 사업입니다.” 무함마드 레제브 INRGREF 소장(사진)은 아인스노시에서 진행되는 KOICA 사업이 전체 참나무숲의 생명력을 확보해 숲을 복원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했다.

―다른 나라와의 공동연구와는 차별화되는 KOICA 사업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한국인들이 매우 친절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KOICA와 처음으로 협력하는데도 양자 간에 많은 정보와 기술을 교환하고 있어 참나무숲 복원 및 지속개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본다.”

―한국 참나무는 코르크로 생산되지 않는데 튀니지 코르크 참나무숲 복원에 도움이 되나.

“한국 지방의 숲을 방문하면서 한국이 튀니지 산림 복원에 도움을 주면 아주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식목일도 인상적이었다. 튀니지에선 숲이 국가 소유다. 하지만 숲 속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나무를 자르고 숲을 훼손하는 것이 삶의 마지막 수단이다. 정부도 이를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치하고 있다.”

―참나무 껍질을 벗기는 시기는….

“7, 8월 두 달간이다. 130cm 정도 높이로 껍질을 벗겨내고 나면 약 12년 뒤에 다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이것도 쇠퇴의 증거다. 다른 곳에선 9년 또는 10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기기도 한다. 보통 수령 40년 이상의 참나무부터 껍질을 벗긴다.”

―현재 KOICA의 연구 성과는 얼마나 진척됐나.

“한국 과학자들과 △생태적 특성 변화 △지리정보시스템(GIS) 활용 분석 △사회·경제적 측면 △토양 △생태계 등 다섯 가지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 사회·경제적 측면은 연구가 완료됐고 후속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다르더라” 유럽 못지않은 기술로, 유럽보다 더 열심

■ 튀니지 측에서 본 한국

KOICA의 코르크 참나무숲 쇠퇴 분석 연구사업의 튀니지 측 사업 책임자인 INRGREF의 압델하미드 칼디 박사는 “참나무 쇠퇴분석 연구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투자했던 프랑스나 유럽연합(EU)과 달리 KOICA 프로젝트에는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에 그쳤다”며 “그러나 한국은 독창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실질적인 문제 해결방법을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유럽국가 연구자들과 수많은 공동연구를 했던 그는 튀니지 사람들을 낮춰 보는 듯한 유럽인들의 시선을 여전히 잊지 못했다. 아무래도 프랑스의 튀니지 지배(1883∼1956년)에 앙금이 남아 있기 때문인 듯했다. 한편으로는 포에니 전쟁에서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로마군을 거침없이 물리쳤던 카르타고 명장 한니발의 후예라는 자존심과도 연결되는 문제였다. 그런 만큼 현지에서 격의 없이 분야별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KOICA의 사업은 각별하다.

다른 선진국 위성에 뒤지지 않는 한국 아리랑 위성의 역할도 컸다. 우수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장당 150만 원에 이르는 60cm급 고해상도 위성사진 분석으로 참나무숲의 활력도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근면성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KOICA 프로젝트를 통해 2008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한 후신 오트마니 씨는 “한국인의 근면한 정신을 아인스노시 주민들에게 전파해 소득증대와 숲의 보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고 말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