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기 전 비탄조 멘트, 정부서 ‘하지말라’ 경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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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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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강제 폐방 당시 국장대리 이윤하 씨

“동아방송이 언론통폐합으로 폐방된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방송국은 초상집 분위기였어요. 일 끝나고 직원들끼리 술도 많이 마셨는데 그때마다 노래 ‘한오백년’을 많이 불렀어요. 그 당시 분위기에 어울리는 노래였죠.”

1980년 동아방송 폐방 당시 국장대리였던 이윤하 씨(77·사진)는 28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동아방송이 신군부의 언론 강제 통폐합으로 문을 닫았을 때의 뒤숭숭한 분위기를 전했다.

“방송에서 비탄조의 멘트를 하거나, 아나운서들도 프로그램을 마칠 무렵 울먹이곤 했어요. 저쪽(당시 문화공보부 방송관리국)에서 그러지 말라는 경고가 날아오기도 했죠. 동아방송이 ‘정계야화’라는 정치 드라마도 만들고 집권층 신경을 많이 건드렸으니….”

그는 “신군부의 서슬이 퍼럴 때라 직원들이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저항할 수도 없었고 KBS로 가기 싫다고 버틸 수도 없는 분위기였다”며 “폐방 다음 날 동아방송 직원들이 단체로 버스 몇 대를 타고 KBS로 갔는데 나는 아쉬운 마음에 버스를 안 타고 나중에 따로 KBS로 갔다”고 말했다. 방송국이 문 닫기 전날에는 가수 이숙, 장미화 등 동아방송에 자주 나왔던 가수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동아방송의 뉴스에 대한 청취자들의 반응이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폭로 기사들을 내보내니 청취자들은 ‘이런 방송도 할 수 있구나’라는 반응이었어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처음 나와서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많이 들었는데, 들어보면 다 동아방송이었어요. 오죽하면 다른 방송국이 도저히 동아방송 뉴스를 못 따라가니까 정시 뉴스를 5분 앞당겨 55분에 방송했겠어요.”

이 씨는 1956년 KBS에 입사해 방송문화연구실과 국제방송국을 거쳤고 1963년 동아방송 개국 이후 이곳에서 편성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최창봉 전 MBC 사장, 조동화 월간 ‘춤’ 발행인, 김영효 전 동아방송 ‘앵무새’ 프로그램 PD 등 동아방송 출신 및 일부 사회 원로와 함께 매주 수요일 서울 동숭동에서 만나는 ‘동수회(동숭동 수요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동아일보를 모체로 둔 동아방송은 동아일보의 사시(社是)에 입각해 방송을 시작했고 동아방송 직원은 그 매력에 끌렸던 사람들”이라며 “KBS 직원으로 안정적 신분이 보장된 상태에서 동아방송으로 이직한다고 하자 주위 어른들은 모두 ‘동아일보가 하는 회사라면 가라’는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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